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들의 농사 개념은 무엇이었을까? 마을 공동체에 그 이야기가 보인다 조상들에게 논밭은 우주가 농부의 몸에 붙여준 팔다리다라고 했다 그래서 논밭의 착취는 농부가 팔, 다리를 잃는 것이니 그것에서 분노가 쌓이면 농민 봉기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지리산 사람들의 농지에 관한 철학은 이랬다
농촌은 마을 공동체다 농사가 공동체 생존의 도구였고 논밭이 그 터전이었다 그래서 마을에는 외지인의 논밭 소유를 허용하지 않았고 가족의 노동력으로 경작해낼 수 있는 면적의 초과 농지가 소유되지 않도록 했다 그것의 실체는 마을 공동체가 골고루 농사를 잘 지어 살도록 농지 매매의 자율적 규범을 지켜내며 살아낸 것에 있다
논밭은 한 마지기가 200평 정도다 즉 한 마지기란 지금의 660제곱미터의 크기인데 씨앗 한말을 뿌릴 수 있는 면적이다 삼대가 한 지붕에서 살던 시절 가족 노동력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면적은 10마지기 정도였다 한 마지기에서는 쌀 한가 마 내외가 수확되었다 땅의 비옥도와 농부의 부지런함이 수확량을 결정해 냈고 많게는 쌀 세가 마도 얻어낼 수 있었다
농지는 수확량에 따라 논밭의 거래가가 달라졌다 즉 한 마지기의 논에서 쌀이 한가 마 정도 수확된 논이라면 쌀 한 가마니 값에 5년간 생산량의 합이 그 농지의 매매값이 되었다 5년이란 기간은 이웃사촌의 합이 오호였던 오호 작통법에서 나온 것이다 즉 다섯 집이 이웃사촌이 되면 굶어 죽는 사람 안 생겨난다고 했던 경험 때문이었고 논 한 마지기는 가족을 살려낼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출발 농사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저축해서 모은 돈으로 논밭 한필 지를 사게 되는 날은 하늘에서 팔다리를 하나씩 얻게 되었다고 했다
또한 논밭을 팔게 될 때도 반드시 같은 동네 사람 중 논밭이 없거나 적은 사람에게 팔았고 열 마지기 이상 가진 사람에게는 팔지 않았다 왜냐하면 마을에 부의 계층이 생겨나면 공동체에 커다란 갑질 장애물이 생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가난하여 논밭을 살 수 없는 가족에게는 마을 주변의 공한지 개간 우선권을 주어 논밭이 생겨나게 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전답 이름은 각시배미, 또랑배미, 눈썹배미, 발톱배미 같은 가족의 사연을 담았다 그러하니 논밭은 농부의 가족이었다
논밭에서 은 금보화를 캐내려는 것은 평화로운 농부 가족에 대한 테러다 그것의 응징은 하늘이 주었던 팔다리를 회수해 가는 것이고 그 우주적인 팔다리 자리에 패가망신을 붙여주는 것일 게다
땅보다 정직한 것은 없다? 농부는 오늘도 그 답을 내려 애쓰고 있다 농지는 틀린 답으로 큰 세상을 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