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교육혁명

과연 실현될 날이 올까요?

by 김잔잔

- 야, 너 감염병 종류랑 예방법 외웠냐

"미친, 당연하지. 어제 졸라 외웠으니 물어보셈"


- 어우, 재수 없어. 수인성 및 식품매개 감염병 예시 3개.

"A형 간염, 노로바이러스, 장티푸스"


-그럼 생활 속 예방법은?

"음식 충분히 익히고 물은 끓여마시기, 흐르는 물에 비누로 30초 이상 손씻기, 위생적인 조리를 위한 도마 분리. 끝"


-개부럽다, 난 언제 다 외우냐

"야, 더 어려운거 없냐?"


1.

2060년, 대한민국 교육의 판도가 달라진다.

전례 없는 전염병, 특수 범죄, 금융 위기 등으로 몸살을 앓으며 진정한 헬조선으로 거듭난 나라에서 국민들의 고통은 한계점에 달하기 시작한다. 아래에서 위로, 사회의 많은 부분이 갈아 엎어지고 요동치는 시기였다. 그중에서도 교육 개혁은 뜨거운 화두였다. 광화문에서는 2016년 촛불 집회 이래로 최다 인원이 모여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교육을 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계속되는 국민들의 요구에 2060년, 대한민국은 대대적인 교육 개혁의 길을 걷게 된다. 몰라도 사는 데 지장 없던 코사인 법칙과 가시리 가시리 잇고에서 벗어나 드디어 생활필수 과목들로 개편된 것이다. 보건복지부, 환경부, 법무부 등 대한민국의 18부를 바탕으로 설계된 새로운 과목들은 교육에 혁신을 가져왔다. 학생들이 수학이나 화학 공식을 외우는 대신 인플루엔자 증상이나 고용 노동법에 관한 법률을 달달 외우며 등교하게 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오랫동안 진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일하던 '나신혁'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예고했던 대로, 올해 2061년 수능시험은 다음 9개의 시험 과목으로 이는 기존에 있던 과목을 재개편하여 일부 과목을 통합, 삭제, 추가한 것입니다. 보건복지부, 환경부, 법무부 등 대한민국의 18부를 바탕으로 설계된 과목은 금융, 법률, 식품, 문화체육, 보건, 역사, 환경, 과학기술, 정치로 … (중략) … 출제범위는 교과서와 EBS 연계교재 두 가지입니다. (이하 생략)

2.

대통령 나신혁이 누구인가. 그야말로 엘리트 코스를 착착 밟아온 사람이었다. 부유한 중소기업 회장의 맏아들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는 서포트를 받으며 어릴 때부터 사교육을 종횡무진했다. 한국 대학교에 진학한 것도 모자라 수석으로 졸업한 뒤 외국 대학원까지 섭렵한 후 최연소 한국 보건사회 연구원에 발탁된 사람이다. 십 년뒤, 연이어 최연소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된 그는 위기 때마다 단호한 행정 처리와 결단으로 찬사를 받으며 국민들 사이에서 이른바 '믿보혁'(일단믿고보는신혁)으로 불리게 됐다. 그로부터 다시 십 년 후, 대대적인 국민의 신임과 정치권의 새로운 개혁의 바람을 등에 업고 나신혁은 대통령에 출마해 당선된다. 그런 그의 첫 번째 행보는 바로 '보건 개혁'도 아닌 '교육 개혁'이었다. 차고 넘치게 교육의 기회를 누리며 탄탄대로를 겪어온 엘리트가 무슨 꿍꿍이인지 음모설이 나돌 정도로 뒷말이 많았다. 그러나 그 또한 국민들의 요구에 통감하는 한 사람의 국민이었을 뿐이다.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에도 왜 가장 중요한 건강과 위생수칙이 '의학'이라는 카테고리에 묶여 국민과 동떨어져 있는지 늘 의문을 가지던 그가 '실제와 맞닿아있는 교육'을 외치며 칼을 뽑은 것은 사실 너무나도 당연했다.


3.

정부의 교육 개혁이 발표되고 사회 곳곳에서 급진적인 변화가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특히 사교육 시장에서는 웃지 못할 진풍경이 펼쳐졌다. 기존의 일타 강사들이 줄지어 내려오고 대신 그 자리에 ‘전(前) 한국대학교 보건행정학 교수', '식품위생학 석박사', '김앤박 로펌출신 변호사'등이 대거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 와중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킨 이로는 한국사 일타로 유명한 설민석 등이 유일했다. 그러나 이들조차 다가오는 개편에 대비한 수업을 준비하느라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사교육 시장이 과열되고 아수라장이 될 것이라는 야당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기존에 있던 강사들의 반발이 거세질 새도 없이 신설 과목에 준비된 인재들이 이처럼 기다렸다는 듯이 치고 올라온 것이다. 사회에 나가서 법을 몰라 괜히 알바비 뜯기지 말라는 법률강사, 독성 있는 버섯의 종류와 올바른 과일 세척법을 알려주는 식품강사, 그리고 현 정당들의 종류와 공약을 쉽게 설명하는 정치강사 등. 제각각 현장과 모니터 안에서 열정적인 강의를 이어나가며 사교육 시장을 메꾸어 나갔다.


4.

그리고 나서의 이야기

그 내용은 삶과 더 가까운 이야기들로 채워졌지만 학생들은 변함없이 학원과 과외를 병행하며 내신과 수능을 준비했다. 교육 혁신이 당장 지금의 사회를 변화시키지 않았다. 다만 현재로선, 부모들이 흐뭇한 표정으로 기본적인 금융 상식을 줄줄이 읊어대는 자녀들을 바라보고 10대들의 학습 만족도가 전보다 상승한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교육에 의해 사회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발을 내딛을 것이다.

내 몸의 구조와 응급처치에 대해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고용법과 노동법을 배운 적 있는,

돈이 어떻게 유통되는지 이해하는,

그리고 문화체육을 향유하며 정치와 역사를 이해하는 시민에 의해 뒤틀린 나라는 결국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역류하는 청춘이 숨을 쉬게 될 것이다.


라고 믿으며 나신혁은 여전히 진을 치고 있는 야당의 단식 투쟁장을 떠나며 생각했다.

결국 이 길이 옳음은 역사가 증명할 것이라는 굳은 믿음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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