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어린 시절 친구를 만나다

인간관계에 대한 씁쓸한 단상

by 이방인

동네 마트에서 우연히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S를 보았다. 서로 연락이 뜸해지다가 연락이 끊긴 지는 거의 10년이 되어간다. 이제는 오히려 마주치는 것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시간의 무게가 묵직하게 느껴지지만 여전히 서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구나. 다행히(?) 마스크를 쓰고 있어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렇게 잠깐 스쳐 지나간 그 찰나의 시간 동안 예전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에서 경기도의 신도시로 전학을 와서 처음 사귄 친구였다. 특이하게도 방학 기간에 신도시에 대거 입주를 해서 개학과 동시에 수백 명의 동급생이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는 상황이었다. 그 당시에 나는 지금과는 달리 꽤나 외향적인 성격으로 첫날부터 처음 만난 친구들과 학교가 끝나고 축구를 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 내 근처에 앉아있던 그와도 말을 텄고, 함께 축구를 하며 친해졌다. 이후 중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는 달랐지만 꾸준히 친한 관계를 이어왔다.


그 시절 나는 그를 베스트 프렌드라고 생각했지만 그도 그랬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의 아버지는 토목 관련 사업을 하셨는데, 사업이 잘 되어 경제적으로 유복했다. 반면에 나는 중학생 때부터 가세가 기울어 온 가족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그나마 어린 시절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한 집안의 경제력 차이가 크게 체감될 일이 없다. 그래서 그럭저럭 잘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와 나의 경제력 격차는 여기저기서 검출 수 없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입는 옷, 신는 신발, 최신형 컴퓨터와 게임기 등.. 그는 항상 나보다 더 빨리 더 좋은 것들을 가지게 되었고 나는 그를 부러워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대학교에 진학하고 성인이 되자 나는 그가 나와의 관계를 동등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은 가졌지만 나는 갖지 못한 것을 내가 누리게 해 주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맛만 보는 정도로 제한했다. 내가 충분히 누지 못해 자신이 가진 것을 계속 동경하도록 하는 데서 우월감을 느꼈던 것이리라. 또 우리는 게임을 하러 자주 피시방에 가곤 했는데, 사전에 약속 없이 갑자기 연락해서는 만나곤 했다. 문제는 그가 만나고 싶을 때는 만날 수 있었지만, 내가 만나고 싶을 때는 그럴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내가 먼저 연락을 했을 때 그는 항상 다른 이유를 대며 칼같이 거절했다. 그는 나를 불러낼 수 있는 사람이지만 나는 그를 불러낼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는 나를 상대로 항상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확실히 하려고 했다. 만나는 시기도, 장소도, 무엇을 먹을지도 나는 선택할 수 없었다. 나는 여전히 지독히 가난했고, 대학생이 되어서도 연애도 하지 못하고 학교와 집만 왔다 갔다 하며 살고 있었다. 그가 나를 부르는 날은 항상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다가 사정이 있어 여자 친구를 조금 일찍 보내줘야 할 때였다. 그러면 경기도에 살던 내가 주로 강남까지 나가서 그를 만났다. 그럴 때면 자기는 연애를 하면서 온갖 느끼한 음식을 많이 먹었다며 분식이나 국밥 같은 음식이 당긴다고 했다. 그리곤 나와는 그런 음식을 먹으러 갔다. 국밥, 아니면 분식.. 그게 나에게 딱 맞는 음식이라는 듯이.


돈(경제)에 관련해서는 나와 동등한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 사업을 도우며 어린 나이에도 나이 지긋한 사업가들을 많이 만나고 다녀 나이에 비해 아는 게 많았다. 그 시절 나는 경제신문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경제 관련 실전 지식은 전무하지만 일반 지식은 꽤 많이 알고 있었다. 한 번은 그와 차를 타고 도곡동을 지나고 있었다. 당시는 타워팰리스가 우리나라의 대표 고가 아파트로 명성이 자자할 때였다. 타워팰리스가 시야에 들어오자 나는 자연스럽게 타워팰리스에 대해 신문에서 읽은 이야기를 꺼냈다. 최근 거래가가 얼마고 이런 이야기였다. 평소에 말을 차분하게 하는 그가 갑자기 내 말을 뚝 끊으며 다급하게 무언가를 말했다. 타워팰리스 옆에 그보다는 높이가 좀 낮은 아파트가 있는데 (아이파크였던 것 같다) 사실은 타워팰리스보다 그게 더 비싸다는 것이다. 그 행동에 담긴 진짜 의미는 이런 것이다. “뭐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나 비싼 아파트 하면 타워팰리스인 줄 알지만 나처럼 진짜배기들은 더 고급 정보를 알고 있지. 그러니 내 앞에서 그런 걸로 아는 척하지 말라고.” 나는 당시에도 그 의미를 바로 이해했지만 크게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이 친구의 자존심을 건드렸구나’ 하고 생각했다.


사실 당시에도 나는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충 알고 있었지만 그가 그렇게라도 불러내 주는 것이 좋았다. 나는 자존감이라곤 지하 200미터까지 파고 내려가 암반수와 함께 찾아야 했던 가난하고 비루한 대학생이었으니까. 그래도 그 덕분에 강남에서 콧바람도 쐬고 그가 운전하는 차도 얻어 탈 수 있으니 좋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은 차가 없었고 돈이 아까워 택시도 절대 타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의 차를 타는 게 승용차를 타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었다. 내가 고분고분 맞춰주지 않으면 다시는 그가 연락하지 않을 것을 걱정해서 더 수동적으로 따라가기만 했다.


그리고 나는 이십 대 후반에 취직을 하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 직장인 치고는 꽤 수입이 좋았고, 어린 시절 궁핍하게 살 때의 경험 덕에 알뜰하게 쓰고 돈도 잘 모았다. 물론 그도 계속 부유하게 살았지만 예전에 비하면 나와의 경제력 격차는 빠르게 좁아졌다(내가 빈곤 상태에서 빠르게 벗어났으므로.) 시간이 지나 나도 차를 샀고, 전세 아파트를 얻었다. 그가 항상 누리던 절대적 우월감은 옅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가 가진 우월감은 모두 경제력의 우위에서 온 것이었으므로..


그리고는 그에게서 연락이 뜸해졌다. 나는 원래 그와의 연락에 수동적이었기 때문에 좀처럼 나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만나고 싶어 하는지는 그와 나 사이에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연락이 뜸해지고 많은 시간이 흐르자, 나는 차분히 제삼자의 시각으로 예전 일들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는 다시는 그와 예전처럼 잘 지낼 수 없을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는 나를 만났을 때의 우월감을 즐겼고, 나는 그걸 알면서도 비굴하게 친구 사이를 유지했다. 그리고 그가 더는 우월감을 느끼지 않게 되자, 친구 사이는 끝이 났다.


나의 비루했던 십 대와 이십 대, 그리고 정말 열심히 살았던 삼십 대를 돌아본다. 그리고 친구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한다. 혹자는 순수한 마음으로 만난 어린 시절의 친구가 진짜 친구이자 평생의 친구고, 성인이 되어 만난 친구는 사회적 관계망이 사라지는 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진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순수한 시절 순수한 마음으로 만난 친구라고 해서 그 관계가 반드시 굳건한 것은 아니다. 나는 그와 지금의 내 직장 동료가 같은 시간에 경조사가 겹치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직장 동료의 경조사에 참석할 것이다. 지금의 나와 매일 만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에게로. 그들과도 직장이라는 인연의 끈이 사라지면 결국 모든 관계의 끈도 끊어진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사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지 않을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시간 앞에서도 굳건한 사이라는 건 환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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