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되어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되어 있다.
임홍택의 『90년대생이 온다(2018)』는 90년대생 담론의 대표작으로 교육계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82년생인 작가 임홍택은 현직 공기업 기획자로서 1990년대에 태어난 세대의 특성과 그들이 사회와 조직, 시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지를 분석했다.
나 역시 이제 이 작가와 비슷한 나이와 위치가 되었다. 학교에서 부장이 승진의 개념은 아니지만, 나도 이제 학교에서 짬밥이 차서 부장을 달고 있다. 아직 회사에서 살아남은 내 친구들도 차장이나 팀장이다. 새내기 교사였던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이제 학교에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보다 적은 사람이 더 많아졌다.
그런 우리가 만나면 서로 이런 말을 물어본다.
“너도 ‘요즘 애들’이 좀 다르다고 느껴?”
나오는 대답은 공통으로 “그렇다.”이다. 직접 경험했거나 간접 경험으로 접한 ‘요즘 애들’의 모습은 TV에서 희화화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방송에서는 다소 과장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애들’이라는 신인류를 맞이하면서 기성세대가 다소 당혹감을 느끼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사회적 환경과 교육 제도의 변화 속에서 이전과 다른 특성을 가진 세대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80년대 생도 이전 세대에게는 지금의 ‘요즘 애들’과 다를 바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전에 근무한 학교에서 고등학교 1학년 담임을 했을 때 일이다. 중학교의 절대평가에서 고등학교의 상대평가로 넘어오면 많은 학생이 추락을 경험한다. 시험을 치면 늘 90점 이상의 점수를 받고, A등급이 당연했던 학생들이 고등학교 진학 후에는 3·4등급을 받고 충격을 받는다.
우리 반 반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1학기 1차 지필평가는 아직 적응기라 그렇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앞으로 매 시험은 더 치열할 것이고, 오히려 성적을 유지하기조차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앞으로 더 많은 좌절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로 학생을 격려했다.
결국 1학기 2차 지필평가 후에도 반장의 성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학부모님은 담임교사인 나에게 상담을 요청하셨다. 나는 어떤 조언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에 가득 차 학부모님을 기다렸다. 그런데 학부모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아무래도 캐나다에 유학을 보내야 할 것 같아요.
내신 관리가 어렵네요.”
삶의 터전을 대한민국 한정으로 생각하는 내가 너무 소시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탈한 감정이 밀려왔다. 부모님은 상담을 오신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통보하러 오신 것이었다.
부모님의 통보 후 학생과 면담했다. 학생은 캐나다에 가서 살 자신도 없고, 유학도 부담스럽다고 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평범한 고등학교 생활을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학생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유학을 강행했다.
학교를 떠나던 학생의 뒷모습에는 미련이 가득했다. 자녀 유학을 보낼 수 있는 부모님의 재력이 학생에게 실패의 자유를 빼앗았다. 학생은 또 새로운 땅으로 가 부모의 기준에 맞는 자녀가 되기 위해 홀로 다른 학생들과 경쟁해야 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런 기억도 있다. 내가 처음으로 담임을 한 학년은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그 학급에는 학교 내신 1등이 있었다. 그 내신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을 진학했다. 졸업 후에 그 학생이 학교에 찾아온 적이 있다. 편안한 표정을 짓는 학생은 여유가 있었다.
어떻게 지내고 있냐고 물었다.
“휴학하고 미술 배우고 있어요.”
미술이라니 의외였다. 전공 학과와도 전혀 상관이 없었다.
“이제 하고 싶은 거 좀 하려구요.”
이때까지 내신 1등을 위해 한 노력이 자신의 선택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에 놀랐다. 아니, 학생 앞에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대학 진학을 위해서 기호도 여가도 포기하고 노력한 학생이 애잔하게 느껴졌다.
전교 1등으로 대학을 성공적으로 진학한 학생조차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우리 교육이 얼마나 기형적인지 말해 준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한다. 결은 다르지만, 학교 역시 학생을 사랑한다. 그러나, 요즘의 사랑은 과하다. 학생을 너무 사랑하고, 학생이 너무 소중하기에 학생을 ‘과보호’한다. 더 빠르고, 더 안전하게 학생을 이끌기 위해 부모와 학교는 물적, 사회적, 인적 자원을 총동원한다.
물론 말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기를 바란다”라고 한다. 하지만 막상 진학 앞에서는 달라진다. 평범이라는 기준이 우리나라처럼 높은 나라도 없을 것이다. 과도한 사랑과 보호 속에서 학생은 자기도 모르게 부모나 교사, 사회의 높이에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발버둥 친다.
학생은 성장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영원히 아이로 남을 수밖에 없다.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기 뜻대로 되는 곳은 판타지의 세계, 게임 속밖에 없다. “이번 생은 망했다.”라고 말하며 다음 생을 꿈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이생망’은 그 단어를 말하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다. ‘이생망’을 말하게 한 어른들이, 사회가 문제라는 것이다.
나도 이제 당당한 꼰대가 되었다. 업무를 처리할 때 이전에 했던 방식을 떠올린다. 익숙한 노래와 익숙한 음식, 익숙한 사람들 속에 과거를 추억한다. 그런 내가 요즘 애들에 대해 어떤 말을 해도 그저 꼰대의 넋두리이다.
그들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말하고 싶지 않다. 이런 말이 걱정하는 척하는 비난이 되거나.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위로 같은 질책이 되어버릴까 오히려 조심스럽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산 사람으로서 이 세대들이 살아갈 사회가 내가 살아온 사회에 비해 더 각박하고 치열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렇게 만드는 것에 나도 일조했음을 고백한다.
블랙 핑크의 제니가 유퀴즈 온더블록이라는 방송에서 자신의 당당함은 “뭐 어때.”라는 마인드에서 나온다고 했다. ‘실수해도 뭐 어때, 부끄러워도 뭐 어때.’ 하고 털어버리고 다시 하면 된다는 것이다.
삶은 무수한 실패 속에서 결국 결정적인 한, 두 번의 성공으로 버티는 것이다. 그 말은 결국 우리의 삶은 실패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뜻이다.
제니는 다른 사람들도 “뭐 어때” 마인드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나도 당부하고 싶다.
“이번 생은 망했다.” 말고 “실패해도 뭐 어때!” 이렇게 말하고 털어버리라고 말이다.
2025.05.09.
볼드처리된 부분은 각주처리입니다.
각주97) 흔히 요즘 애들을 MZ세대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이 말은 지칭하는 범위가 너무 크다.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s)와 Z세대(Gen Z)를 합쳐 부르는 용어로,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이 구분으로는 나도 임홍택 작가도 M세대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요즘 애들이란 Z세대를 뜻한다. Z세대는 일반적으로 1995~2010년생으로 구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