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매거진 <1일 1상상 프로젝트> 후기
1.
나는 3월 31일부터 4월 30일까지
한 달간 31개의 단편을 브런치에 썼다.
<1일 1상상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발행된 내 소중한 첫 번째 매거진.
여기에는 그간 넘치도록 행복하게, 적당히 고뇌하며, 힘을 다해 빚어낸 서른한 개의 글들이 알알이 들어가 있다.
2.
이 글은 브런치 초보가 한 달간 매일 한 편의 글을 쓰는 과정을 후련한 마음으로 뒤돌아보며 쓰는 글이다.
내 솔직한 감정을 담은 소감과 그간 일어난 재밌는 일화들을 기록해두고 싶었다.
매일 글을 쓰는 행위가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브런치라는 플랫폼은 어땠는지도 터놓고 얘기해보면 좋을 것 같다.
매거진 이름처럼 나는 매일 새로운 상상 하나를 떠올렸다. 그것을 가지고 손이 가는 대로 뼈와 살을 붙여 글을 썼다. 평소 (음흉하고 깨발랄한) 생각이 많은 내가 하루만 지나도 휘발해버리는 상상들이 아쉬워서 시작한 일이었다. 초반에는 마음껏 상상을 풀어낼 장이 생기니 고삐 풀린 것 마냥 와다다- 한 편을 써냈다. 그러다 열흘, 보름이 넘어가자 재밌는 상상에도 다 바닥이 난 것 같고, 글에 시동이 붙는데도 오래 걸렸다. 어떨 때는 십 분에서 몇 시간 동안 공사장이 엿보이는 창문을 바라보기도 하고 빈 화면도 보며 멍을 때리기도 했다. 그러다 주제를 잡고 글을 써 내려가면 상상이라는 작은 헝겊 하나로 커다란 이불을 꿰매는 기분이었다. 생각보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글을 쓰는데 보냈는데 그런 내가 싫지 않았다.
4.
하나의 글이 발행될 때마다 이름 모를 씨앗에서 꽃을 피우는 기분이었다.
'와, 이거 내가 써낸 거 맞지? 정말 뿌듯해'
‘내 상상이 그래도 한 편의 글이 됐잖아'
한 시간이 걸리든 반나절이 걸리든 내 마음에 들 때까지 쓴 글이었다. 하루에 조회수가 20, 30을 웃돌아도 괜찮았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몇 번이고 브런치에 들어가 내 글을 읽어줬다. 초안이라 나뿐만 아니라 남들에게도 엉성하고 부족했을 것인데, 정작 유일한 작가이자 독자인 나는 스스럼없이 내 글을 즐겨주었다. 그래서 매거진 하나를 완성한 지금도 부끄러움이나 후회 없이 '아, 재밌었네' 단순하게 생각한다. 이런 마음가짐 덕분에 지금 이 글도 웃으며 즐겁게 쓰고 있다.
하지만 글은 남들과 나눌 때 그 기쁨이 배가 된다. 내 글도 누군가가 분명 읽어주었다.
비밀을 하나 알려드리고자 한다. 크게 웃으셔도 된다. 통계적으로 내 글로 유입되는 부동의 1위 키워드는 바로 '야동'이다.
매거진의 세 번째 글 <착한 야동 제작기>
https://brunch.co.kr/@huney4544/6
첫날 발견했을 때는 아니 이게 뭐야, 황당함에 그쳤다. 그러나 연이어 둘째 날도 셋째 날도 반복적으로 이 키워드로 유입되는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야동을 검색한다고? 나도 몰래 실소가 터졌다. 그러다 현재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됐다. "야동을 구글에 치는 초보자들이여, 그래 이로써 님들이 착한 야동 쪽으로 유인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요!"
6.
착한 야동 제작기는 나에게도 기억에 남는 재밌는 글 중 하나다.(더 쓰고 싶어 근질근질!) 이왕 이야기 나온 김에 생각나는 대로 마음에 들었던 글을 몇 개 더 소개하고자 한다. 다른 작가님들처럼 나 또한 소중한 발행 글들 중 유독 마음에 드는 애들이 있다. 31편 중에 7편을 뽑아봤다.
