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출산

생명 탄생에 대한 기쁨과 짐을 나눌 수 있다면

by 김잔잔

1.

K는 초조한 마음으로 병실 앞에서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계단 옆 난간을 부여잡고 서 있다가도 좀처럼 가만있지를 못하고 입구를 왔다 갔다 거렸다. 동동거리는 발걸음 덕에 잔 꽃들이 수수하게 그려진 품 넓은 치마가 낡은 단화 위로 이리저리 흔들거렸다.

동그란 이마에는 잔머리 몇 가닥이 알알이 맺힌 작은 식은땀에 젖어 있었다.


전화를 받은 직후부터 혼자 온갖 상상과 걱정의 파도에 떠다니느라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엄마 엄마, 손에 땀나요. 옆에 있는 줄도 몰랐던 첫째 아이가 K의 손가락을 가져다 제 옷자락에 비벼댔다. 어린이집에서 하원 하자마자 엄마 손에 이끌려 병원으로 온 탓에 칭얼거릴 만도 한데 아이는 어쩐지 시종일관 조용했다. 저도 오늘이 어떤 날인지는 아이들 특유의 예민한 오감으로 벌써 눈치챈 것 같았다.


엄마로서 아이의 불안함은 생각도 못한 채 안절부절못했던 것이 미안해서 쉬, 쉬-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무릎을 굽혔다. 아이의 호수 같은 눈에도 엄마의 불안함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엄마 괜찮아, 우리 다 같이 오랫동안 기다렸잖아? 정호 동생이 태어나는 날이야.


2.

K의 남편은 대한민국에서 남자로서는 첫 번째로 임신하게 된 임상 실험대상자였다.

처음 임상 실험에 신청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때, 그의 의지는 꽤나 확고했다. 첫 아이 때 꼬박 열 달의 입덧과 잦은 하혈 끝에 결국 목숨이 위태로웠던 아내를 보고 이미 결심이 선 듯했다. 둘째 아이를 갖고 싶지만 남은 정호를 위해 위험을 감수할 수 없어 오랫동안 체념해왔던 K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였다.남편의 뜻밖의 말에 거부감이 들기도 전에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아내는 괜찮다며 그를 다독였지만 임상 실험에 참가하고자 하는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는 모든 동물의 가장 본질적 기능이자 숭고한 경험을 느끼고 싶어 했다. 인간이 손댈 수 없는 영역이라 여겨졌던 영역. 그곳으로 깊숙이 한 발짝 내딛는 생물학의 발전에 기꺼이 함께 하고 싶다 말했다.
임신과 출산은 그에게 단순히 아내를 위한 희생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도 인생을 관통할 만큼 의미가 큰 하나의 도전이었다. 남편은 오랜 시간을 고민한 만큼 무섭지만 용기 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진지하게 외국에서 이미 성공한 케이스를 단계별로 설명해주며 K를 설득했고, 그녀도 어느샌가 남편과 두 번 다시없을 경험을 공유하는 일에 더 이상 기를 쓰고 반대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주위의 수많은 만류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K의 남편은 한 달에도 수차례 병원을 왔다 갔다 하며 몇 년간의 준비를 했다. 최적의 몸 상태를 만들고자 운동부터 식단 조절까지 꾸준히 해온 것은 물론이고 8가지가 넘는 임상 약들과 대대적인 수술을 계획대로 차질 없이 견뎌왔다.

그런 남편이 드디어 오늘, 출산하는 것이다.


3.

병원 밖에서는 새벽부터 벌써 기자들이 끝없이 포진해있었다. 언뜻 창밖을 훔쳐보자 카메라를 든 거대한 개미떼들이 모여 있는 것 같았다. 그 옆으로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비인도적 행위를 멈추라는 인권단체와 종교단체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미 임상 실험이 진행될 때부터 각오했던 일이었다.

준비하는 동안에도 협박 편지와 고소, 탄원서 등으로 얼마나 갖은 수모를 당했던가. 그러나 막상 당일이 되자 K는 그들에겐 눈길 줄 겨를도 없었다. 그저 어린 아들의 작은 손에 의지해 최악의 상상을 하지 않으려 안간힘 쓸 뿐이었다.


4.

수술은 꽤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었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연구진 중 한 사람이 다가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준비 기간 내내 끊임없이 K 부부를 격려해주고 가까이서 도움을 줬던 닥터 최였다. 긴장해 있던 몸이 소스라치며 낯선 자극에 반응했다. 그녀가 웃으며 K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다 끝났어요. 공주님이에요.

순간 K는 벌떡 일어나 그녀를 안았다. 빳빳한 하얀 가운이 그녀를 감싸고 따뜻하게 토닥여 주었다. 옆에서 졸던 아이는 무슨 일인지 모르고 저도 모르게 긴장이 풀려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아이를 데리고 안내를 따라 병실에 들어서자 수척해진 남편이 창백하게 웃고 있었다.


5.

우리 정호, 왜 울어.

아이는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아빠가 낯설어 더 소리 내어 울었다. K도 따라 눈물 흘리며 정호와 남편을 함께 와락 안았다.

당신, 이걸 어떻게 견뎠어.

남편도 목이 메어 힘없는 손으로 아내의 머리카락을 연신 쓰다듬어주었다.

엄마라는 이름이 이렇게 무거웠구나. 무거웠어.

감격스러움에 벅차 중얼거리는 남편을 꼭 껴안아주며 K는 생각했다.

이제 당신과 내가 공유하는 이 무게가 비로소 반토막이 아니라 온전해졌음을. 가슴 어딘가에 짓눌리던 생명을 탄생시키는 짐을 나눠 드는 진정한 동반자가 되었음을. K는 그런 남편을 다시 한번 꽉 안아보았다.



2020.4.4 오늘의 상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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