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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훈 Aug 17. 2019

하늘과 바람과 별과 사막

몽골 여행기

오랜만의 여행기다. 지난 여행기와 이번 여행기 사이에 몇 번이나 여행이 더 있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안 썼다. 뭔가를 쓰기에 여행기간이 짧았거나 여행의 목적이나 태도가 안온해서였을 것이다.

나는 고리타분한 성격이라 여전히 여행에서 무언가를 배우려고 한다. 여행이 나의 어딘가에 쌓여서 전보다 나은 내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에게 여행은 투자고 여행기를 남기는 행위는 다분히 자위적이다. 

누군가 내게 여행의 취향을 묻는다면 ‘정제되지 않은 도시’를 좋아한다고 대답한다. 계획보다는 자연발생적이고, 완성된 형태보다는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도시 경험을 여행에서 기대한다. 지금까지는 그런 도시를 연거푸 여행했었다. 그래서 이번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 구체 없이 추상만 있는 곳에 가고 싶었다. 황량한 사막이 떠올랐고, 몽골행 항공권을 예매했다.

낙타와 초원의 아이들 / 몽골의 초원은 아이들에게 좋은 놀이터다.


여행 당일, 몽골행 항공이 한참 지연됐다. 공항에서 밤을 지새웠고, 달이 조금씩 옅어질 무렵에 비행기에 탑승했다. 떠오르는 해와 나는, 비슷하게 구름을 지났다. 구름은 산성을 만난 리트머스 종이처럼 서서히 붉어졌다. 떠오르는 해의 방향으로 날아가는 철새들의 일생을 상상했고, 나무 사이로 햇빛이 스며드는 숲 속의 촉촉한 흙을 생각했다. 지구의 자전과 비행시간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신용목 시집,  “아무 날의 도시”를 읽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서 여행을 시작한다. 여행지의 첫인상은 그 지역의 냄새로 정해진다. 소위 선진국의 도시에선 차가운 냄새가 난다. 역동적인 도시에선 땀 냄새를 연상케 하는 특유의 냄새가 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는 달궈진 초원의 냄새가 났다. 

초원의 모녀 / 염소를 키우고 수공예품을 판다.


택시를 타고 울란바토르 시내로 갔다. 미리 예약해둔 현지 여행사를 통해 열흘간 함께할 가이드와 운전기사, 동료를 만났다. 가이드를 따라 현지 화폐로 환전하고 유심칩, 생필품을 샀다. 그리고 몽골의 초원과 사막 3,000km를 달릴 푸르공(Furgon)에 탔다. 푸르공은 시베리아의 오프로드를 달리던 구 소련의 군용차다. 오로지 거친 외부환경 극복만을 고려했기 때문에 안전벨트도 없고, 손잡이도 없다. 승객은 수시간씩 냉방이 되지 않는 간이의자에 앉아 엔진의 굉음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울란바토르를 벗어나면 도로가 없다. 고정된 풍경의 연속이다. 하늘길을 운전하는 파일럿의 시선도 이만큼 단조롭진 않을 것이다. 도로가 없으니 달리는 곳이 길이다. 먼저 지나간 차의 바퀴 자국이라도 있으면 행운이지만, 남한 면적 15배인 몽골의 인구는 고작 삼백만 명이다(몽골은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국가). 그중 절반은 수도에 집중되어 있으니 광활한 대지에서 사람의 흔적을 찾기 어려운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푸르공 내부 / 몽골에서 동물을 마주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여행 중에는 생존만 생각했다. 식사, 배설, 수면 등이 안전하게 이뤄질 방법에 집중한다. 물이 귀하니 씻기 어렵고, 화장실이 없으니 먹고 마시는 것은 최소화한다. 야영하는 날은 초원의 추위와 싸우고 게르(몽골 전통가옥)에서 자는 날은 더위, 벌레와 싸운다. 생존만 강조되는 환경에서 상념은 사라진다. 몸과 마음, 오늘과 자연만 생각했다.

여행시간의 대부분은 차에서 창밖을 보거나 숙소에서 책을 읽고, 별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별을 볼 땐 초원이나 사막에 침낭을 깔고 누웠다. 이토록 오랜 시간을 밤하늘에 집중한 적은 없었다. 밤하늘(지구)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 어렴풋이 알던 별자리와 은하수의 존재를 경험하고, 왜 별이 반짝인다고 하는지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여행 중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하늘과 별을 봤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시간이다. 만약 내가 다시 한번 몽골에 간다면 아마도 밤하늘이 그리워서다.

푸르공과 텐트 / 사막으로 가다가 해가 지면 야영한다.


