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좋아 오랜만에 동네 한 바퀴를 쉬익 돌았다.
새로 생긴 가게는 있나,
가끔 가는 가게는 잘 되고 있나.
그냥 나 혼자 동네 순찰이다.
가방에 책을 하나 넣고 오늘은 어디서 읽을까 하고 걷다가 마음 내키는 곳에서 읽는다.
(카페일 수도 공원일 수도 그때그때 달라진다.)
구석구석 골목길까지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예전에 자주 가던 카페 앞을 지나친다.
전망도 좋고 음료도 괜찮은데 주인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해서 발길이 조금 뜸해지게 된 곳이다.
'오늘은 열었을까?'
호기심에 올라가 본다.
3층이라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1층부터 메뉴판이 세워져 있는 것이 왠지 열었을 것 같은 느낌!
3층에 도착하면 바로 앞에 가게 문이 있는 곳인데 오늘은 열었다.
오오 럭키, 안에 손님도 없어 보인다.
들어가니 서쪽 방향 카페라 해가 카페 깊숙이까지 들어와 조명을 켜지 않았는데도 환하다.
'어어. 저희 마감까지 1시간 남았는데 괜찮으신가요?'
직원이 날 보더니 살짝 당황하며 말한다.
시간을 보니 오후 2시 53분.
4시까지라고 한다.
이 시간엔 사람이 안 올 줄 알았나 보다.
'오 그래요? 평일은 일찍 닫나요?'
'아니요 평일 주말 모두 같은 시간이에요.'
그렇군, 주인이 바뀌었나 보다.
'저 커피 한 잔만 마시고 마감전엔 갈게요.'
하고 옆에 있는 커피 머신을 보는데 왠지 깨끗한 게 마감을 한 것 같은데.
'혹시 커피 머신 마감하셨나요?'
'네??'
'마감하셨으면 그냥 맥주 한잔해도 괜찮아서요.'
(메뉴판에 맥주가 눈에 보였다. 맥주는 제조 음료가 아니니 마감을 앞둔 직원이 편해할 것 같았다.)
'아뇨. 아직 다 마감한 건 아니라서 시키셔도 돼요.'
'그래요? 그럼 아이스 아메리카노 가능할까요?'
'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감사합니다.'
다행이다.
커피가 안된다고 했으면 핑계도 좋겠다 맥주나 한잔할까 했다.
(오리온 맥주 마시고부터 가끔씩 맥주가 마시고 싶다. 이것 참.)
주문을 완료하고 어디에 앉을까 고민해 본다.
테라스 자리만 살짝 위치가 바뀌고 안은 그대로다.
이곳이 좋은 이유는 정서향이라 해가 질 때 카페 전체가 환해진다.
테라스에서는 동네 유명한 산 전체가 보이는데 그 또한 절경이라.
해와 구름과 산이 한데 어우러진 게 앞에 큰 건물도 없어서 뻥 뚫린 전망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내가 자주 왔던 이유 중 하나다.
예전에는 수제차를 팔았는데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산이 정면으로 보이는 자리에 앉는다.
마감시간 15분 전에 알람을 맞추어놓고 커피를 기다리며 책을 펴본다.
넉넉한 시간 아래 독서도 즐겁지만 이렇게 정해진 시간 안에 읽고 나가야 하는 날이면 뭔가 살짝 긴장되면서 집중력이 높아져 후루룩탁탁하게 읽어지는 맛이 있다.
그리고 오늘은 추리소설인 만큼 아마 책장이 스릉스릉하게 넘어갈 것이다.
커피는 금세 나왔고 책을 펼치고 햇빛을 듬뿍 받으며 읽기 시작한다.
구름이 많은 날이라 해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니 책이 밝아졌다 약간 그늘졌다를 반복한다.
복수심에 불타는 그가 범인을 찾기 위해 죽은 척을 하고 변장을 한다.
고도의 심리전을 곁들인 추리소설은 흥미진진하다.
점점 얼굴이 뜨거워진다.
구름 사이로 나온 해의 열기가 얼굴로 광선을 쏜다.
더운데. 뜨거운데.. 책에 집중하느라 몸을 움직이지 않고 계속 자세를 고수하다가 이내 잊어버린다.
알람 진동이 드르륵드르륵하며 집중이 깨졌다.
앗 벌써 이런.
책 보느라 오랜만에 절경을 못 봤네.
책을 덮고 몇분간 높은 하늘의 구름들과 살짝 가려진 해와 그늘진 웅장한 산을 잠시 바라보다 나왔다.
아 조금 더 읽고 싶었는데 싶지만 아쉬울 때 끝내야 또 보고 싶은 법이다.
1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거울에 사과 두 개가 떠있다.
응? 볼에 시뻘겋게 올라온 사과 두 개.
아 오늘 광합성 충전 완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