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가 되거나, 슈퍼맨이 되거나
기계가 되거나, 슈퍼맨이 되거나
1) 문제 푸는 기계를 키우는 학교
1984년생인 나는 흔히 이해찬 세대라고 불린다. 이해찬 세대란 1983년에서 1986년생 전후, 특히 2000년대 초중반 대입을 치른 세대를 말한다. 이 세대를 이해찬 세대라 부르는 이유는 1998년에서 1999년까지 이해찬이 교육부 장관을 지내는 동안 이루어진 교육개혁이 2002년에서 2005년 사이 대입제도에 실제 반영되었기 때문이며, 이때의 교육 개혁이 꽤나 강렬했기 때문이다.
시대에 따른 교육제도의 변화야 당연하겠지만, 우리가 ‘이해찬 세대’라고까지 불린 이유는 그만큼 교육과 입시제도의 변화가 지대한 시대였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월드컵을 개최한 그해, 전 국민이 빨간 티셔츠를 입고 “대~한민~국”을 외치던 2002년에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여고였기에 평소에 축구를 즐겨보는 학생은 없었다. 그러나 모두 오후에 하는 월드컵 예선전을 틀어달라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그때 1반 담임 선생님이었던 학년 부장 선생님은 고3이 무슨 축구냐며, 공부나 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16강에 진출하고, 8강에 진출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그 경기가 열릴 때는 고3 학생도 집으로 다 귀가가 허락되었다. 전 국민의 축제였다.
치킨 가게는 신이 났다. 닭들이 어마어마하게 소비되었다. 축구 시작 전에 시킨 치킨이 축구가 다 끝나고 나서 배달되어도 누구도 화내지 않았다. 4강에 진출했을 때 우리 집 앞에 있는 시민 운동장에서 어마어마한 폭죽이 터졌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대학수학능력 시험 ‘언어(현재는 국어)’ 영역에는 듣기 평가가 있었다. 모의고사의 국어 듣기 평가의 소재로 축구의 오프사이드에 관한 설명이 나올 정도로 월드컵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선생님들은 반우스갯소리로, 남학생들은 월드컵 때문에 공부할 시간을 많이 허비했으니, 여학생들이 대학 입시에 유리할 거라고 했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 대학에 진학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대학수학능력 시험(일명 수능)이었다. 그런데 이해찬이 교육부 장관이던 1998년에 수시라고 하는 대입 제도가 도입되었다. 이해찬 장관은 당시 획일적인 수능 중심 입시제도를 비판하며, 다양한 평가 방법을 통한 교육 기회의 확대를 목표로 수시 제도를 도입했다.
우리 반에서도 내신 점수가 좋았던 학생 1명이 1학기가 끝날 무렵 대학에 합격했다. 다른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선생님들의 판단하에 2학기 때는 학교에 출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 같은 일반 학생에게 수시라고 하는 방법은 생소한 것이었다.
수시 전형은 정시라고 불리는 수능과는 달리 내신, 논술, 면접, 자기소개서, 특기자 전형 등 다양한 요소를 반영하여 대학이 자율적으로 운영했다.
그런데 가장 기본이 되는 내신 점수에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대도시나 일부 큰 도시에는 고등학교 평준화가 진행 중이었지만 내가 사는 지역은 아니었다. 그러니 고등학교 간의 서열이 분명했다. 그런데 내신 성적 산출 방식은 수, 우, 미, 양, 가의 5단계 절대평가였다.
이는 입학 성적이 높은 고등학교 학교에서 모두 수를 받은 학생과 입학 성적이 낮은 학교에서 모두 수를 받은 학생의 같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다.
