학교 용어 TMI - 손절1

그때는 시계를 샀어야 했을까, 아니 주식을 샀어야 했지

by 복희
손절했어요. 그 애랑


네 번째 말 : 손절

- 사람도 재산, 손해 보는 건 못 참지

resized_image_3.png
그때는 시계를 샀어야 했을까, 아니 주식을 샀어야 했지


2020년의 5월 5일이었다.

어린이날이다. 대한민국의 어린이들이 부모님께 용돈과 선물을 받는 바로 그날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이제 어린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셀프 선물을 주기로 했다. 커다란 백화점 건물 앞에서 주춤했으나, 곧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그리고 명품관으로 돌진했다. ‘산다, 사고야 만다.’ 이 말을 되뇌면서 말이다.

2020년의 봄, 코로나로 인해 세상이 정지했다. 질병 때문에 개학이 미뤄지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사기 위해서 몇 시간씩 줄을 섰다. 체온계, 감기약이 동이 났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사라졌다. 사라진 사람들은 외출을 자제하고 코로나를 피해 집에 숨었다. 대한민국이, 전 세계가 숨을 죽인 채 잔뜩 겁을 먹었다.

그러나 우리의 대한민국은 이런 질병에도 빠르게 적응했다. 모든 교사가 온라인 수업을 하게 만들었고, 등교 인원을 제한하여 학교 운영을 정상화했다. 정부는 전 국민에게 마스크를 보급했고,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코로나 확산 방지가 국가의 최우선 과제였고 모든 기술과 인력을 동원하여 집요하게 코로나를 추적했다.

많은 의료인의 숭고한 희생으로 치른 처음 보는 질병과의 소리 없는 전쟁이었다. 텅 빈 가게에서 자영업자들이 눈물을 삼키며 이 시기가 지나기를 기도하고 있었고, 거리엔 배달 오토바이만이 활개를 치고 다녔다.


이런 세상과는 별개로 나는 처음으로 성과급 S등급을 받았다. 그 값진(?) 성과급을 어디에 써야 할지 고민하다가 평생의 위시리스트였던 명품 시계를 사기로 했다. (사실, 성과급 S로도 그 시계를 못 사서 돈을 조금 더 보태서 살 수 있었다) 같이 백화점을 따라나섰던 선생님도 받은 성과급으로 처음으로 인터넷에서 명품 가방을 샀다.

사람들은 공연도, 콘서트도, 여행도, 술자리도 사라진 공간을 소비로 대신하려 했다. 이런 소비를 이른바 ‘보복소비’라 부르기 시작했고, 백화점 명품관에 줄이 늘어졌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명품의 가격이 조금씩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지금 내 손목에 있는 그 시계도 가격이 제법 올랐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때 명품 시계를 지른 것이 합리적인 소비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명백한 나의 오판이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때 명품 시계를 사는 것이 아니라 바닥이었던 삼성전자 주식을 사야 했던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테슬라 주식이라도 좋았다. 그것도 아니라면 금(24K)이라도 샀어야 했다!


아니다. 2007년 첫 발령을 받을 때, 농어촌이던 첫 발령지에 전철역이 들어온다는 것을 들었을 때 거기에 집을 사야 했다. “이미 많이 올랐다”, “늦었다”고 했지만 땡빚을 내서라도 사야 했다. (물론, 그땐 너무 어렸기에 결정하기 어려웠다) 그때가 아니라도 두 번째 기회가 있었다. 몇 년이 흘러 2010년쯤, 그러니까 첫 발령지에서 5년을 채웠을 무렵이다. 근처 허허벌판에 신도시가 들어서고 신축 아파트가 쏟아졌다. 많은 학교 선생님이 청약을 넣어 당첨되었다. 그때, 나도 같이 청약을 넣어야 했다. (그러나 그때는 청약이라는 것도 몰랐다)

아니다. 사실 더 좋은 기회는 그 뒤에 왔다. 그 신도시에 아파트가 미분양되고, 전세자를 구할 수가 없어 집을 구매한 사람들이 전전긍긍하는 시기가 있었다. 그때 친한 선생님이 대리석 바닥의 30평대 아파트를 3천만원인가, 4천만원 전세로 들어가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전세인 그 집을 부러워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자가(自家)의 꿈을 가지고 집을 질렀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이 기회라도 잡았다면 어땠을까?

세 번째 학교에서 근무하던 2017-8년에는 직장인들 사이에 비트코인 투자가 유행했다. 그러다가 그 비트코인이 다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때 그 비트코인을 백만원 정도만 묻어두는 셈 사두었다면...

