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을 위해 중매를 서기로 했다

by 김잔잔
다음 생이 있다면 꼭 한 번쯤 뜨거운 사랑을 해보고 싶어

1.

방년 29세.

나는 환갑에 가까운 두 부모님을 위해 이 한 몸 불살라 소개팅을 주선하기로 마음먹었다. 전래 동화 속 까치도 은혜를 갚고자 제 몸보다 훨씬 커다란 종에 대가리를 박는 데, 29년째 꽁밥을 먹는 내가 그 정도도 못하랴.

날짜는 다가오는 12월 31일, 부모님의 35번째 결혼기념일로 잡았다.


마 여사! 토요일에 시간 되지? 우리 자주 가던 터미널 근처 한정식 집에서 점심 먹자.
내가 이미 예약도 했고 선물도 준비해놨어. 2시 잊지마!
봉 선생! 토요일 3시, 신세계 백화점 지하에서 커피 한잔하며 부녀 타임 콜? 전번에 아빠가 커피 맛있다던 그 카페로 와.


2.

젊을 때 제대로 된 연애라고는 못해보고 중매로 서로를 만나 지지고 볶으며 산지도 어언 35년째. 두 분 모두 사랑은 고사하고 안 맞는 성격을 가족이란 틀에 욱여넣느라 세월을 다 보냈다. 자식 결혼할 때까지만 산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며 버텨왔지만, 내가 곧 비혼을 선언하는 순간 그 계획도 힘 없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이때껏 팔다리를 혼인 신고서와 자식에게 동동 매여 살았으면 충분하다.

남은 세월까지 살기 싫은 사람과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기엔 두 분의 인생이 너무 짧고 또 소중하다. 하지만 누가 육십이 다 된 나이에 제 손으로 묶은 밧줄을 끊고 사랑을 찾아 나서겠는가. 그래서 내가 나서기로 한 것이다.


3.

- 엄마, 다시 태어나도 아빠랑 결혼할 거야?
- 절대 노노. 나는 시누이 없고 집안 빵빵한 사람으로! 성격은 남자답고 좀 호탕했으면 좋겠어. 왜 가끔 같이 술도 한 잔씩 할 수 있고 그런 사람말야.


- 아빠, 다시 태어나도 엄마랑 결혼할 거야?

- 아니. 말이 잘 통하는 사람 만날 거야. 외모는 중요하지 않는 것 같애. 아빤 그 김태희랑 송혜교도 딱히 예쁜 줄 모르겠더라. (헐)


4.

역시 내가 보기에도 둘은 좀처럼 맞는 구석이 없다. 이로써 마여사와 봉선생의 취향은 어느 정도 확보했다. 자식으로서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총동원해 딱 맞는 사람을 매칭 하리라. 아빠는 성격이 차분해서 말을 잘 들어주면서 세상 경험이 많은 작가 아줌마가 좋을 것 같다. 엄마는 동호회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사교성 좋고 시원시원한 건물주 아저씨면 어떨까? 나는 내가 아는 50대 언저리의 남녀를 샅샅이 뒤져서라도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집념으로 중매쟁이를 자처했다.

5.

섬세한 장소 선정은 없던 분위기도 만든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곧장 이야기를 할 정도로 사교성이 좋지만 남들의 눈을 의식하는 엄마에게는 아늑한 한정식 집의 안쪽 방이 제격이다. 반대로 느긋한 성격의 아빠는 오히려 단 둘만 있는 방에선 어색하고 민망해 할 수 있기 때문에 차라리 적당히 사람들과 섞일 수 있는 카페가 낫다.


6.

약속 기억하지? 사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 깔끔하게 입고 와!

결전의 날, 준비 완료.

이제 나머지는 두 분과 하늘의 운에 맞길 일이다.

비밀리에 맞선남과 맞선녀 후보까지 줄줄이 만나 사전 면접까지 마친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다. 얼마 전엔 내 옷을 핑계로 일부러 엄마 아빠를 백화점에 데려가 어울리는 옷을 골라주기도 했다.

엄마는 좀처럼 시도해보지 못했던 연분홍 슬랙스에 하얀 와이셔츠를, 아빠는 영캐주얼 느낌의 니트 조끼에 깔끔한 코듀로이 바지를 입고 등장할 것이다.


7.

나는 간절히 바랬다. 부디 오늘이 두 분께 오랜만에 설레고 특별한 하루가 되길.

눈에서 스파크가 튀고 가슴이 두근 두근대는 사랑까진 아니어도 좋다. 친구로라도 좋으니 다정하게 말을 주고받고 대화하는 게 편한 인연을 만나면 좋겠다. 더 나아가 여자, 남자로서 잘 보이고 싶은 사이가 되면 더 좋고.


8.

나는 오늘 부모님을 위해 중매를 섰다.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한 중매를 마친 기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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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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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4.23. 오늘의 상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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