비평준화 지역에서 입학 성적이 높은 고등학교에 다니면 높은 내신 성적을 받기 어렵다. 그러나 당시나 지금이나 공부를 좀 하는 자녀를 둔 부모님은 상위 고등학교로 진학하기를 바란다. 수업 분위기가 좋고, 모범생 학생들이 많아 자녀들이 나쁜 영향을 훨씬 적게 받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우리 부모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절대평가로 성적을 산출하니 내신성적을 좋게 유지하는 것에 크게 불리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상위 고등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이 으레 수능으로 진학할 것으로 생각했고, 교사가 학생의 내신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험 문제가 어려웠다. (그래도 ‘수’를 받는 학생이 많았다)
그러나 중하위권 학교에서는 대학 입시 결과가 중요했다. 대학 입시 결과는 신입생 유치를 위한 홍보의 수단이었고, 이것이 일부 사립 학교의 경우에는 학교의 존속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런 학교에서는 소위 몇 명의 장학생을 전략적으로 유치하여 내신을 관리하였다. 그래서 문제가 쉬웠다. (그래도 ‘수’를 받는 학생은 적었다)
내신성적에서 학교 간의 서열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당시는 상고, 농고, 공고 라고 부르던 특성화 고등학교에서도 서울대에 입학하였다. 그리고 아래 표와 같이 성적 외에 다양한 비교과 영역으로도 학생을 선발했다.
2002년 서울대학교 신입생 입시요강
이런 수시 전형으로 인해 입시 방식이 다양화되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대학별 전형 기준의 차이로 인해 수험생과 학부모의 혼란이 커지고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지는 등의 부작용도 나타났다. 특히 내신 중심의 전형 구조는 고등학교 간 서열 문제와 형평성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제도의 정비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런 부작용에도 수시 전형은 점차 확대되었다. 그 이유는 당시 ‘학교 붕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었기 때문이다.
2003년 수학능력 시험을 친 나는 (엄마의 간절하고도 강력한 압력에 의해) 가, 나, 다 군 모두 사범대에 원서를 썼다. 당시 사범대는 정시에도 면접이 있었다. 인·적성 항목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다군에서 지원한 학교의 면접은 첫 번째 과제가 영어 지문 해석이었고, 두 번째 질문이 바로 이 “‘학교 붕괴’의 해결책을 말하라” 였다. 그 질문을 받고 머리가 새하얘졌다. 듣도 보도 못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학교 붕괴가 뭔지 다시 물었는지, 아니면 간략한 지문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학교붕괴’라는 말은 일본에서 유래된 표현으로,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교실의 통제 불능, 학습권 붕괴, 교사의 권위 실종, 학생의 무기력 등을 통칭하여 사용되었다. 한국에서는 수능이 대학 진학의 주요 방법이던 시절에 학생이 수능 준비를 위해 학교 교육 과정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문제시되었다.
사교육을 통해 선행 교육이 이루어졌고, 학교는 쉬는 곳이나 자율학습을 하는 곳으로 전락한 것이다. 배움이 일어나지도 않고, 평가의 영향력도 없으니 당연히 교사를 존중하지 않았다. 정상적인 수업이 진행되지 않았고 배우려는 학생들조차도 학습할 기회를 빼앗았다.
하지만 비평준화 지역의 여자 고등학교에 다니던 나는 이런 경우를 본 적이 없었다. 교실의 학생들은 선생님 수업을 열심히 들었고, 숙제 검사를 하지 않아도 모두 숙제를 해왔다. 내신으로 대학 갈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모두 시험공부를 열심히 했고, 음·미·체 수행평가도 성실히 참여했다. 심지어 축구 토너먼트인 체육 수행 실기를 하다 다쳐 깁스하는 학생도 있었다.
‘스승의 날’이면 돈을 걷어 선생님 선물을 샀고, 편지도 정성스럽게 적었다. 여고의 남자 선생님은 당시의 아이돌이였고 학생들은 대부분 선생님에게 호의적이었다. 그런 나에게 ‘학교붕괴’에 대한 의견을 말하라니, ‘학교 붕괴’가 아니고 내 ‘맨탈 붕괴’였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내어도 문제의식이 없으니, 해결책이 나올 리 만무했다.
