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백성의 유토피아 광한루 앞 구릉에 밤나무 숲을 만든 사연 이야기 조선시대 백성들의 유토피아가 남원에 세워졌고 광한루다 백성들은 그때로부터 600년 동안 광한루를 지상의 달나라로 디자인시켜왔다
그 하나의 이야기는 이렇다 광한루 앞 구릉에 밤나무 숲이 있었다. 사람이 만든 인공림이었고 그 시원은 1444년 무렵이었다. 남원부사 유지례는 부임 초부터 큰 숙제를 안았다. 남원성 사람들의 민원과 광한루에 든 "백성이 우주다"라는 민초들의 꿈을 함께 해결해 내야 하는 것이었다. 남원성은 평지인 데다 요천과 축천 사이에 끼여 있어 바람이 머무는 곳이었다. 더구나 성벽으로 사방을 둘레 쌓아 놓으니 남원 성안에서의 굴뚝 연기와 생활 오염원에서 나온 냄새가 성안의 공기를 탁하게 했다. 기온이 낮을 때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봄부터 여름까지는 생활의 큰 장애물이었다. 부사는 백성들의 그 민원과 광한루에 든 조선 백성의 우주관 확장에 고민했고 성 밖 오리쯤 광한루 서남쪽 황무지에 밤나무를 심은 것이 그 해결책이었다. 밤나무의 선택에는 남원 백성들의 지혜가 작동되었다.
첫째는 요천 변에서 남원 성안으로 불어 드는 바람에 밤꽃 향기를 실어 성안의 공기를 정화시키자는 것이었다.
둘째는 흉년이 들어 산모가 젖이 나오지 않을 때 아이 양육에 필요한 젖 대용품의 확보를 위해서였다. 산모가 죽으면 밤과 쌀로 죽을 쑤어 아이의 젖 대용식으로 사용해온 조상의 경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셋째는 남원 백성들이 요천의 은어를 잡아 구워 먹는 연료로 밤송이를 활용토록 하기 위해서였다. 인근에 땔감 나무가 없으니 이보다 더 좋은 지혜는 없었다.
넷째는 혹시 모를 전쟁으로 남원성 백성들이 싸우다 함께 죽으면 관으로 장례를 치르지 못할 경황이 생길 때 밤나무에 이름을 새겨서 목에 걸어두는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다섯째는 농사용 기상대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밤꽃이 잘 피면 풍년 온다는 속담처럼 봄에 밤꽃의 작황을 살펴 흉년을 미리 대비한다는 것이었다.
여섯째는 공개되고 건전한 남녀의 산책로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옛날 말에 시어머니는 밤꽃 필 무렵에 며느리 단속을 한다고 했다. 밤나무 꽃향기가 남성 정액의 향기와 비슷하다고 해서 생겨난 말이다. 밤꽃 향이 사랑의 묘약이라는 말처럼 밤꽃 필 때 사랑을 고백하면 좋다고 하였으니 가정과 고을의 공동체를 단단하게 해주는 산책로의 활용을 위해서였다.
일곱째는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활용하여 미래의 남원성 전투의 전력을 확보하자는 것이었다
그 모두는 그대로 활용되었고 고을 백성의 그 공동체 가치는 정유년 만 명이 장렬하게 산화한 만인정신의 젖줄이 되었다
광한루 앞 밤나무 숲은 훗날 율장(栗場) 즉 밤 시장이 되었다가 광한루 확장으로 사라졌다. 백성이 지도에 그려놓은 것이 사라지면 역사의 평가 물이 된다 백성이 두려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