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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산여자김작가 Jul 23. 2019

부부 백패커

(feat. 더 무거워진 배낭의 무게)



 배낭을 메다 눈이 맞은 우리 부부는 올여름도 배낭을 메고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제주도 비행기를 예약하고 배낭을 싸면서 그 어느 때보다 설레었다. 하나에서 둘이 되고 처음 맞는 여름휴가이기에 좀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텐트, 침낭, 매트, 의자, 테이블... 주섬주섬 장비들을 배낭에 넣었다. 문득 어떤 텐트를 챙겨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생각할 것도 없이(?) 함께 쓰던 텐트를 챙겼을 테지만, 이번 휴가개인 텐트를 가져가고 싶었다. 생존을 위한 각자의 배낭을 짊어지고 함께 떠나는 여행, 생각만으로도 멋지게 다가왔다. 남편은 사서 고생하는 거라며 후회하지 말라고 했다. 물론 텐트를 같이 사용하면 내 배낭의 무게는 더 가벼워질 것이다. 하지만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늘 혼자서도 잘해왔지만, 결혼을 하고 난 뒤에는 뭐든지 남편과 같이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의지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의지한다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순간 그런 선택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제주도로 떠나는 아침, 평소대로 배낭을 어깨에 둘러다. 2박 3일 동안 입을 옷이며 개인 소지품이며 바리바리 챙겼더니 등 뒤로 묵직함이 느껴졌다. 무릎에 힘을 주고 벌떡 일어서니 내가 생각했던 배낭의 무게가 아니었다. 평소보다 훨씬 더 무겁게 느껴지는 배낭에 순간 망설였다. 지금이라도 텐트를 뺀다고 해야 할까. 3kg이라는 숫자는 충분히 나를 고민하게 만들 수 있는 무게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 텐트를 같이 쓰자고 하려니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일단 못 먹어도 고였다. 그렇게 우린 제주도로 향했다.


 제주도는 백패커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남편도 나도 따로 온 적은 있으나 함께 제주도를 찾은 건 처음이라 설레었다. 우린 수화물에서 찾은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걷기 시작했다. 분명 옛날에도 똑같이 던 배낭인데 체력이 떨어진 건지 살이 쪄서 그런 건지 유독 무겁게 느껴진 나의 배낭,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은 터라 아등바등 고 걸을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걱정이 됐는지 짐을 꺼내 자신의 배낭에 옮겨 담으라고 했다. 이미 자신의 배낭은 나보다 훨씬 더 무거우면서도 그렇게 말해주는 남편이 고마웠다. 그러나 내가 무거우면 남편도 무거울 수밖에 없는 법, 나의 배낭은 2박 3일 동안 내가 온전히 견뎌내야 하는 무게였다.


 우도에 도착한 후 우도등대를 거쳐 마트를 지나 비양도까지 우린 참 열심히 걸었다. 설레는 마음에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많이 하다가 어느 순간 조용해진 우리를 발견했다. 더운 날씨 탓에 이미 등짝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여름휴가를 왔는데 우리는 왜 행군을 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과거 혼자 배낭 메고 다닐 때 꼭 같은 취미를 가진 남자를 만나 부부 백패커가 되겠노라 다짐했었는데, 부부 백패커가 된 지금은 이게 보통일이 아님을 또 한 번 깨달았다. 물론 배낭을 짊어지고 함께 땀 흘리는 일은 언제나 뿌듯하다. 예나 지금이나 그 마음은 변함이 없는데 유독 시리 무거워진 배낭이 신경 쓰였 뿐이다.


 문득 더 무거워진 배낭의 무게가 마치 우리의 결혼과 닮아있는 듯했다.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할 시간이 많다는 것, 시간마냥 편안하고 평탄하지마는 않다는 것, 그 속에서 서로의 소중함을 알아 간다는 것, 그리고 내가 원하는 모양대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 묘하게 많이 닮아있는 결혼과 배낭이었다. 고로 제는 사서 고생하는 짓은 안 해야겠다 다짐했다. 물론 다음 휴가는 휴양지로 계획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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