그래서 나는 이런 대답을 하게 된다.
“‘학교 붕괴’ 안 된 것 같은데요.”
다행히 당시 면접의 영향력이 약했기 때문에 나는 이런 대답을 하고도 합격하게 된다.
그러나 나의 대답과는 별개로 사범대 면접에 이런 문제가 등장할 정도로 당시 학교 붕괴 현상은 심각했다.
수학능력시험의 시험 범위는 고등학교 전(全)과정이다. 정규 교육 과정만을 성실히 잘 따라온 학생은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지나고 나서야 전 시험 범위를 다 배우게 된다. 사실상 이런 진도로는 수학능력시험에서 고득점을 받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선행학습은 필수였다. 공교육으로는 선행학습에 한계가 있었기에 사교육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학생의 배움을 사교육이 앗아가면서 학교 교육은 복습이 되었다. 복습이 의미가 없는 학생들은 학교 수업 시간에 자습하기 바랐다. 그리고 그렇게 공부해서 수능 고득점을 받으면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또, 수능이라는 단 한 번의 시험으로 대학이 결정되는 것이 수험자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내가 수능을 보던 2002년에도 수능시험을 친 학생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재수까지 했지만, 이번 수능도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없는 성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매해 반복되는 이런 안타까운 사건으로 인해 수능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속되었다. 수능이 어려우면 자살하는 학생이 늘었고, 수능이 쉬우면 재수생이 늘었다.
학생은 수능이라는 목표를 향해, 문제 푸는 기계가 되어 빠른 시간에 더 정확하고 많은 문제를 푸는 연습을 했다. 당연히 인성교육이나 소통, 협력과 같은 것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이런 교육은 결국 문제 푸는 것밖에 할 수 없는 학생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나 같은 경우 대학을 가는 방법은 당연히 수능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시험 결과를 가지고 진학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2) ‘슈퍼 피플’을 만드는 학교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7년에 교사가 되었을 때까지 수시 전형의 영향력은 점차 커졌다. 2007년 당시 수시 모집 비율은 약 40%대 중반이었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 2010년에는 60%를 돌파, 2017년에는 약 73%에 달했다. 이 시기 교육부는 수능의 영향력을 점차 줄이고, 학생부 중심의 수시 전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유도했다.
내가 고등학교였던 시절과 달라진 것은 단순히 내신 성적뿐만이 아니었다. 대학교 입학을 위해서 학교생활기록부를 기반으로 한 자기소개서와 교사의 추천서, 그리고 이것을 뒷받침할 다양한 증거(?)들이 필요해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을 대학에서 입학사정관이라는 사람들이 검토하여 학생을 선발했다. 그래서 일명 입학사정관 제도(입사관제)라고 불렀다.
입학사정관제(Admission Officer System)는 미국식 전인적 평가(holistic review)를 벤치마킹했다. 대학이 선발한 전문 평가자(입학사정관)가 지원자의 학교생활기록부, 자기소개서, 추천서, 면접, 포트폴리오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학생을 선발한다.
미국에는 수능 같은 전국 공통시험이 없으며, 대학마다 입시 기준이 다르고, 학생은 자신에게 맞는 대학을 골라 직접 지원한다. 특히 하버드, 스탠퍼드 등 상위권 대학들은 지원자의 배경 다양성(Diversity)과 스토리(Story)를 중요하게 여기며, 단순히 성적만으로는 입학이 어렵다. 그래서 미국 대학에 입학하길 희망하는 학생은 자신의 스토리를 만들기 높은 성적을 유지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대외 활동을 해야 했다.
좋은 성적은 당연하고, 스포츠에도 능숙하며, 악기를 다룰 줄 알고, 외국어 구사 능력도 뛰어나고,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이들은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도전할 줄 알고 그에 맞는 성취를 이루며, 리더십도 갖추어야 한다.
