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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 Nov 07. 2022

피자와 아버지

온기가 있는 밥 한 그릇

아내의 입원으로, 아이들과 며칠을 지낸 적이 있는데, 집안 살림이

쉽지 않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나름 한다고 했는데, 순간순간

시간에 쫓기는 기분이었고, 그것 때문인지, 잊어버리거나 대충 하고 

지나간 일이 다반사였다. 무엇보다 매 끼니를 챙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마지막 설거지를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부엌일을 거의 도맡아 하는 아내에게 한 끼라도 남이

해준 음식을 먹는 것이 곧 휴식을 의미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밥은 먹(기만하)는 자에게는 당연할지 모르나, 하는 사람에게는 지겨운

노동이고 고민거리일 수 있다. 여하튼, 며칠이지만, 아내의 부재는 바로 무질서였고,

아내의 재림은 쾌적함과 질서의 회복을 의미했다. 아내님을 맞이하라~^^


둘째 아들은 토핑이 전혀 없는 밋밋한 고르곤졸라 피자를 좋아한다. 

아내는 아들을 위해 토요일 저녁 고르곤졸라 피자를 주문한다.

몇 분뒤 그것을 가지러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피자집을 방문한다.


지난 토요일도 어김없이 피자를 가지러 피자집에 들렀다. 

주문번호를 말할 필요도 없어, 피자를 직접 가지러 온 사람이 나밖에 없었고, 

항상 그렇듯 내가 가져갈 피자가 카운터 앞 테이블에 놓여있는지 살폈다.

그날은 내가 조금 늦게 갔는지, 피자가 평소보다 일찍 나왔는지 모르겠으나,

보온을 유지하기 위해 피자박스가 이불보 같은 것에 덮여 있었다.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가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어머니는 큰 방 아랫목 가장 따뜻한 부분에 밥 한 공기를 놓고,

솜이불을 덮어두었다. 

나는 가끔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가, 아버지의 밥공기를 만져보곤 했다. 

생각만큼 따뜻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도착하시면 어머니는 밥상을 따로 차리셨고,

이불속에서 식어가는, 하지만 온기가 남아있는 공기를 꺼내 아버지의 밥상 위에 고이 놓았다.

아버지의 하루의 마지막은 어머니의 이런 정성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번 주 토요일에도 아들은 어김없이 고르곤졸라 피자 타령을 할 것이고,

아들이 1도라도 따뜻한 피자를 먹도록, 마라토너의 자세로, 

최선을 다해 팔을 흔들며 내 앞을 가로막는 자들을 하나씩 재껴가며, 

피자집 반환점을 돌아 집으로 전력으로, 그것도 미친 듯이 걷기와 달리기를 

섞어 놓은 듯한 활극을 보여 줄 것이다.

내가 아닌 피자를 열렬히 맞이하는 저 어린 녀석이, 아들의 행복(과 아내의 휴식)을 위한

아빠의 정성과 노력을 조금이나마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시간이 지나면 문득 생각이 날까?


This part of my life, this little part, is called "Happiness".

(나는 내 인생에서 이 부분, 이 작은 부분을 '행복'이라 부른다)

                                                 - 영화'행복을 찾아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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