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 줄 모르는 사람은 못 노는 애들끼리 있어야 즐겁다

E채널 <노는 언니>를 보고

by 백디요



요즘엔 잘 노는 게 경쟁력이라던데. 모두가 잘 노니까 못 노는 애들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못 노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굳이 못 노는 걸 보여주겠다는 프로그램. 어쩌면 E채널 <노는 언니>는 앞으로도 쭉 못 놀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노는 언니>는 ‘제대로 놀아본 적 없는 운동선수 언니들이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에 도전하며 놀아보는 예능’이다. 박세리, 남현희, 정유인 등 그동안 대중에게 많이 노출되지 않은 스포츠 스타들이 나와 신선하다. 반응도 좋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E채널에서 방송되지만, 대중에게 콘텐츠 자체로 주목을 받았고 넷플릭스까지 진출했다. 아마도 E채널에서 대단한 걸 만든 듯싶다.





<노는 언니>의 파워는 심플하게 2가지다. 첫째는 멤버가 모두 여성이라는 점. <1박 2일> 같이 멤버 6명이 떼로 다니는 포맷은 구식이 됐지만, 멤버들을 남자가 아닌 여자로 바꾸니 신선한 그림이 나온다. 물론 예전 <무한걸스>나 <언니들의 슬램덩크>같은 여성 멤버만 나오는 예능도 있었다. 하지만 <노는 언니>는 성별만 바꾼 게 아니다. 여자들만 할 수 있는 대화나 고민을 함께 보여준다. 이런 모습은 같은 여성 시청자에겐 공감대가 되고, 남성 시청자에겐 기존 예능에선 볼 수 없던 새로운 모습이 된다.



<노는 언니> 멤버 6명은 모두 스포츠 스타다. 그래서 ‘운동만 하느라 못 놀아본 언니들’이라는 컨셉으로 단번에 묶인다. 운동도 하루이틀 한 게 아니라 국제 대회에서 이름 꽤 날려본 사람들이기에 ‘운동밖에 몰라. 놀 줄을 몰라’라는 컨셉이 명확하다. 그래서 <노는 언니>는 일종의 도전기다. 멤버들의 답답한 모습은 대중에게 납득되는 재미로 다가온다. 평균 이하의 외모와 모자란 지식을 가진 멤버들이 무모한 도전을 했던 <무한도전>, 방송밖에 모르는 유재석이 부캐로 여러 일에 도전하는 <놀면 뭐하니?>와 통하는 지점이다.




예를 들면 이런 모습이다. 여섯 멤버는 난생처음 캠핑을 떠난다. 운동만 했던 멤버들은 이번 기회에 제대로 놀아보고 싶다. 배구 선수 출신 한유미도 캠프파이어 시간을 위해 우쿨렐레를 배워 온다. 드디어 캠프파이어 시간. 멤버들이 한유미의 우쿨렐레 반주에 맞춰 노래를 시작한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 노래를 부르며 우쿨렐레 줄을 퉁기는 한유미. 갑자기 다음 소절인 “~잔잔해져 오면”에서 우쿨렐레를 박자에 맞춰 손바닥으로 두드리기 시작한다. 연주를 배웠는데 모르겠단다. 옆에 있던 정유인은 “그럴 거면 우쿨렐레를 왜 들고 왔어요?”라며 허탈한 웃음을 보낸다. 멤버들은 그저 웃는다. 시청자도 웃는다. 뭐 하나 제대로 놀지 못하는 멤버들에 시청자는 답답하다. 그 답답함이 <노는 언니>의 재미 요소다.





<노는 언니> 제작진도 못 노는 멤버들이 걱정이 되는가 보다. 처음 떠난 MT엔 장성규, 광희를 출연시켰고, 다음 회에선 제작진이 미리 짜놓은 스포츠 게임을 활용했다. 아육대처럼 달리고, 던지는 멤버 6명의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럴수록 프로그램은 느슨해지고 지루해졌다. 어쩌면 놀 줄 모르면서도 제작진이 정해 놓은 대로 움직이는 멤버들의 모습이 시청자에게 별 감흥을 주지 못한 건 아닐까. <노는 언니>는 못 놀아야 컨셉이 사는데 제작진은 ‘이렇게 못 놀아도 되나’ 걱정이 되는지 자꾸 멤버들을 도우려 한다. 그래서 컨셉이 묻힌다.



<노는 언니> 제작진은 멤버들에게 놀고 싶은 충동만 일으키면 된다고 생각한다. MT가면 어떤 걸 해야 재밌는지, 다른 사람들은 캠핑가면 뭐하면서 노는지 멤버들의 머리 속에 그려주기만 하면 된다. 어떻게 노는 지 룰과 방식은 ‘못 노는’ 멤버들이 정해야 한다. 우쿨렐레로 한 곡을 연습해달라 요청하기 보다는 보통 캠프파이어 때 악기 하나쯤 갖고 놀더라. 이런 식이다.





<노는 언니>는 콘텐츠의 힘으로 순항 중이다. 특히 맏언니 박세리부터 허당 기린 한유미, 못하는 척 약한 척하지만 할 건 다하는 곽민정처럼 캐릭터도 잘 잡혀가고 있다. 다음 단계는 캐릭터 간 관계를 형성할 단계다. 그 과정에서도 제작진은 멤버들에 개입하지 않고 가만히 놔두면 된다. 놀 줄 모르는 사람은 못 노는 애들끼리 있을 때 즐거운 모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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