입학 사정관 제도가 도입되던 초기에 연수에서 우리나라도 이제 문제 풀이식 수업에서 벗어나 21세기가 원하는 전인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개발해야 한다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기계식 문제풀이 위주인 수능으로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위태롭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상위 대학의 졸업자들을 뽑아간 회사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회사(기업체)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서로 협력하여 업무를 수행한다. 그런데 수능 고득점자 모범생들은 주어진 일 밖에 할 줄 몰랐다. 창의력뿐 아니라 융통성이 없었다. 협력하는 법도 몰랐다. 그래서 신입사원 재교육에 막대한 비용이 들었다.
기업체들은 대학에서 기업 운영에 적합한 인재를 교육해 주기를 바랐다. 똑똑할 뿐 아니라 사회성이 있고, 리더십과 협조성을 갖춘 눈치 있고, 예의 바른 그런 학생을 말이다. 그래서 대학은 그런 인재를 선발하기 시작했고, 공교육 역시 이런 학생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수시 전형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방편이기도 했고, 당시 사회(기업)의 요구이기도 했다. 학생은 학교로 돌아와야 했다. 대학에서 절반이 넘는 정원이 수시 전형으로 선발되었기 때문이다.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될 수 있는 활동을 스펙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학생은 자신의 적성을 일찌감치 발견해서 이를 전인적으로(리더십, 봉사활동, 독서 활동 등) 개발해야 한다. 학교는 이런 학생을 도와 특색 사업(과학 중심, 연구학교 등)을 벌인다. 교사는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교과 지도와 더불어 학생의 진학 멘토로서 학생을 이끌고 학생의 성장 과정을 기록한다.
언뜻 보면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초기의 입사관제는 학생의 자기소개서에 적을 수 있는 내용을 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문제를 낳았다.
첫 번째로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수 있는 시기가 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관리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조성되었다. 입사관제로 대입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던 시절 서울로 가는 버스에서 이런 현수막을 발견했다.
“입학사정관 대비 포트폴리오 관리”
놀랍게도 이 현수막을 붙인 곳은 유치원이었다. 서울은 다르구나, 감탄할 일이 아니었다. 남들보다 빨리, 그래서 더 많이 라는 경쟁 논리에 익숙한 부모 세대의 조바심이 낳은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었다. 여기에 사교육은 부모의 불안을 효과적으로 자극했다.
두 번째로는 학교 밖 활동도 자기소개서에 적을 수 있었기 때문에 부모의 능력에 따라 할 수 있는 체험활동의 편차가 생겼다. 예를 들면, 의사의 자녀는 부모의 인맥으로 의대에서 체험활동을 하거나 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건 의대나 약학 계열 대학 입학의 스펙이 되었다.
결국 더 일찍, 더 많은 것을 준비하기 위해 사교육과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동원되었다. 아직도 논란인 한 정치인의 자녀 입시 비리는 이때 무분별하게 이루어진 스펙 만들기의 부작용이다.
또 다른 부작용으로는 ‘비용’ 문제도 있다. 입학사정관이라는 새로운 인력이 필요하고, 대면 면접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학 입학 원서 비용이 올라갔다. 5만 원에서 10만 원까지 하는 원서 비용은 그것 자체가 부담이었다. (거기에 교통비에 식사비까지 더해야 한다)
초기에는 수시 전형에 원서 횟수 제한이 없었다. 결국 돈이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가 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는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공정한 경쟁, 교육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래서 입학사정관제는 고등학교 교육과정 안에서, 학교장이 인정하는 활동만 학교 생활기록부에 입력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그 이름도 입학사정관 제도에서 학교생활기록부 전형(학생부전형)으로 바꾸었다. 또, 수시 전형을 지원하는 기회를 6회로 제한했다.
