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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은 Oct 20. 2021

공항의 몽둥이주의자

태풍이 불었다



   

    비가 내리다 말다 하고 흐리디흐리다가도 이내 개는 날씨가 하루에도 몇 차례나 반복되는 계절이었다.


   느지막한 시간에 공항으로 출근해야 했는데 하필 태풍이 불었다. 공항으로 가는 대교가 바람에 흔들려 통행이 어려울 정도였다. 출근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살이 부러져 날아다니는 우산을 두어 개쯤 볼 수 있었다. 난 우산을 접어들고 바람막이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쓰고 걸었다.


   내가 탄 버스는 다리가 통행금지 상태가 되기 전에 간신히(다행히는 아니다) 다리를 통과했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던 중에 몇몇은 출근도 하지 못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루가 길어지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런 예감이 가끔만 빗나갔더라도 내 삶이 지금보다는 볼만했을 것이다.






   우리는 으레 근무 전에 그날의 상황에 대해 간단한 브리핑을 듣고 근무에 투입된다. 브리핑에서는 그날의 예약 승객이 몇 명인지, 담당 비행기에 특이사항이 있는지 등에 대한 얘기를 듣는다. 내용을 주의 깊게 듣는 척 표정 관리는 했지만 사실 머릿속으로는 그날의 식사 메뉴를 고심해서 고르고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아니면 재수 없게도 유달리 일이 많은 비행기를 배정받은 동료의 표정을 쳐다보고 있는 일이 더 많았는데 사실 그것이 더 흥미롭기도 했다. 동료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였다.


   그날의 브리핑은 퍽 달랐다. 태풍으로 공항은 혼란 상태에 돌입했다. 공항에 묶인 비행기들이 언제 출발할 수 있을지 그리고 내가 언제쯤 퇴근할 수 있을지도 아무도 몰랐다.


   새벽부터 출근해 있던 인원들은 끼니도 제대로 때우지 못한 채로 담당 비행기 탑승구 앞에서 지연 출발 관련 내용을 안내하는 중이고, 아직 태풍의 진행 상황이 불투명하다는 설명을(그러니까 여러분도 각오를 하는 게 좋겠다는 요지의 완곡한 설명을) 듣고 나서 우리는 바로 근무에 투입됐다. 적어도 그날의 브리핑 시간에는 밥 생각을 하진 않았던 것 같다.




   담당 탑승구로 향하면서 나는 있는 대로 인상을 구기고 바닥을 보며 걸었다. 나는 원래도 승객들에게 붙들리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고, 이런 상황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무슨 기분인지 알고 싶다면 유니폼을 입고 공항을 배회해 보라. 어쨌든 유니폼을 입은 나는 좋은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허수아비가 내 옷을 걸치고 있었어도 사람들은 무심코 말을 걸었을 것이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이 유니폼이라는 것에서 장점을 찾아보기란 제법 힘들고, 반대는 아주 쉽다.



   “언제쯤 출발해요?”



   질문은 하나같이 언제쯤 비행기가 출발할 수 있느냐는 이야기였다. 그들의 목적지는 가지각색이었을 테지만 어디로 가시냐는 번거로운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어디로든 출항은 불가능했다.


   애석하게도 나도 모른다는 대답 외에 내게 준비된 답은 없었다. 공항이 태풍의 영향력에서 언제 벗어날 수 있을지 정말 모르기도 했고, 전문가처럼 보이는 이들이 반드시 당신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공항에서는 특히 그렇다.





   사람들을 뚫고 도착한 탑승구에서 지연 방송을 줄곧 틀어대고 있을 때였다.


   “도대체 왜 비행기를 안 띄우는 거요?”


   당시의 질문을 다소 순화해 옮겨보자면 이렇게 옮겨낼 수 있겠다. 사내의 물음에 창인지 벽인지 헷갈리는 공항의 거대한 유리창으로 바깥을 돌아봤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구름인지 모를 정도로 밖은 그저 거무죽죽했고, 바람이 창문을 휘감는 소리가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이 많은 사람이 어떻게 태풍을 뚫고 공항까지 왔을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러게나 말이다. 왜 비행기를 띄우지 않고 있는 걸까.



   “죄송합니다.”



   전혀 죄송하지는 않았다. 속으로는 바람도 많이 부는데 어디 높은 곳에 매달아 두면 딱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이런 부류와는 말을 오래 섞어봐야 좋은 일이 없으리라는 것을 몸소 배워왔을 뿐이다.




   멋대가리 없는 유니폼을 처음 받아 들었던 날이 기억난다. 나는 광대 옷을 맞춰 입는 것보다야 몽둥이를 허리 한 춤에 착용하는 것이 한결 편안한 근무 환경을 만들지 않겠느냐 동료들에게 농담을 했었다.


  요즘에 와서는 이 생각이 다소 바뀌었다. 근무를 반복하며 나는 온건 몽둥이주의자에서 극렬 몽둥이주의자로 거듭나게 됐다.



   그냥 세상에 미친 사람이 많은 건지, 아니면 멀쩡하던 사람도 공항에만 오면 미친 사람이 되는 건지 그도 아니면 내가 멋대가리 없는 유니폼을 입고 있기에 괄시를 당하는지 심각하게 고찰해 본 때가 있었다.


   게이트가 왜 이렇게 멀리 있냐고 느닷없이 내게 고성을 질렀던 승객의 얼굴이 아직도 머릿속에 떠오른다(건축도시정책정보센터에서 누가 공항 설계를 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외에도 많은 얼굴들이 그렇다. 바라건대 차라리 이들이 앓고 있는 것이 그저 공항장애이기를. 외에도 미친놈들은 세상에 충분하니 말이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 별스러운 취미가 생겼다. 곳곳에서 유니폼을 입고 일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보는 내가 있다. 나만의 기준으로 나는 이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눈다. 생기라곤 없는 무표정 아니면 인간적인 느낌이 다소 결여된 기계적인 미소와 하이톤.


   무표정을 보면 자기 연민이, 기계적인 미소와 하이톤 앞에서는 생경함이 슬몃 새어 나온다. 사람을 대하는 일인데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한 모습들이 아이러니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 실은 사람을 대하는 일을 하는 이들이 누구보다 사람답지 못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이 진정한 아이러니가 아니려나 싶다.



   고향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날, 난 밤 비행기를 탔다. 한낮에 경이로운 운해를 내려다보는 것도 좋지만,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는 되도록 저녁 때로 고른다. 도시의 야경은 나 같은 둔치에게도 퍽 감동을 주는 데가 있고, 무엇보다 차분하게 상념에 잠길 수 있기에 밤 비행기가 좋다.


  찰나나마 이번 비행에서도 도시의 밤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형형색색의 불빛들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도시는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게 썩 운치가 있었다.


   문득, 그들도 이 모습을 보면 아름답다고 생각할는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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