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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 Jun 03. 2022

미리 쓰는 유서 2

미리미리 미래 준비

지난해 12월 19일 일요일 오후,

막내아들과 외출하고 돌아왔다.

피곤했다. 씻고 한 숨 잘 요량이었다.

일요일 오후는 항상 피곤하다.

다음 날이 월요일이므로.


동생이 연락받은 내용을 내게 전해줬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친척이 돌아가셨다고.

내가 종손이니 가야 한다고. 갑작스러웠다.

처음에는 그 집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나 했는데,

할아버지의 아들이란다. 내게는 오촌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어릴 적 '오촌'이라는 호칭이 불편해(사실 잘 몰라) 그냥 삼촌이라 불렀고,

도시로 이사한 후, 명절 고향 방문 때, 잠깐 보던 사이다.

대학 진학 후, 우연히 가까운 곳에서 직장생활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삼촌 숙소를 방문하여, 맥주 한잔 기울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기억이 난다.

그 삼촌은 시골에서 농사짓기에는 리버럴 한 성격의 소유자로 항상 일탈을 꿈꿨던 사람이다.


각자의 삶이 터전에서 그렇게 지나다가, 갑작스러운 비보를 듣게 된 것이다.

뇌수술을 는데, 관리를 잘하지 못했고, 뒤늦게 악화되어 돌아가셨다고 한다.

가족들 모두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마음속으로 불안한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급하게 씻고, 장례식장을 향해 운전대를 잡았다.

너무 일찍 집을 나서는 아빠를 보면 울먹거리는 막내아들이 눈에 밟혔다.

주말부부. 금요일밤에 왔다가 일요일 밤에 떠나는 아빠와의 짧은 만남이

더 짧아진 것에 대한 서운함과 서러움이었을 것이다.

젠장. 하필 일요일 오후에..

3시간을 달려 고향 근처에 위치한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담담하게 조문객을 맞이하는 할아버지와, 나를 보자마자 통곡하시는 할머니를 마주하고,

어린 상주(喪主)와, 나보다 겨우 네댓 살 밖에 많지 않은 젊은 망자(亡者)와

대면하게 되었다.


모든 기차는 종착지가 있다. 그리고, 승객들은 자기만의 종착지가 있다.

기차에서 안내 방송이 나오면, 자신이 내려야 할 역에 다다르기 전에 짐을 챙기고, 

기차가 서기를 기다린다.

죽음과 기차 여행.

공통점이라면 종착지에 내릴 준비를 할 시간을 가질 수도,

반대로 그럴 시간조차 없이 갑작스레 마감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기장이 민망하다면, 가족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차곡차곡 쓰는 것도 좋고,

함께 읽었으면 하는 인생에 도움이 될만한 글이 담긴 필사 노트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삼촌은 가족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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