교육부는 그 나름대로 수시 전형에서 공정성을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이런 수시 전형은 학부모와 학생, 그리고 교사까지도 경쟁으로 밀어 넣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수능을 보고, 배치표에 제시된 점수를 따라 학과를 정하는 것은 굉장히 단순하다. 그러나 수시 전형을 위해서는 다양한 스펙이 필요하다. 부모는 이런 입시제도에 필요한 다양한 스펙을 만들어 주기 위해 학생부 코디네이터 같은 사교육에 의지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인맥과 지위와 경제력을 총동원하여 자녀를 지원했다. 당연히 이런 복잡한 전형을 알아볼 시간도 없고 해줄 능력도 없는 부모는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학생은 ‘슈퍼 피플’이 되어야 하는 압박을 받았다. 사실 공부만 하기도 빠듯한 시간에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리더십을 키우고, 봉사활동도 주기적으로 다녀야 했고 독서까지 체계적으로 해야 했다. 학생부에 작성하기 위해 소논문을 쓰고, 학교 교육과정 동아리 외에 자율동아리까지 개설해서 운영해야 했고, 교내상을 수상하기 위해 각종 대회에 참가했다.
소논문 대회에 참가하는 학생이 시험기간에 공부할 시간이 없다면서 엉엉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렇게 스펙 만들기는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고 거창한 것을 해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알맹이는 없었다. 자기소개서는 진실을 담고 있지 않아서 ‘자소설’이라고 비웃음당했다.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입학사정관제도로 대학을 가는 미국의 학생 역시 마찬가지다. 아래는 윌리엄 테레저위츠의 『공부의 배신(2005)』이라는 책에서 가장 인상에 가장 남았던 부분이다.
“1학년 때를 되돌아보면서 저는 이 계산법을 소급해 적용했습니다. 저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를 읽는 데 6분, 카리용 연주 연습을 위해 하크니스 타워를 오르는데 5분을 할당했습니다. 하루에 2시간만 자고 이틀에 한 번씩만 점심을 먹는다는 것을 전제로 말이지요. …… 저는 도서관에서 주기적으로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과제를 끝마치지 못했습니다. 모임과 연습에 정신없이 왔다 갔다 뛰어다녔지만, 한 번도 제시간에 도착한 적이 없습니다. 혼란에 빠진 벤시(아일랜드 민화에 나오는 여자 요정으로, 울음소리로 누군가의 죽음을 알린다)처럼 몸부림쳤습니다. 그리고 아주 근근이 살아갔습니다.”
이 글은 윌리엄 테레저위츠에게 예일대 졸업생이 대학 신입생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라서 보낸 편지의 일부분이다. 24시간이라는 시간적 한계를 초월하는 스펙을 만들라는 압박은 학생을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나는 지금의 고등학생 역시 이와 다름없는 생활을 했을 거라 장담한다. 내가 대입을 담당했던 학생들의 독서 활동은 빽빽하게 채워졌다. 그 책들은 대부분 서울대 추천 도서들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읽은 책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학생은 서평이나 요약본을 읽고, 그 책을 읽은 것처럼 감상문을 적었다. 그리고 교사는 그 감상문을 보고 학생부에 기록했다. 『공부의 배신』에도 명문대 학생이 광적으로 서평을 읽으며 그 책을 읽은 척하는 일화를 소개한다.
교사 역시 수업 지도 외에 다양한 스펙 거리를 만드는 일에 부산했다. 소논문을 검토하고, 대회를 기획하고, 봉사활동을 지도하는 것도 모두 교사의 업무가 되었다. 학생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여 조금이라도 진로에 유리하도록 생활기록부를 기록하는 것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학생들의 자기소개서를 검토하고, 거기에 적합한 추천서를 쓰는 것까지 교사의 일이었다.
농어촌 고등학교에서 2년을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하면서 나 역시도 많은 학생들의 ‘자소설’에 일조했다. 학생이 산발적으로 한 활동을 구슬처럼 꿰어 그럴듯한 목걸이를 만들었다. 그 목걸이가 합격이라는 타이틀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학생이 한 사소한 것도 대단한 것처럼 뻥튀기했다. 학생이 스스로 탐구한 것처럼 적었지만 사실은 내 지시로 한 것도 많았다. 학생이 읽지도 않은 책을 읽어야 한다며 독서 활동 상황에 미리 적어 놓기도 했다. 그것이 학생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으며, 좋은 교사라고 생각했다.