난 결혼도 안 할 거니까, 결국 인구는 감소할 거고 집값은 내려갈 거니까, 집값이 올라 소득이 생기는 건 불로소득이고 결국 그것이 경제에 좋은 영향을 주지 않으니까, 이딴 헛똑똑이 같은 소리를 할 때가 아니었다. 신용대출로도 2%의 대출을 해주던 황금 같은 시기에, 사람들이 집 안 사도 된다고 할 때, 주변에 집이 넘쳐날 때 그때 집을 질렀더라면…. 하지만 욜로(YOLO)에, 독신(獨身)에, 정치적 성향까지 더해져 나는 집을 사거나 재테크를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남들이 ‘주식이다’, ‘미국 주식이다’, ‘집 보러 다닌다’, ‘땅 보러 다닌다’ 하던 코로나 시기에도 주식계좌 하나 만들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지도 않게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경기도에서 경상도로 이동하게 되었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남편밖에 없는 곳에서 맨 처음 교직에 섰을 때처럼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다. 그리고 신혼인 시기에 투병까지 하게 되었다.

삶의 굴곡에 부딪혀, 나는 눈물 바람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인생의 도파민이 꺼져가던 순간에 친한 선생님의 긴긴 설득으로 겨우 주식계좌를 만들게 됐다.

그 사실을 아는가? 모두가 주식 이야기를 하는 순간, ‘나만 안 하는 거 아니야?’ 하는 조바심이 드는 그 순간. 바로 그 순간을 꾹 참아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라도 만들어야겠다고 내가 생각하는 순간이 바로 주식의 최고점이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주식을 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코스피가 3000에서 뚝뚝 떨어졌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었다) 남들은 사기만 하면 다 주식이 오른다는데 나는 정반대였다. 사기만 하면 계속 떨어지기만 하는 내 주식을 보면서 물을 타고, 물을 탔다.

그러다가 대주주가 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지만, 그럴 돈이 없는 나는 수중에 있는 돈을 다 주식에 묻어두고 돈이 녹아가는 것을 보고만 있게 된다. 그러다 결국 코스피가 2100까지 떨어졌을 때, 나는 해탈했다.

어떤 사람은 반려동물을 키우고, 어떤 사람은 반려 식물을 기르고, 반려 돌(石)도 있다지만, 나에게는 반려 주식이 있다. 내가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는 이 반려 주식을 보고 있자면 이 세상에서 나의 자산이란 한낱 숫자에 불과하며 그저 사이버머니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면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떨어지는 주식을 ‘손절’하지 않고 뭐 하느냐고 말이다. 떨어지는 주식은 더 떨어진다. 지금이라도 주도주(시장을 주도하는 주식종목)으로 갈아타라고 말이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손절은 생각보다 어렵다. (남에게 ‘손절’을 말하는 자, 본인은 ‘손절’을 하고 말하라!)


이 손절이라고 하는 말은 ‘손해 절단’이라는 말의 줄임말로 주식이나 암호화폐(비트코인 등) 같은 투자 시장에서 더 큰 손실을 막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 자산을 매도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일본에서 사용되던 금융 용어인 손키리(損切り, 한자만 말하자면, 덜 손, 끊을 절)에서 영향을 받아 한국에서도 금융권과 투자자들이 주로 사용했다.

그러다 대한민국에서 비트코인이 본격적으로 유행하던 2017년 이후에는 일반 투자자들도 이 용어를 많이 사용하면서 지금은 청소년까지도 모두 아는 단어가 되었다.

내가 나의 반려 주식을 손절하지 못하고 아픈 손가락처럼 부여잡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학생들은 손절을 쉽게 말하고 실제로 하기까지 한다. 요즘 애들은 주식투자까지 하냐며 놀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학생들이 말하는 것은 금전적인 손해에 대한 손절이 아니다.


학생들이 말하는 손절은, 금전적인 손실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정리를 의미한다.



볼드처리된 부분은 각주처리입니다.


각주 53) 코로나19 초기인 2020년 3월, 삼성전자의 주가는 약 42,300원까지 하락했다. 이후 반등하여 2021년 1월 11일에는 종가 기준으로 97,090원을 기록하며 최고점을 찍었다.(10만전자 가즈아~), 같은 시기 테슬라(TSLA)의 주가는 약 $70까지 하락했다가, 이후 상승세를 이어가며 2021년 1월 25일에는 장중 최고가인 $900.40을 기록했다. 이는 약 1년 만에 약 12.9배 상승한 것이다. 금의 경우 2025년 7월 15일 기준으로 온스당 $3,360.35까지 상승하며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각주 54) 2018년 비트코인의 가격은 300만원 정도까지 떨어졌으나, 2024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 당시에는 1억 5천만 원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내가 비트코인을 가지고 있었더라도 아마 그 전에 홀랑 다 팔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