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감과 무관용은 폭력이다.

by 이방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해변의 카프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 중 하나는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고(소설에서는 ‘상상력이 없는 사람들’이라 표현한다) 관용이 없는 태도는 상대에게 어떤 불이익을 직접 가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폭력이며, 그것이 초래한 불행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회사를 다닐 때가 떠올랐다. 내가 다닌 회사는 규모가 크고 정말 많은 사람들과 함께 생활했고, 그만큼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제도적으로 문화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획일적 문화와 행동이 직,간접적으로 강요되었다. 나는 그것이 소름 끼치도록 싫었다. 획일적이기를 강요하는 회사도 싫었고, 그에 아무 저항하지 않는 수동적인(상상력이 없는) 사람들이 싫었다. 나도 그들과 같이 변할까 봐 두려웠고 그것을 항상 경계했다. 나를 방어하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곳과 사람들, 그곳에서 뾰족하게 각을 세우고 사는 삶은 피곤하다. 나는 너무 피곤했다. 그 뾰족함은 나에게 자신들과 같기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찔러댔다.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았다. 그 뾰족함은 급기야 내 자신을 찔러대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뾰족하냐고, 그냥 그들처럼 살기로 하면 편하지 않느냐고, 그렇게 아프면서도 상상력 없이 살기를 거부하는 나를 자신도 이상한 놈이라 생각하기 시작했고, 결국 마음에 병이 왔다.


문제는 나는 다른 사람의 다양성, 회사라는 곳의 특이성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감하지 못했고 관용적인 자세도 취하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자, 나는 자신의 다양성마저 인정하지 않기 시작했다. 끝까지 날을 세우고 동화되기를 거부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속한 세상도 비정상이고, 나도 비정상이다’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내가 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에 온갖 부정적인 생각을 덧붙였다. 어떤 만족도 보람도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도 다른 사람도 모두 이해하지 못했던 나.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를 혐오하면서도 나 자신마저 수용하지 못했던 내 내면의 병은 나를 얼마나 아프게 했던가. 이제 나의 특성,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느껴지는 면을 부정하지 말고 너그럽게 수용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래야만 타인과 다른 곳의 문화에 대해서도 너그럽게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게 된다면, 성과나 연봉은 중요하지 않다. 경험적으로 일로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직장에서는 사람으로 무너진다. 오직 공감과 관용을 실천할 수 있는지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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