또, 미국과 달리 한국은 내신 등급제를 수시 전형에 중요한 조건으로 보았다. 그래서 학생들은 좁은 모집단에서 더 잔인하게 경쟁해야 했다. 지금은 5등급으로 개편되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고등학교의 내신 성적은 9등급제였다.
1등급과 2등급은 지필평가의 문제 하나, 수행평가에서 1점 감점 정도의 차이로 갈라진다. 그러니 학생들은 사소한 실수 하나에도 예민해졌다. 평가에 대한 민원으로 교사가 더 힘들어진 것은 덤이다.
사회학자 엄기호 선생님은 교사를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나를 포함한 교사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1등급 학생들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인가요?”
선생님들은 망설임 없이 “네”라고 대답을 했다.
“선생님 2등급 학생들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인가요?”
선생님들은 대체로 “네”라고 대답을 했다. 강의를 듣던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2등급 대의 내신이면 사실 서울에 있는 대학은 간당간당한 등급이었다. (2010년대의 농어촌 지역의 일반 학교 기준) 그래도 2등급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수능 최저만 맞춘다면 서울권 대학 진학이 가능했으니까 말이다.
“그럼, 선생님 3등급 학생들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인가요?”
여기서부터는 대답하는 선생님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럼, 선생님 4등급 학생들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인가요?”
이 질문에는 대답하는 선생님이 없었다. 그때 엄기호 선생님이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교육은 23%의 학생만을 위한 교육입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을 때 나는 부정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하면서 내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학생을 더 높은 대학에 보낼 수 있을지로 가득 찼다. 그리고 가장 공을 들인 학생은 우리 반 1등급 대와 2등급 초반의 학생들이었다.
1등급은 고작 4%에 해당하는 학생들이다. 100명 중 4명이고, 50명이면 2명이다. 그 이하면 1명 정도가 1등을 받는다. 그런데 교육과정은 학생의 적성에 맞춘 교육을 한다며 선택과목을 다양하게 흩어 놓았다.
한 과목을 듣는 학생이 적다면 1등급을 받는 경쟁은 더욱 치열하다. 특히 물리Ⅱ 과목은 서울대를 희망하는 학생에게는 필수였지만 다른 학생에게는 필요한 과목이 아니었다. 사실상 물리Ⅱ과목은 이과 1등을 위한 과목이었다. 개설 인원수를 채우기 위해 특수학급이 동원되기도 했다. 결국 학생들은 진로 희망이 아니라 등급을 받기 쉬운 과목으로 몰렸다.
표면적으로는 협력과 배려, 봉사를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피 터지는 경쟁이었다.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라고 서태지가 ‘교실 이데아’라는 노래에서 외쳤다. 고등학교 시절 노래방에서 목 높아 부르짖던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네 옆에 앉아 있는 그 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잘난 네가 될 수가 있어”
이 노래가 나온 지 30년이 넘었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아직 내 옆에 앉아 있는 아이를 밟고 서지 않으면 내가 진학할 수 없다. 심지어 이 노래를 부른 서태지조차도 다른 연예인들처럼 자녀를 국제학교에 보냈을지도 모른다.
최근에 나는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7세 고시’라는 말을 들었다. KBS1의 탐사 프로그램 『추적 60분』 제1400회(2025년 2월 14일 방송)에서 “7세 고시, 누구를 위한 시험인가?”라는 제목이 등장했다.
일본같이 사립학교 면접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한국의 ‘7세 고시’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만 5~6세 아이들이 유명 영어학원(일명 빅3, 빅10)에 입학하기 위해 치르는 시험을 말했다.
