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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Jun 01. 2018

꿈꾸던 서른이 아니면 어때_영화 싱글즈

서른에 본 영화




좋아하는 배우가 있다. 유명을 달리했지만 까만 눈동자와 부드러운 목소리가 여전히 기억에 남는 배우 장진영. 좋아하던 배우가 생각날 때, 그가 나왔던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인 일이다. 배우는 출연한 작품과 그 배역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아닌가 싶은데 (인간적 유대가 없었던 오롯이 관객에게는) 나 역시 배우 장진영을 그가 출연한 몇 편의 영화로 추억한다. 그 중 하나가 영화 싱글즈다.  





영화 싱글즈는 용돈 대신 월급을 받기 시작하면서 ‘좋은 아침’의 의미를 잃은 평범한 29살 싱글’s(오랜 친구 나난, 동미, 정준)의 이야기.  





패션 디자이너 나난(장진영)은 남자 상사의 불합리한 처우로 외식 사업부에 인사 이동 발령을 받는다. 무인도에 떨어진 듯한 기분이지만 그렇다고 회사를 관둘 수는 없다. 카드 값, 월세, 대출 등등.. 매달 꼬박꼬박 나가는 지출만해도 100만원 이상이니까. 지금껏 해온 패션 일과는 전혀 상관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출근은 해야만 한다.  

설상가상, 안 좋은 일은 늘 몰아서 오는 법이라고 했던가. 오래 사귄 남자친구에게 실연을 당한 나난은 오랜 친구 동미와 정준의 집으로 향한다.  





동미와 정준은 룸메이트다. 동미(엄정화)는 잘 다니던 회사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를 당했는데 몇 날 며칠을 밤새워 PT를 준비했지만 남자 상사 하나가 그 자리에 밥 숟갈을 얹었다. 그리고 뒷풀이 담당자로 배정을 받았다. 동미는 그날로 그 상사에게 모욕을 앙갚음했고 회사를 나오고야 말았다.   


정준(이범수)은 호구다. 어린 여자친구에게 혼신을 다하지만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양다리를 선언했다. 그럼에도 정준은 그녀에게 잘한다. 최선을 다해 그녀 생애 최고의 남자로 기억되고 싶다.  





나난은 직장에서 버림 받았지만 가혹한 생계 탓에 회사의 바짓단을 부여 잡은 29살의 싱글이고, 동미는 대차게 직장을 걷어찼지만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 싱글 백수다. 정준은 사랑 받지 못하는 소심한 싱글이고.  

서른의 언저리에 선 세 친구는 이런 현실의 서른을 꿈꾸지 않았다며 하소연한다. 나난의 말을 빌려오자면 일이든 사랑이든 그 어느 하나쯤은 성공한 서른의 모습을 그렸다고 했다. 하지만 세 친구는 그 어떤 것도 이뤄놓은 것이 없다.  


나난에게도 새로운 사랑은 찾아왔다. 뉴욕으로 떠나야 하는 남자(김주혁)는 자신과 함께 떠나 다시 패션 공부를 시작해보자고 권유했다. 동미는 ‘적당히 아침 밥 차려주고, 밤엔 살랑살랑- 몸 흔들면 모든 게 따라오는데, 역시 남자 하나 잘 만나니 모든 게 해결된다’고 했다. (아무래도 15년 전 영화다 보니, 남자와 여자에 관해 그려지는 이야기들이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나난은 그건 ‘사기’라고 생각했다. 제 자리라고만 생각해오던 패션 일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자리가 맞는 자리였나 의심스럽기도 했다. 사실, 레스토랑 일도 적성에 맞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흐르는 그대로, 몸을 맡겨보기로 한다. 물론 결혼해 남편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것은 거부했고.  


이 시기에 동미는 오랜 친구 정준과의 하룻밤 일로 아이를 갖게 되는데, 정준에게 그 사실을 밝힐 수 없던 동미는 홀로 아이를 키울 것을 결심한다. 아이 아빠가 되어줄 것을 다짐하며 동미의 곁을 지키는 나난. (분명 정준은 자신의 아이와, 동미에게 최선을 다했을 남자인데 동미는 끝내 정준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정준이 사랑하는 여자가 자신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일까? 이 부분은 영화 내 해결되지 않아 조금 아쉽다)  


어쨌든 영화는 다시금 홀로선 두 여자의 대화로 끝을 맺는다. 

“마흔 살쯤엔 뭔가 이뤄져 있겠지, 아님 말고-“ 





영화 싱글즈를 보고 글로 남기기 위해 가만히 생각을 정리하는데, 이번 영화는 그다지 나의 생각을 많이 담아낼 필요가 없겠다 싶었다. 서른 즈음에 나난과 친구들이 겪은 에피소드는 그 성격이 내 것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 안에서 느끼며 자란 감정들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나난과 친구들처럼 내게도 서른은 막연히 무언가에 성공한 나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난의 나이 즈음이 되고 보니 서른은 그냥 보통의 서른이었다. 누구는 이미 부와 명예, 혹은 다른 성공을 맛 보았겠지만, 뭐- 나의 서른은 그렇다. 아직 내 자리가 어디인지 확신 없이 오늘을 산다. 그래도 이어지는 것이 내일의 오늘이라,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 중이고. 


성공한 서른을 꿈꿨던 나난은 서른이 되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꿈꾸던 서른이 아니면 뭐 어때, 그냥 보통의 행복한 날이면 그걸로 충분한 오늘이다.  





* 이 영화가 개봉하던 때에 내 나이가 열 다섯이었는데. 십오 년 전의 서른 살과 지금의 서른 살이 같고 있는 고민과 생각들이 비슷하다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는 영화다. 아마 십오 년 후의 서른이 되는 사람들이 보아도 많이 다르지 않을 것 같다.  


29살을 연기하던 이범수, 엄정화 그리고 고인이 된 장진영, 김주혁 배우가 참 예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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