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이 오래 머무는 시간
고등학교 때,
시, 산문 등을 의무적으로 제출해야하는 행사들이 종종 있었다.
시간 낭비라 생각했고, 최대한 빨리 끝내기 위해,
대충 시의 모양을 한 엉성한 글을 써서 제출했다.
며칠 뒤, 국어 선생님은 평소 말이 없던 친구의 이름을 호명하였고,
그 친구의 글솜씨가 대학교 2학년 정도의 수준이라고 말해주며,
한 부분을 읽어주셨는데, 친구의 글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 수는 없었지만,
내 수준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고등학교 시절, 영어 성적이 좋지 않았음에도,
잘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그래서, 영어를 전공하고 싶었고,
이과 대학을 자퇴하고, 결국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하였다.
거의 모든 과목이 영어와 관련되었고, 행복했다.
나중에 문학이 아닌 언어를 더 공부하게 되었지만,
지금도 문학에 대한 로망이 있다.
주말에 도서관에 잠깐 들렸는데, 우연히 소설가 김훈 선생님의 글을 보게 되었다.
글 속에서 라면 냄새도 나고, 연필이 서걱서걱 종이 위를 걷는 소리도 들리고,
사람들의 땀내도 진동한다.
책 속의 글자들은 모두 자음과 모음의 조합을 잉크라는 화학물질을 이용해
종이의 2차원 공간 위에 찍어낸 것뿐인데, 나는 그 글을 통해 오감이 자극받는
경험을 자주 한다. 황석영 선생님의 '낯익은 세상'에서 난지도를 묘사하는 부분이 있는데,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 있고, 불쾌한 냄새가 진동하는 그곳,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곳에 있는 듯한 경험을 한 것이다. 글자 사이사이에서 난지도의 진동하는 냄새가
나를 괴롭히는 듯 실감 났다. 신비롭고 경이로울 뿐이다.
시(詩)를 표현한 말 중에 - 책 제목 이기도 한 - '잘 빚어진 항아리(by 클리언스 브룩스)'가 있다.
이 표현을 떠올릴 때마다, 문학 작품이 창조되는 방식과 우리가 어떤 상황이나 대상을
묘사해야 할 때, 혹은 그 대상과 마주하여 소통할 때,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 같다.
훌륭한 작품을 읽을 때마다,
각각의 표현들이 그 자리에 원래 있는 것 같고,
그 표현들 외 대체될 만한 다른 말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을 자주 경험한다.
의사소통의 주요 수단인 말과 글을 잘 빚어 전달하는 노력보다는,
서둘러 대충 주물러 던져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오늘도 나는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음에 화가 났고,
상대에게 덜 빚어진 찰흙 덩어리를 던지고 말았다.
The limits of my language means the limits of my world.”
(내 언어의 한계가 곧 내 세계의 한계다)
- 비트겐 슈타인, 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