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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잔잔 Nov 26. 2020

내 마음대로 라따뚜이

말로만 듣던 음식에 처음으로 도전하다

1.

오늘의 요리는 토마토소스와 얇게 썬 채소를 스튜처럼 함께 먹는 음식이다.

힌트는 생쥐가 나오는 유명한 애니메이션. 그리고 스텔라장이 프랑스어로 부른 감미로운 OST의 주인공.

분명 생각날락 말락, 몇 글자가 머릿속에 빙빙 맴도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 제대로 낯선 이국의 음식이자,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그 요리는 말로만 듣던 '라따뚜이'다. 종종 인터넷 블로그나 텔레비전에서 겹겹이 쌓여 예쁘게 플레이팅 된 라따뚜이를 보면 맛이 궁금하면서도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쩐지 부드럽고 속도 편할 것 같은 스튜 느낌이랄까. 채소가 많이 씹히면서도 가지, 애호박 등의 재료가 많이 들어가 포만감도 있을 것 같은 모양새였다. 건강한 식재료로 요리하기로 마음먹은 최근, 채소를 맛있게 많이 먹을 수 있는 레시피를 고민하다가 라따뚜이가 떠올랐다. 사실 평소 가지를 싫어하는 나는 어릴 때부터 싫어하는 음식을 말할 때 '버섯과 가지'를 세트처럼 말하곤 했다. 나물이라면 밥을 두 공기 먹을 정도로 다 좋아하지만 가지 나물이 제일 맛있다는 친구의 말에도 도무지 젓가락이 안 갈 만큼 썩 내키지 않은 식감이었다. 그러나 이미 라따뚜이를 만들기로 한 이상 가장 중요한 재료로 보이는 가지를 빼놓을 수 없어 한 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이번 기회에 가지를 좋아하게 되길 바라면서 싱싱한 보라색 가지를 반으로 뚝 잘라 반듯하게 썰어보았다. 싫어하는 음식들은 왜 이렇게 칼질할 때 부드럽고 좋은 건지. 버섯을 자를 때처럼 가지도 적당히 부드러우면서도 살짝 질긴 껍질의 느낌을 갖고 있었다.

 

 

2.

라따뚜이는 기본적으로 매우 간편한 프랑스 가정식이라고 한다.

평생 계량과 거리가 먼 나는 가정식을 내 멋대로 '편한 음식'이라고 해석한 뒤, 이번에도 느낌대로 가보기로 했다. 집에 있는 채소들을 모두 꺼내어 찬물에 휙휙 몇 번 씻어낸다. 고구마, 애호박, 양파, 가지가 주인공이다. 프라이팬에 불을 올려 천천히 달구는 동안, 한쪽에서 도마 위의 채소들을 동그랗게 썬다. 가장 안 익는 고구마부터 기름 없이 바로 구워준다. 그다음 순서대로 다른 채소도 마저 넣고 구워낸다. 원래는 오븐에서 구워져야 맞지만 자취생인 나는 오븐이 없으므로 미리 이렇게 굽는 순서가 필요했다.


3.

채소들이 적당히 구워졌다면 소스를 부을 차례이다. 원래는 토마토소스나 시판 스파게티 소스 등을 쓰지만 나에겐 어제 브리또에 바르기 위해 산 살사 소스 밖에 없으므로 그것으로 대체한다. 할라페뇨가 들어간 살사 소스는 시큼한 맛이 있기에 '이렇게 막 하다가 또 다 버리는 건 아니겠지' 걱정은 됐지만 이미 요리는 중간 과정에 이르렀으니 들입다 붓는 수밖에. 한국인의 필수템인 다진 마늘을 살짝 넣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라따뚜이는 어이없게도 이렇게 끝이다. 소스와 버무려진 채소를 잠깐 맛보니 웬걸, 맛있다!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먹을만한 음식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한 끼 식사를 배 터지게 먹는 내게 어쩐지 채소와 걸쭉한 살사 소스만 들어간 이 음식은 2프로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바로 이런 게 비건의 담백한 맛이자 적당한 양이겠지. 그러나 나는 아직 비건의 비읍자로도 가지 못한 입문자이므로 뭔가 고기처럼 배부르게 해 줄 만한 재료를 넣고 싶었다. 


4.

어제 산 제주도식 두부를 넣어보기로 한다. 두부 한 모를 삼 분의 일정도 잘라 손으로 으깨어 넣었다. 역시 내 멋대로 라따뚜이란 이런 것. 토마토소스와 섞인 푸짐한 채소 위에 으깬 두부는 마치 모차렐라 치즈를 올린 것 같다. 놀랍게도 먹어보니 또 한 번 맛있다. 정말 치즈처럼 채소 요리에 부드러움을 더해주어 훨씬 맛있고 포만감이 큰 느낌이랄까. 원래 이렇게 실험적인 요리는 이것저것 때려 넣다가 결국엔 평소 먹던 입맛과 달라 버리게 되는데, 오늘의 라따뚜이는 거의 다 먹었다. 꽤 성공적이었달까.


5.

라따뚜이라는 음식을 손수 집에서 만들고, 맛있게 먹는 데까지 이른 것은 내 실험정신 투철한 요리 실력보다는 어쩌면 미화된 이미지 덕분일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사람이 어릴 적 여러 번 돌려볼 정도로 좋아했던 애니메이션도 라따뚜이였고, 스텔라 장이라는 가수가 프랑스어로 부르는 게 너무 아름다워 반해버린 OST도 역시 라따뚜이였다. 내게 이 음식은 실제로 한 번도 먹어보거나 본 적도 없지만, 귀여운 생쥐 이미지와 감미로운 노랫소리로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있었나 보다.


6.

오븐도 없이, 플레이팅도 예쁘게 못하고, 게다가 가지도 싫어하는 데 괜찮을까? 걱정하며 미뤄두기만 했던 라따뚜이를 오늘 처음으로 만들어 봤다. 생각보다 레시피는 간단했다. 앞으론 너무 어려워하지 않고 부담 없이 집에 있는 야채들로 만들어볼 수 있을 것 같다. 따뜻한 계절에 프랑스 남부지역으로 놀러 가 우연히 아주 인심 좋은 아주머니를 만난다면 진짜 가정식 라따뚜이를 맛볼 수 있을까? 상상이 현실이 될 날을 기다리며, 이 깜찍한 이름의 요리를 한 스푼 크게 떠먹어본다. 냠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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