2편- 머리카락 가라사대
https://brunch.co.kr/@huney4544/2
9편- 전남친 결혼식에서 축가부르기
(실제로 거미 노래를 bgm삼아 계속 들으며 썼다)
https://brunch.co.kr/@huney4544/11
11편- 내 부모님은 내가 선택할게
(표지 사진을 너무 잘 골랐다)
https://brunch.co.kr/@huney4544/13
14편- 크리스마스에 온 쿠팡 택배
(유일하게 동화에 가까운 글이다)
https://brunch.co.kr/@huney4544/17
17편- 수족관에서 만난 사랑
https://brunch.co.kr/@huney4544/21
29편- 브런치 작가끼리 '글여행'을 떠나다
(이미 떠난 여행을 추억하듯 상상이 한 시간 만에 써졌다. special thanks to 글로 작가님!)
https://brunch.co.kr/@huney4544/36
30편- 브런치 재활원
https://brunch.co.kr/@huney4544/38
자꾸 웃음이 나는 글, 마음에 남는 글들을 따로 적었지만 사실 깨물어 안 아픈 새끼손가락이 없는 것처럼, 내게 31편이 모두 소중하다. 부족한 글일지라도 저마다의 매력이 있기에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작가는 꿋꿋이 글과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7.
재미 삼아 통계를 확인해봤다. 과연 가장 많이 읽힌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은 어떤 것이었을까? 31편 중 1위와 31위를 공개하고자 한다.
*행운의 1위 글 - 내가 정한 것만 '나'입니다
https://brunch.co.kr/@huney4544/12
: 매거진에서 가장 에세이스러운 글로 유일하게 다음 어딘가 소개된 것 같은 글이다. 역시 브런치에는 압도적으로 에세이가 많고 소개되는 글의 경향도 그런 것 같다.
*비운의 31위 글 - 길가의 성모마리아
https://brunch.co.kr/@huney4544/9
: 하하, 제목이 너무 성스러워 그런 걸까? 실제로는 종교적 내용이라곤 없는 으슬으슬한 단편 소설이다. 언젠가 등장인물들을 삽화로 그려보고 싶은 글!
8.
후반부에 갈수록 독자와의 소통이 활발해졌다. 내 글을 읽은 그들의 소감을 들을 때면 갑자기 화면 속 활자가 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나만 쓰고 나만 보는(+야동을 검색한 이들) 글을 넘어 누군가에게 '읽혔을 때' 느껴지는 짜릿함! 지인들도 선뜻 '내가 읽어볼게'라고 하지 않는 세상에서, 쓰는 사람들이 브런치에 중독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그러다 내가 브런치 재활원을 쓰게 된 것이 아닌가)
글로 누군가와 소통하는 경험은 읽을 준비가 된 이들이 대기하는 브런치라는 플랫폼에서 얻어간 가장 큰 수확이었다. 마음껏 쓰는 즐거움과 함께 독자의 존재는 내 하루의 즐거움을 책임져준 보약과도 같았다. 그래서 이 자리를 통해 정식으로 인사드리고 싶다.
제 글을 읽어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참 감사합니다!
9.
새로운 매거진을 구상해보려고 한다.
<1일 1상상 프로젝트 시즌2>를 비롯해
내 이야기를 에세이로 담은
<나의 역사>
다른 브런치 작가님들과 함께하는
<릴레이 글>
내 주변 이들을 깊이 인터뷰해보는
<당신을 더 알고 싶어요>
등등. 현재는 모두 가제지만 열심히 궁리해봐야겠다. (위의 대부분은 지금 쓰면서 생각해냈다)
10.
매일 쓰겠다고 다짐하니 정말 한 편씩 써졌다. 그 전에는 써야지, 생각만 하느라 한 달에 한 편도 쓰지 않았던 나인데. 가끔 사람들이 칭찬도 해준다. 자꾸 신이 난다. 글로 돈이 나오지도 않는데 행복한 지금을 실컷 누리고 싶다. 건필하자 유팬!
2020.5.2 <1일 1상상 매거진> 시즌1 후기 끝.
글이 길어져 브런치 플랫폼을 경험하고 느낀 이야기는 언제 따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후기가 매거진 글들보다 훨씬 기네요, 하하. 이 글, 두 개로 나누는 게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