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작은 고을에 원님이 부임했다 부임초 작은 방(지금의 읍면)들을 초도순시했다 어느 날 말을 타고 관속들과 마을을 지나는데 큰 정자나무 아래에서 고누를 두고 노는 두 사람이 보였다
한 사람은 수염이 하얀 노인이었고 한 사람은 아이 었다 그런데 노인이 아이에게 존댓말을 쓰고 아이는 노인에게 반말을 하고 있었다
원님은 그 광경을 보고 "내가 부임한 고을을 이렇게 어른 아이의 장유유서가 없고 예의범절과 도덕이 없는 고을로 그냥 놔둘 수 없다"라며 진노했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고누놀이는 땅이나 돌 등에 놀이판을 새겨 넣고 자신의 말을 움직여 상대의 말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거나 잡아서 승패를 가르는 놀이다
그날 노인은 오랫동안 치매를 가진 사람이었고 아이는 그 노인의 손자였다 노인은 폭력과 무엇이든 던져 파괴하는 성향의 치매환자였다 집안에서도 그 노인을 봉양하는 일이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손자가 할아버지 손을 끌고 마을 당산나무에 와서 꼬니 놀이를 하면 할아버지는 온순해졌다 가족들이 숨을 돌릴 시간은 그때뿐이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아이였을 때 당산나무 아래에서 고니 놀이를 하면서 어른 내기를 했던 기억을 되살려 내며 치매 기를 잠시 잃어버린 것이었다
어릴 때 아이들이 모여했던 어른 내기 꼬니 놀이는 이긴 사람이 어른이 되고 지는 사람이 아이가 되어 말도 올리고 이긴 아이에게 엎드려 절도하고 심부름도 해주는 놀이었다
치매는 옛날 기억을 잘 가지고 있으나 가까운 기억이 적어지는 병이라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 손자가 할아버지와 마당에서 꼬니 놀이를 했더니 꼬니 놀이 동안은 할아버지 치매 폭력성이 없어진 것이었다
그 후로 매일 같이 당산나무 아래로 모시고 가서 치매 할아버지와 꼬니 놀이를 했던 것이다 집안에서는 그보다 더 큰 효도의 일이 없었고 가족에게는 그것이 사람 사는 유일한 재미였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그 아이가 근본이 없는 싸가지 없는 놈이라고 했으나 자초지종을 알게 된 후로는 모두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사람들은 훗날 마을에 그 아이의 이야기를 담은 효자비를 두었다
오늘날도 선정이란 쇠락해져 가는 고을 백성들의 재미를 들여주고 키워주는 것이다 그것의 가장 큰 일은 문화적 자존감을 지켜주고 키워주는 것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