일부 학원에서는 입학시험으로 중학교 수준의 문법, 1,800개 이상의 단어 암기, 영어 에세이 작성 등을 요구했다. 그래서 학원을 가기 위한 ‘새끼 학원’이라는 것까지 등장했다.
전문가들은 어린 나이부터의 학업 부담이 아이들의 뇌 발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 어릴 때부터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은 마음속에 분노를 쌓고, 이는 우울증과 불안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과연 이런 현실에서 누가 탈출을 꿈꾸지 않을 수 있을까?
볼드처리된 부분은 각주처리입니다.
각주90) 당시 봉사활동을 500시간 이상 한 학생이 서울대에 진학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분명히 이런 기사를 본 기억이 나는데 아무 찾아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봉사점수로 대학 가겠다고요?’(한계례, 진명선, 2008.06.29)같은 기사가 있는 걸 보면 봉사시간 같은 성적 외 스펙이 대학 진학에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기사를 보면 당시 성균관대는 특별 사회봉사 경력자 전형을 통해 사회복지시설 등에서 모두 300시간 이상 봉사한 학생을 뽑는다.
대학에서 내신 성적뿐 아니라, 인성이나 리더십, 봉사심을 평가하기 시작하자 학교에서는 의무적으로 봉사활동을 교육과정 안에 편성해야 했다. 의무로 부여하는 봉사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씁쓸하다.
각주91) 2003년 대입 수학능력 시험의 언어 영역은 역대급으로 어려웠다. (언어 영역에 늘 자신 있던 내가 지문 3개를 못 읽고 찍었다. 나는 그날 교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엄마를 보자마자 울면서 재수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찍신이 내렸는지, 아니면 진짜 다들 어려웠는지 등급이 잘 나와서 재수하지 않았다) 그런데 수능이 끝난 후 뉴스에서는 수능점수가 작년보다 평균 10점 정도 오를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이에 비관한 학생이 투신했다. 이후 보도는 정정되었지만 말이다. 하루만 더 참았더라면, 그해 수능이 어려웠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 더 비극적이었다. (MBC뉴스데스크, 2002)
각주92) 수능이 쉬우면 재수생이 느는 이유는 전체적인 점수가 올라가기에 변별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2001학년도 수능에서 380점 이상 고득점자(당시 수능은 400점이 만점)가 전년 대비 2~3배 이상 증가하였고, 만점자도 상당수 나올 것으로 예상되었다. 380점을 받아도 서울 중상위권 대학 진학이 어려웠으며, 350이상을 받아도 인서울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2002년도 수능이 그렇게 어려웠다 보다) (동아일보)
각주93) 제임스 아틀라스(James Atlas)의 『슈퍼피플(Super People)』은 2011년 10월 2일 《뉴욕 타임스》에 실린 칼럼이다.
이 글에서 아틀라스는 로즈 장학생(Rhodes Scholars)과 같은 엘리트 청년들의 이력서를 통해, 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슈퍼피플’이라는 새로운 인간형을 탐구한다. 이들은 다재다능하고 완벽에 가까운 성취를 이루었지만, 그 이면에는 사회적 불평등과 과도한 경쟁이 자리하고 있다.
각주94) 지금은 독서활동 상황과 교내상이 학생부 전형에 반영되지 않는다.
각주95) 1등급은 상위 4% 이내, 2등급은 상위 11% 이내, 3등급은 상위 23% 이내, 4등급은 상위 40% 이내, 5등급은 상위 60% 이내, 6등급은 상위 77% 이내, 7등급은 상위 89% 이내, 8등급은 상위 96% 이내, 9등급은 하위 4%이다.
각주96) 기사 검색으로 안 사실은 서태지는 자녀를 홈스쿨링 하다가 미국으로 거쳐를 옮겼다고 한다. 그 이유는 “한국에 살면 서태지의 자녀라는 꼬리표가 자녀에게 부담이 될 것 같아서”라고 한다.(스포츠서울,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