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용어 TMI- 나오며

말이라는 안경을 쓰고 학교를 산책하다

by 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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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라는 안경을 쓰고 학교를 산책하다


나는 산책을 좋아한다. 산책은 등산과 달리 오르막이 없다. 정상도 없다. 목표가 없으니, 언제든 돌아와도 된다. 가벼운 차림으로, 슬리퍼를 신고도 할 수 있다. 필요한 건 ‘걷고 싶은 마음’ 뿐이다.


걷다가 마음을 빼앗는 것이 있으면 잠시 걸음을 멈추어도 된다. 제과점에 진열된 맛있어 보이는 빵이나, 마음이 탁 트이는 시원한 하늘이나, 아스팔트 사이에서도 기어이 핀 꽃을 바라보며 한참 시간을 보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그런 것을 발견한 날은 운이 좋은 날이다.


이 글은 등산이 아니라 산책에 가깝다. 주제와 결론이 명확해 그것을 향해 가는 글이 아니다. 여기도 들렸다, 저기도 들렸다, 느릿느릿 가는 산책과 같은 글이다.


이 글의 원래 제목은 ‘넋두리’였다. 어느 순간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들을 주절주절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떠오르는 생각을 최대한 가감 없이 담았다. 원래는 책이라는 거창한 형식을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경북교육청의 ‘책 쓰는 교육 가족’ 사업에 지원하여 지원금을 받게 되면서 책으로 묶여 나오게 되었다. 이 자리를 빌려 사업을 기획하고 진행하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그리고 내 부족한 글을 읽고 생각을 나눠준 동료 교사와 친구, 그의 지인들에게도 감사하다.


그래서 ‘넋두리’라는 가제는 ‘학교 용어 TMI’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넋두리’라는 제목보다 거창해졌지만, 떠오르는 생각들을 놓치지 않고 구구절절 쓰고 싶다는 콘셉트는 그대로다. 그래서 이 책은 교사로서 학생 언어 속에 담긴 시대에 대한 해석과 감정을 조심스럽게 읽어보려는 산문집이 되었다.

마음이 우울할 때는 걸으라고 조언하는 사람이 많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몸을 여기저기로 움직이며, 감각을 깨우는 것이 산책이라면 생각을 여기저기 굴려 새로운 생각을 깨우고, 무너진 생각을 바로잡는 것은 글쓰기다.

물론, 이런 목적을 위해 산책을 하거나 글을 쓰지는 않는다. 그러나 산책이나 글쓰기를 하면 자연스럽게 그런 결과를 얻는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생각하지 않고 모른 척하려 했던 의문이나 불만 같은 내 마음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고, 나만의 고유한 시선을 되찾았다. 무엇보다 다시 ‘생각하며 살아야겠다’는 각오가 생긴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나는 일본어를 전공하면서 ‘한국어’와 ‘한국의 언어 습관’을 일본과 비교하게 되었다. 그것은 전공자로서 더 ‘일본인스러운’ 일본어를 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또, 고향을 떠나 서울 근방에서 생활하면서 ‘경상도인’의 언어 표현과 서울 및 다른 지역의 언어 표현과 습관이 다르다는 것을 체험했다. 경상도에서는 아무 문제 없던 표현이 다른 지역 사람들과 갈등을 빚기도 하면서 ‘말’이라는 것의 특성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언어는 그 언어를 쓰는 사람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이나, 유행어를 유심히 보게 되었다. 그 말에는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한 진심이 숨어 있다. 아니 반대로 말하면 그 진심을 찌르는 단어들이 유행하고 살아남는다.

이 글을 처음 썼을 때는 2023년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저 긴 일기에 불과했던 글이 제법 글이라는 형식을 갖추었다. 다시 읽어보니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창피한 수준이지만, 예산을 쓰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용기를 내어 세상에 이 글을 내보내려 한다.


처음에는 나만 생각하고 글을 썼지만, 사업에 선정되고 나서는 글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글을 썼다. 그 사람은 이 책을 펼친, 교무실 한쪽에서 숨 돌리고 있는 바로 당신이다. 같은 학교 현장에서 오늘을 버티는 동료를 생각하며 글을 썼다. 학교에 있으면 매일의 진도나 평가와 기록에 바쁘다. 담임 선생님은 학급도 관리해야 하고, 나 같은 부장은 공문을 처리하느라 바쁘다.

잠깐의 틈이라도 생기면, 스트레스를 날리기 위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쇼핑, 오늘의 저녁 거리를 이야기하기도 부족하다. 물론 그런 대화도 직장 생활에 활기가 되니 소중하다. 그러나 가끔은 교육이나 학생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가 목마를 때가 있다.


학교 안에 있으면 학교 안 세상에 익숙해져 밖을 바라보기 힘들다. 세상은 변화무쌍하지만 놀랍도록 학교는 늘 제자리걸음이다. 학교는 사회를 안정시키고 유지하도록 힘쓴다. 그렇기에 학교가 변하는 것은 가장 나중이다. 그러니 교사들은 세상 물정을 몰라 퇴직하고 사기를 그렇게 당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가끔은 학교를 벗어나 다른 시선으로 학교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학교 안에서 불평만 하던 것들의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기도 하고, 새로운 제도나 낯선 학생들의 모습을 수용할 수 있는 지혜를 얻기도 한다. 교사끼리 나누는 격려와 응원도 좋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이런 방식 접근이 오히려 위로와 힘이 되었다.


내 짧은 생각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특히나, ‘꼽’에 관련한 부분은 엄연히 피해자가 존재하기에 더욱 마음이 무겁다. 공감이나 동의는 어려울지 몰라도,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라 너그러이 이해해 주기 바란다. (아마추어로서 최선을 다했지만, 표지나 편집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점도 양해를 구한다)


어느 순간 생겨, 유행하다가, 사라지는 말처럼 이 글 역시 시효가 있다. 내 생각에 영향을 주는 풍경 역시 변하기 때문에 각 글의 뒤에는 날짜를 기재하였다. 그 날짜에서 멀면 멀어질수록 아마 이 글은 더 이상 공감을 얻지 못할 것이며, 어느 순간에는 과거의 혼잣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을 읽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조금이나마 울림이 있었으면 좋겠다.


혼자 걷는 산책도 걷지만,

동지가 있다면 함께 걷는 길이 더욱 즐겁지 않을까.

말 많은 교사의 꽤나 긴 넋두리를 들으며, 함께 걸어준 모든 분에게 감사하다.


2025.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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