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 그리고 연말.
유난히 고단했던 한 해였다.
어느 겨울밤, 꿈을 꾸었다.
나는 통유리창 앞에 앉아, 운동장만큼 넓은 잔디 마당을 보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캄캄한 겨울 하늘에서 눈이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목소리가 통유리창을 지나 내게 들려왔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나는 평소 불면증으로 늦게 잠자리에 들었고, 자다 깨다를 반복했었고,
개운하게 하루를 시작해 본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 목소리는 사라졌고, 동시에 눈을 떴다.
오랜만에 푹 잤고, 왠지 기분이 좋았다.
무엇보다 고단했던 나날들로 지쳐있던 나는
그 한마디의 말로 위로를 받은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 혹시 이 꿈이 과거에 어디에서 우연히 경험한 어떤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있는지 궁금해,
검색창에 '눈' '괜찮다'를 검색해 보았다.
신기하게도 미당 서정주 시인의 "내리는 눈발 속에는"라는 시와 여러 면에서
닮아 있었다. 혹시 전에 이 시를 (우연히라도) 읽었고, 내 꿈을 통해
그 상황이 변형되어 형상화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했다.
아니면, 사람들이 눈이 내리는 것을 보면서 그런 위로를 받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나의 마음은 나만이 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타인들에게 비치는 이미지일 뿐이다.
과연 마음속에 뾰족한 돌멩이를 품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위로의 말을 건네려고 이런저런 말을 찾아, 결국, '힘내!'라는 두 글자로
그의 아픔에 공감을 표해보려 하지만, 그의 아픔은 여전히 오롯이 그의 것이고,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는다.
올 겨울도, 눈이 나리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