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은 현재 같이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들과 함께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국어 선생님들 답게 상당한 필력으로 성실하게 작성해 주셨습니다.
책에는 일부 편집하여 수록하였습니다.
'이생망'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고 유희적으로 유통되는 현상을 통해 오늘날 학습자의 현실 인식에 대해 사유해보는 의미 있는 글이었습니다. 글을 읽으며 학습자에게 국어교육, 혹은 문학교육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천천히 고민해 볼 수 있었습니다.
주지하듯 '이생망'은 계급의 고착화와 양극화의 극단적 심화 속에서 디폴트 된 현실 앞에 선 한 개인의 좌절과 절망을 자조적 유희로 드러내는 말입니다. 도무지 바뀌지 않는, 이 지독히 단단한 현실의 벽 앞에서 낙담하는 아이들에게 문학교육은 무엇을 줄 수 있을까요? 이것은 문학의 본질과 역할에 맞닿아있는 근본적인 질문이기도 합니다. 좋은 문학은 언제나 현실의 폐허에서 피어나기 때문입니다.
문학이 그 자체로 피폐한 현실을 구원할 수는 없겠지만 피폐한 현실의 본질을 최대한 정밀하게 그려낼 수는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문학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현실의 구조 속에 있기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현실의 본질, 그 본질을 알려주는 인식의 힘 말입니다. 비평가 신형철의 말대로 정확한 인식은 정확한 위로를 줍니다. 덧붙이면 정확한 위로는 다시 강렬한 정동을 불러일으킵니다. 폐허의 현실 위에서 우리를 일으키고 다시 움직이게 하죠. 그것이 저항이든 개척이든 혁명이든 정동은 현실을 뒤흔들어 놓습니다. 그 뒤흔듦 속에서 세계는 느리지만 조금씩 변해가지요. 그것이 제가 문학을 믿는 이유이고 문학을 읽는 이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생망'의 인식에서 출발하여 ['시간 회귀'나 '공간 전이'를 통한 인물의 재탄생]을 그리고 있는 문학 작품의 효용성과 가치에 대해 저는 회의적입니다. 말 그대로 그것은 디폴트된 현실값을 그저 반복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부조리한 현실을 인식하고 그 현실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한 현실의 시스템 안에서 그저 우위를 가진 인물이 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인물은 자본주의적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영웅적으로 보일지는 모르나, 충분히 윤리적이지는 않습니다. 인물이 부조리한 현실의 피식자에서 그 현실에 완벽히 적응한 포식자로 변화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 챕터를 읽고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세계는 분열되고 다시 이기적인 자국우선주의가 팽배하고, 신자유주의적 경쟁과 자본의 열기가 휘몰아치는 시대. 그 시대의 억압 속에서 현실의 희망을 잃어가는 어린 세대에게 문학교육이 무엇을 줄 수 있고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말이죠. 거대한 사회 일반에 대한 이해가 아닌 그 속에 짜부라져 있는 한 개인의 진실. 그 개개의 폐허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작품을 기다립니다. 타자의 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가질 때 우리는 타인을 적확하게 위로할 있고, 그 위로 속에서 희망이 발아하고 현실이 움직인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인식과 위로를 위한 정동. 오직 문학과 예술만이 그 둘에 닿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아파하는 어린 세대들을 그 희망의 지대로 이끌어가는 것이야말로 문학 교육을 담당하는 우리 기성 교육세대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회귀물에 빠지는 건 ‘이번 생은 망했다’라는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무력감의 반영이다. 회귀물은 실패를 만회할 수 있는 판타지를 제공하지만, 교육은 현실 속에서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과 기회를 경험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들이 허구 속 회귀가 아니라, 현실을 바꾸는 힘을 믿게 된다.
교사로서 '이생망'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단순히 요즘 아이들이 자주 쓰는 유행어라는 생각만 했었는데, 글을 읽고 학생들의 현재 마음과 맞닿아 있는 단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최근 유행하고 학생들이 좋아하는 '회귀물'이나 '현실이 게임이 되거나', '정말 현실이 망하게 되는' 그런 내용의 소설이나 웹툰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의 유행어를 통해 이 힘든 사회와 학생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선생님을 통해서 많이 배웠습니다. 저도 앞으로 학생들의 유행어뿐만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자세히 살펴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헤아릴 줄 아는 교사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행어 '이생망'과 문학부류인 '라이트 노벨'의 유행. 독립적으로 보이는 두 현상에 대한 고찰을 통해 현재 우리 사회와 교육계의 구조적 모순과 허상을 잘 짚어낸 것 같습니다. 이를 통해 교사로서 과연 이러한 현상을 교육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학생들을 지도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 방법으로써 제시해 준 "뭐 어때?"의 마인드는 나도 모르게 어느새 '꼰대'가 되어버린 저의 생각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적어도 나 하나 만이라도 '선의'라는 미명아래 우리의 자녀와 학생들을 지옥으로 안내하지 않도록, 학생들이 무수한 실패 속에서도 당당하게 오로지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오늘의 제 다짐으로 인해, 이 한 편의 글로 인해, 단 한 명의 선생님과 학생이라도 자신의 색깔로 자신만의 인생을 그려 나가는 인생을 살기를 바라 봅니다.
