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일기

by 김여생

감사일기를 쓰고 있다.
코앞에 있는 일을 걱정하느라 살기 급급해하다 좌절되었을 때 깨달았다.
살아있고 걸을 수 있고 숨 쉴 수 있는 이 모든 게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꾸준히 쓰려 노력하는데 가끔씩 한계가 온다.
언어의 한계가 오기도 하고 매일 똑같은 것만 감사하는 나 자신에 권태로움을 느꼈다.
감사일기를 쓰는 다른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 싶은데 뭘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나의 감사일기를 남에게 보여주는 건 살짝 부끄럽긴 하다. (별거 없는데도 부끄럽다.)
그러다가 오픈 채팅방을 알게 되었다.
오오 신세계다.
감사일기를 쓰는 사람들의 익명 모임이다.
인터넷의 세계는 정말 넓고 신기함 투성이다.
채팅방에서는 그때그때 감사함을 적기도 하고 하루를 되돌아보며 감사하기도 한다.
어떤 분들은 절경 사진을 곁들이며 김사 글을 쓰기도 해서 전국 곳곳을 채팅방 안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좋다.
이렇게 다른 이의 감사일기를 볼 수 있다니 인터넷은 정말 최고다.
이별한 사람은 힘듦에도 감사함을 찾아내어 모든 이에게 위로받기도 하고,
시험 합격 감사함에 한마음 되어 축하를 하기도,
어떤 이는 많이 먹을 수 있는 자신의 위장에게 감사를 하기도 한다.
(웃기기도 했는데 나의 장기에게도 감사함을 표함에 하나 또 배웠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민망할 법한 이야기도 익명의 공간에선 마음껏 할 수 있으니 참으로 재밌기도 신기하기도 하다.
혼자 감사일기를 쓸 때도 즐거웠지만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다 같이 하니 더 힘이 나는 느낌.
역시 혼자보다 둘이 낫고 둘보다 여럿이 낫다는 어른들 얘기가 저 멀리서 들려오는 느낌이다.
사람 사는 거 거기서 거기라지만 그럼에도 매일매일 다채로운 이야기가 있어 채팅방은 쉴 새 없이 알람이 울린다.
(반나절 읽지 않으면 몇백 개는 거뜬하게 쌓여있다.)
하루 종일 쌓아놓았다가 천천히 읽으면 시간이 꽤 걸리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어떤 것에 감사함을 느끼는지 내가 놓쳤던 감사함은 없는지 돌아보기도 참 좋다.
처음에는 큰 것에 감사를 했다가 점점 소소한 것 작은 것 하나하나에 감사함을 느끼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산책을 나와서 쌓여있는 230개의 감사일기를 쭉 읽어본다.
햇빛도 따스하고 하늘은 높고 나뭇잎은 붉어가는 이 좋은 날, 사람들의 감사를 읽으며 나도 감사를 느낀다.
아 이렇게 매일이 풍요롭고 벅찰 수 있다니.
가끔씩 정말 끝도 없는 감사함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때가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나이 들어서 감성적이 된 걸지도 모르지만 예전에 비해서는 정말 나의 감정에 솔직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요즘은 눈물이 수도꼭지다. 똑똑 콸콸 똑똑똑.)
지금까지 꾹꾹 참아왔던 깊은 우물 속에 저장해두었던 눈물이 이제야 터지는 것 같기도 후후.
또 살짝 감동적이라 우우우 거리고 있는데 내가 앉은 벤치 사이로 까치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나무에 걸터앉더니 계속 깍깍거리길래 여기가 너네 아지트구나? 일어날게 하고 바로 일어나 본다.
그랬더니 벤치에 툭.
새하얀 똥이.. 벤치에 떨어진다.
어버버버 하고 있는데 또 툭.
매미 오줌에 이어 이번엔 까치 똥까지 맞을뻔했다.
(그러고 보니 매미 오줌과 같은 자리였어!)
와 바로 일어난 행동력에 감사합니다.
내가 일어날 때까지 참아준 까치에게 감사합니다.

오우야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
고마워 까치! 진짜 진심이야.

감사하다보면 이렇게 또 감사할 일이 일어난다.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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