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며, '좋아! 이거야' 하고 공감해도 그때뿐이에요. 막상 읽고 나면 금세 잊어버려요. 기록도 시도해봤는데 제 삶에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독서 모임 등에서 자주 들리는 고민입니다. 저 역시 몇 년 전 비슷한 고민을 했습니다. 책을 ‘잘’ 읽고 싶은 마음에 관련 서적을 찾아 읽고, 독서 커뮤니티에 가입해 활동하기도 했지요. 그러다 나의 독서와 기록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개념을 만났습니다. 이후 내게 독서와 기록은 지식의 ‘저장’이 아닌, 삶에서 ‘아웃풋’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이 되었습니다.
사람마다 책을 대하는 방식이 다르지요.
유형① 별도 기록 없이 책 읽기
메모 없이 독서에만 집중합니다. 책의 내용을 즐기고, 책은 깨끗하게 보관하는 것을 선호하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내용을 기억하기 어렵고. 지식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유형② 책에 밑줄 치고 메모하며 읽기
책에 밑줄을 긋고 여백에 메모하죠.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이나 질문을 기록함으로써 저자와 적극 소통하며 능동적으로 사고하게 됩니다. 다만 메모가 책 안에 갇혀 있어 다시 펼쳐 보지 않는 이상 기록을 다시 접하기 어렵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유형③ 노트에 기록하며 책을 읽기
별도의 노트에 책의 내용과 생각을 정리해요. 책 여백의 제한 없이 자유롭게 기록할 수 있지요. 또한 책에 메모하면 생각의 흔적이 여러 책으로 흩어지지만, 노트에 기록함으로써 독서 기록을 할 때마다 이전의 기록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유형 ④ 연결하며 읽기(아웃풋 독서)
기록 간의 연결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합니다.
저의 독서는 ①에서 ④의 방향으로 변화해 왔습니다. 특히 기록을 시작하면서 독서가 더 즐거워졌지만, 한때는 그저 내용을 모두 파악하겠다는 욕심에 목차별로 요약하는 데 급급했어요. 그러다 나의 독서 인생을 완전히 바꿔준 기록법을 만났습니다.
70권의 책과 400편이상의 논문을 만든 기록의 힘
우연히 제텔카스텐(Zettelkasten)에 관한 글을 접했습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니콜라스 루만의 기록법인데요 그는 평생 70권의 책과 40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 엄청난 생산력의 비밀이 바로 이 기록법에 있었어요.
제텔카스텐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국내에는 정보가 별로 없어서 구글에서 블로그, 사이트, 유튜브, 책 등을 찾아 읽었어요. 그 후로 ‘책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전까지 제게 책은 지식의 원천이었으나, 정작 사색하기보다는 내용을 정리하는 데만 열심이었거든요. 삶에 연결해 변화를 일으키는 일에는 소홀했던거지요. 나의 기록은 그저 차곡차곡 쌓아두는 저장소였습니다. 하지만 제텔카스텐을 계기로 아웃풋을 만들어내는 ‘기록시스템’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왜 책을 읽고 기록을 하려 할까요? 결국 읽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으로 연결하기 위함이 아닐까요.
제텔카스텐을 직접 써보며, 그 과정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제텔카스텐은 독일어로 ‘메모 상자’라는 뜻입니다. 낯선 이름에 어려워할 필요는 없어요. 결국 본질은 ‘기록 간의 연결’에 있으니까요. 톨스토이의 문장을 예시로 기록하는 과정을 따라가 볼까요.
1단계 : [수집하기] 마음에 닿는 구절 원문 기록하기
기억하고 싶은 구절, 느낌표를 찍어주는 구절을 원문 그대로 적습니다. 제목, 작가도 정확히 기록합니다. 톨스토이의 “우리가 가진 생각은 손님과 같다”라는 문장이 들어왔다면. 밑줄을 긋고 정확한 출처와 함께 노트에 옮깁니다.
2단계 : [소화하기] 저자의 말을 ‘나의 언어’로 번역하기
해당 원문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듯 내 식대로 다시 써봅니다. ‘내 머릿속 생각은 내 자신이 아니라, 잠시 왔다가 다시 사라지는 나그네와 같다.”라고 써보았어요. 수동적으로 원문을 읽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언어로 정리할 때, 타인의 지식은 비로소 내 안으로 들어옵니다.
3단계 : [통찰하기] 인사이트 정리하기 : 내 삶과의 ‘연결고리’찾기
이 문장이 지금 나의 관심사, 고민, 상황과 어떻게 만나는 지 생각해봅니다. 이 문장이 마음을 멈추게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명상에서 자신의 생각을 제3자로서 관찰하라고 하는데, 생각을 손님으로 본다는 점에서 맥락이 같네?” 질문하며 인사이트를 정리했습니다. “생각은 내가 아니다. 부정적인 생각에 휩쌓였을 때, 손님이 왔네, 곧 사라지겠지!라고 여기기.’ 책 속의 문장이 내 일상을 움직이는 지혜가 되었어요.
4단계 : [활용하기] 맥락별로 기록간 연결하기(핵심!)
기존에 쌓아온 나의 통찰들과 새로운 기록을 연결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도서분류법처럼 단순히 ‘주제’에 따라 분류하지 않는 것이에요. ‘내가 언제 이 메모를 꺼내쓸 수 있을까?’를 스스로에게 물어야합니다.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전하거나 글을 쓰는 구체적인 상상을 하며, 활용도에 따른 맥락별로 노트를 연결합니다.
예로 톨스토이의 문장에서 얻은 통찰을 ‘철학’이나 ‘심리학’ 처럼 주제별로 저장하면 쌓일수록 활용이 어렵지요. 맥락과 활용도를 생각하여 이를 ‘회복탄력성 키우기’ 섹션에 넣었습니다. 인사이트가 모일수록 생각은 깊어지고 아웃풋의 힘은 강력해집니다.
삶에서 아웃풋을 만들어내는 독서 기록
니콜라스 루만은 카드상자를 활용하여 기록을 연결하고 모았지만, 지금은 디지털 노트를 활용해 더 손쉽게 연결할 수 있습니다. 아날로그가 기록이 좋다면 ‘링 바인더’를 활용해 기록을 모으고 연결해보아요. 디지털이 편하다면 ‘롬리서치’나 ‘로그세크’ 같은 메모 툴을 써도 좋습니다.
하지만 도구보다 더 중요한 건, 책을 읽고 정리하는 것을 넘어 삶 속에 살아있는 기록으로 활용하겠다는 나의 의지입니다. 사색과 연결의 과정이 없다면 좋은 문장들도 시간이 흐르면 잊히죠. 기록을 통해 사색하고 통찰을 삶과 연결할 때, 독서와 기록은 비로소 즐거운 내 삶의 일부가 됩니다.
#참고
- 손케아렌스 <How to take Smart Notes> => 한국어 번역서 '제텔카스텐'링크
- 노트필기와 글쓰기를 혁신하는 10가지 원칙 => 위 숀케아렌스의 책을 잘 정리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