여행의 넷째 날에 고비사막에 도착했다. 사막의 초입에 오아시스처럼 위치한 여행자 게르에 짐을 풀고, 아직 태양이 매서울 때 사막 언덕(홍고르 엘스)을 올랐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으나 평소에 꾸준히 운동을 하는 성인 남성인 나에게도 오르기 쉽지 않은 언덕이었다. 경사가 가파르고 부드러운 모래를 오르다 보니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절반은 미끄러진다. 조금 걷고 쉬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가장 높은 언덕에 올랐다. 그리고 파도처럼 굽이굽이 펼쳐진 사막 언덕들을 봤다. 모래는 곱고, 이어지는 사막은 무한하며, 언덕들의 형태는 유려했다. 억겁의 시간이 만들어낸 장관이 황홀하여 해가 질 때까지 자리에 앉아서 사막을 바라봤다.

고비사막 / 천진하게, 물끄러미 아름다움을 바라보았다.


여행 일곱째 날의 주요 동선이 "나담축제"로 폐쇄됐다. 아무래도 자동차 경주가 진행 중인 듯했다. 폐쇄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려면 8시간 정도가 필요한 상황이라서 어쩔 수 없이 길을 개척하기로 했다. 상술했듯이 몽골은 가는 길이, 길이 되는 곳이다. 내비게이션도 이정표도 없는 초원의 길은 베테랑 운전기사도 알 겨를이 없다. 수평선만 보이는 광활한 초원은 모든 감각을 희미하게 만든다. 운전기사는 유목민을 만날 때마다 차를 세우고 길을 물었다. 매일 오프로드를 수백 킬로미터씩 이동하는 우리에겐 막막한 시간이었다. 심지어 날씨도 궂어져서 우박과 장대비가 떨어졌다. 우리는 비가 새는 푸르공에서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길을 잃어서 사망하는 사람들이 매해 발생한다는 몽골 여행안내서의 문구가 생각났고, 기름은 갈수록 떨어져 갔다.

길을 잃고 헤매느라 상당한 시간을 소모했고 불안함에 떨어야 했지만, 덕분에 현지인 게르에 들어가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만나는 유목민마다 길을 물어가며 더듬더듬 행선지를 찾아가던 중 낙타를 키우는 유목민이 우리를 집으로 초대했다. 몽골 유목민은 손님 대접을 융숭하게 한다고 들었는데 그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크지 않은 게르에는 삼대가 함께 살고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 파란색 통에 담겨있던 낙타 발효유를 가득 퍼줬다. 낙타 발효유는 점성이 높고 맛은 유통기한이 지난 요구르트와 유사하나 낙타 특유의 냄새가 짙게 난다. 낙타 냄새를 굳이 설명하자면, 플라스틱이 불에 녹을 때 나는 냄새와 유사하다. 가까스로 낙타 발효유를 마시자 이번에는 낙타유주를 줬다. 낙타유를 증류한 투명한 술로 가이드에 의하면 만들기 어렵고 귀하다고 했다. 이태리의 그라빠(grappa)라는 포도 증류주와 비슷한 맛이나 낙타 냄새가 첨가되어 있다. 대접한 음식은 모두 먹는 것이 예의라기에 받은 술까지 모두 마셨다. 감사한 마음에 과자를 포함해서 몇 가지를 선물하고 아쉽게 작별했다. 

유목민 게르 / 공간별 분화 없이 부엌, 거실, 침실이 하나다.


이 외에도 기억에 남는 순간이 많다. 한참을 달려서 사람들과 충분히 멀어지면 우산을 펴고 볼일(!)을 봤다. 물을 틀면 물 대신 파리가 쏟아져 나오는 수도꼭지도 있었다. 휴지로 설거지하고, 몸 여기저기를 기어 다니는 벌레 탓에 잠을 설치던 밤이 많았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걸을 때 뒤에 있던 낙타가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내 몸에 낙타 콧물이 흩뿌려지던 끔찍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여행자 게르 / 중앙에 아궁이가 없고, 식탁과 침대가 있다.


몽골 여행을 준비하면서 "생애 단 한 번, 몽골"이라는 문구를 봤다. 낯설고 불편한 여행이지만 한 번은 경험할만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육 년 전에 마라톤을 처음 뛰었는데, “생애 단 한 번”은 경험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주변의 권유가 주효했다. 한 번 경험해보고 다신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그 후로 세 번을 더 뛰었다. 내게 몽골 여행이 그렇다. 생경할 만큼 청명한 하늘과 지평선에 가까운 대지의 광활함, 사람의 것이 아니라 자연의 것인 초원과 초현실적으로 느껴졌던 사막에서의 일몰, 사무치게 따가운 사막의 햇빛과 시리도록 차가운 초원의 새벽, 별똥별이 떨어지길 기다리며 하염없이 밤하늘을 바라보던 무용한 시간이 그리워지면 다시 한번 몽골에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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