저는 MBTI의 T와 F중 극T에 해당하는 사람이라 부장님처럼 '이생망'이라는 문제에 대해 감수성 있게 접근하지는 못하고 어떻게 하면 이 '이생망'이라는, 요즘 청년들에게 뿌리깊게 박힌 엄청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하며 글을 읽은 것 같은데요.
글을 읽으며 몇 년 전에 제가 읽었던 책 중에서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에서 발간한 <부들부들 청년>이라는 책의 내용이 얼핏 떠올랐습니다. 저는 그 책에서 '이생망'이라는 용어를 처음 접했었는데요, 그 책에서 흥미로웠던 내용은 바로 '대부분의 청년들은 이생망의 원인을 사회구조적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나 이생망이 누구의 탓인가에 대해서는 절반 이상이 - 정확하진 않으나 제 기억으로는 약 65%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 본인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다른 말로 정리해 본다면, 오늘날의 청년들은 자신들이 처해 있는 시궁창같은 현실이 본인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만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 부분이 바로 이생망이라는 사회적인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이 '이생망'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바로 사회 구조적인 문제의 해결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사회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한 유일한 길은 바로 정치 참여가 될 것인데, 청년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해답이 될 수 있을 듯합니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 해결의 주체는 기성세대가 아닌 바로 청년들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는 누가 봐도 기성세대 위주로 돌아가고 있지요. 청년들을 위한 정당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청년들이 정치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있는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절대로 '이생망'과 같은 청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청년들 스스로가 이생망의 문제를 자신들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스스로를 조직화하여 지금보다 훨씬 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이생망' 대신 '뭐 어때!'라는 긍정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한때 일본 드라마에 빠져 살았던 글에서 표현한 전형적인 오타쿠(!)였던 한 사람으로서 일본 문화 얘기가 나와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예전에 봤던 드라마가 생각나면서도 현 계층을 더 공고히 만들 뿐인 일본의 교육 제도와 유치원 데뷔를 읽으면서 꼴통들이 도쿄대를 간다던가, 평범한 여학생을 인기녀로 변신하는 등의 학원물, 청춘물들은 다 공립학교 이야기인가, 그리고 이것도 결국은 허상이었던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 시절 저는 표면적으로는 일본 드라마는 11~12회에 끝이 나서 질질 끌지 않고, 소재도 다양해서 한국 드라마보다 좋다고 말해왔으나 사실 그 이면에는 벗어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힘든 현실을 잠시나마 잊기 위한 수단으로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의 이야기를 택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의 아이들도 예전의 저와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요. 예로부터 문학은 그래왔습니다. 억압받는 민중들은 판소리를 통해 지배층들을 신랄하게 비판, 풍자했고, 사회적 지위가 낮고 목소리를 낼 수 없던 여성들은 여성 영웅 소설로 가부장적인 질서를 비판하고 여성의 주체적인 능력과 사회적 진출 가능성을 제기했었지요.
작품을 읽는 동안 우리는 주인공의 상황과 감정에 몰입하며 재미를 느낄 뿐 아니라 사회 현상의 부조리와 모순을 고발하기도 합니다. 다만 요즘 유행하는 작품들이 ‘환생’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 소재는 단순히 상상력과 재미의 요소가 아닌 사회적 억압으로 견디기 힘든 현실을 담고 있다는 점이 매우 놀라웠고 인상 깊었습니다.
교직 생활 중 시험만 끝나면 한강 물 온도 재러 간다고 으레 말하는 아이들은 예전에도 지금도 늘 있어왔습니다. ‘이생망’과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 한 번의 시험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 미끄러지면 다시 올라가기 힘든, 한 번의 실수도 허용이 안 되는 현실인 것도 맞습니다.
올해 담임 반 중학생들이 힘들어했던 것 중 하나가 수행평가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과목 당 두세 개의 수행평가를 치르다 보니 수행평가가 학기 당 최소 20여개가 넘고, 또 어느정도 진도를 나가야 평가를 치를 수 있기에 수행평가를 치르는 시기가 비슷하다보니 학생들은 대략 일이주 동안 하루에 3~4개의 평가를 매일 치르긴 했습니다. 열심히 노력했고 그만큼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아이들을 다독이고 위로했고, 사실 중학교는 성취평가제로 평가 특히 수행평가는 노력한 대다수의 아이들이 좋은 성적을 받습니다.
A를 받는 것에 익숙하던 이 아이들이 큰 충격으로 흔들리는 것은 등급으로 갈리는 고등학교로 진학 후가 될 것입니다. 생각만큼 내신 등급이 나오지 않아 결국 자퇴 후 검정고시로 방향을 돌리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학교로 인사를 왔던 몇 해 전 제가 맡은 학급에서 반장을 하던 제자도 내신으로 고민하다가 자퇴를 했다는 말에 생각이 깊어지던 중 이 글을 만났습니다.
‘이생망’ 챕터는 우리가 학교에서 진정 무엇을 배우는 것인지, 학교가 단순히 대입을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공교육의 방향과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필요성을 생각하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는 글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