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장례식

유골은 우주에 뿌려주길

by 김잔잔

"엄마, 잘 가"


보라색 라벤더가 수북하게 핀 정원에서 스산한 새벽바람을 맞으며 나는 손을 흔든다. 오늘따라 작은 별들로 가득 찬 밤하늘은 무지개 빛깔의 먼지가 잔뜩 붙은 검은색 이불 같다. 어디선가 우주에는 지구에 있는 모래알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별들이 존재한다고 들은 적이 있다. 여기서 보는 우주의 일부도 이렇게 예쁜데, 밖에서 마주하는 우주는 얼마나 숨 막히게 눈부실까?

지금쯤이면 한 평생을 뜨겁게 살다 간 지구의 여인이 그 별들 사이를 여행하고 있을 것이다. 우주선에서 나온 그녀의 유골 몇 줌이 어두운 우주를 밝히며 부유하는 상상을 해본다.

보고있어, 엄마?

끝없는 암흑 속으로 흩어지고 있을 엄마의 파편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거기선 외롭지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어느 방향이든 까만 하늘을 올려다보며 엄마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것뿐.


엄마는 이미 멀리 떠났다.



엄마의 새드 엔딩

한 때 대치동 1타 강사로 이름을 날렸던 엄마는 늘 수업 준비를 하고 책을 쓰느라 바빴다. 쉬는 날이라고는 거의 없는 인생이었지만 그 대가는 타워 팰리스, 전원주택, VVIP 카드로 확실하게 돌아왔다.


동시에 엄마는 다른 대가도 톡톡히 치러야만 했다. 매일 스스로를 혹사하고 늘 쉬어야 할 때 조금 더 버틴 결과, 그녀는 건강을 잃었다. 슬프게도 이럴 때 인생은 잔인할 만큼 공정하다.


의사는 엄마에게 몸 상태가 호전되면 방사선 치료를 시작할 것을 권했다. 엄마는 물론이고 우리 가족은 모두 하던 일을 중단하고 양평의 전원주택으로 아예 이사를 왔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엄마를 데리고 강변을 조용히 걷다 오기도 했다. 자연의 신선한 공기는 도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맑았고 엄마는 자주 웃었다.

- 조용해서 정말 좋아.

그녀의 인생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시간에 쫓기지 않는 휴식이었다.


가끔 엄마는 서재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무언가에 몰두하기도 했다. 못내 마무리하지 못한 강의가 아쉬워서, 언젠가 다가올 복귀를 준비하기 위해서인 줄로만 알았다.


엄마는 죽기 전에 가족들에게만 미리 본인의 장례 절차를 귀띔해두고 떠났다.


두툼한 부조금과 하얀 화환으로 가득한 강남 장례식장에서 멍하니 조문객들을 받으며 엄마가 한 말을 떠올렸다.

- 장례식장은 지인들 오기 편한 곳으로, 그리고 가장 비싸고 큰 방으로 해야 돼.

항상 주어진 것은 완벽하게 해냈던 일타강사답게 자신의 죽음에도 철저한 준비를 해두고 간 그녀가 나는 속상하고 슬펐다.


우주 장례 프로젝트

비행기에서는 곧 착륙한다는 방송과 함께 플로리다의 날씨를 알려주고 있었다.

복잡한 절차를 거치느라 유골을 안고 내내 곯아떨어졌던 나는 그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곧 엄마가 꿈꾸던 곳에 도착해.

조금만 더 기다려줘.


공항에서부터 관계자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검은색 리무진에 탑승했다. 플로리다의 햇빛은 태양처럼 눈부셨다.



유골의 일부를 넘겨받은 관계자가 앞으로의 과정을 간략히 설명해줬다.

엄마의 생의 조각들은 탐사선이 화성까지 가는 여정을 함께하다가 우주로 방출될 것이라고 했다. 엄마 외에도 수 백명의 사람들이 한 날 한 시에 육중한 기계에서 하얀 가루로 조우한다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스페이스십X의 기발한 장례 프로젝트는 천문학적인 탐사 비용을 위해 고안해낸 프로모션이었다. 수억 원의 비용을 감당하고서라도 우주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은 이들로 인해 예정 인원은 금방 마감되었다.


그중 한 명이 십 년 동안 대치동 돈을 쓸어 담던 엄마, 바로 우리 엄마였다.



작별인사

발갛게 타오르는 우주선이 하늘로 치솟는다. 나는 이 모든 게 꿈만 같다는 생각을 하며 화면을 응시한다. 저기 어딘가에 채 몇 그램도 나가지 않는 엄마의 조각들이 함께 타고 있다니.


- 조용해서 좋아


한 평생을 누군가의 엄마로, 며느리로, 와이프로, 대표님으로 정신없이 살아온 그녀는 용감하게 우주로 여행을 떠났다. 누구도 쉽게 갈 수 없는 고요한 침묵의 세계로 자신을 던지는 엄마가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주선은 뿌연 연기만을 남긴 채 사라졌다.

가슴속에서 벅차오르는 어떤 감정들을 껴안으며 나는 엄마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지막이 속삭였다.


잘 가, 엄마


별이 뜨는 가녀린 새벽

여러 생을 담은 기계가 혜성처럼 지고 있었다.




2020.4.22. 오늘의 상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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