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회사를 초등학교만큼 다녔습니다.
무스펙 문과 여성이었던 저는 신입 취업 시장에서 별로 인기가 없었어요.
첫 회사는 그런 저에게 유일하게 합격 목걸이를 걸어준 고마운 곳이었죠. 이커머스 시장에서 1, 2위를 다투는 탄탄한 중견기업이었습니다.
저와 함께 일하는 선배님들을 존경했고, 동기들과 후배님들에게도 배울 점이 많았어요.
특히 팀장님께서 제 강점을 알아봐 주시고 기회를 주신 덕분에, 성과를 인정받으며 일하는 재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죠.
하지만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입니다.
가격 비교 서비스를 제공하던 네이버가 엄청난 상품 검색 트래픽을 기반으로 직접 판매자를 끌어모으기 시작한 거예요. 기존 오픈마켓 대비 낮은 수수료와 편리한 운영 방식을 무기 삼아, 큰 제조사부터 중소 셀러까지 스마트스토어 입점을 적극적으로 독려했습니다. 또 구매자에게는 포인트 적립을 통해 네이버 생태계를 떠나기 어렵도록 만들었어요.
한편 쿠팡은 “저러다 망한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로켓배송 물류 시스템 구축에 돈을 들이붓습니다. 그리고 기저귀, 물티슈 등 자주 구매해야 하는 육아용품을 사입해 최저가에 판매하기 시작해요.
곧 육아하는 엄빠들을 중심으로 충성 고객 확보에 성공합니다. 모든 상품이 최저가가 아니어도 ‘생필품 = 쿠팡’이라는 공식을 만들기엔 충분한 전략이었어요.
시장의 판도가 바뀌는 동안 저희는 뭘 했냐고요? 아마존프라임에서 착안한 유료 쇼핑 멤버십 구독제를 선보였습니다. 로켓와우 탄생보다도 1년여 앞선, 국내 최초 시도였어요.
전사의 자원을 멤버십에 쏟았지만, 쩐의 전쟁에서 이길 순 없었습니다. 저희는 이익을 내서 본사와 주주들에게 돌려줘야 하는 주식회사였거든요.
반면 쿠팡은 소프트뱅크의 투자금을 등에 업고 해마다 엄청난 누적 적자를 감수하며 오로지 시장점유율 1위를 향해 달렸습니다.
당시만 해도 재무 건전성이 박살 난 쿠팡의 비즈니스 모델을 보고 ‘미친 짓’이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결과를 알고 있죠.
플랫폼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유튜브, 카카오톡처럼 1등 플레이어가 되는 것입니다. 경쟁자가 모두 사라지면 수익은 따라오니까요.
지금의 배민과 쿠팡이츠도 비슷하지 않나요? 쿠팡은 이미 이 게임을 해봤습니다.
고객이 떠나고 시장에서 점점 밀려나니 회사가 팔린다는 소문이 들려옵니다.
“사모펀드가 산다더라.”
“롯데가 산다더라.”
매각설이 돌자 리더들이 먼저 하나둘 떠나기 시작합니다. 믿고 따르던 리더들이 떠나니 실무진도 하나둘 떠납니다. 사무실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고 매주 퇴사 행렬이 이어졌어요. 남은 사람들은 떠나는 이를 보내며 마음이 흔들리곤 했습니다.
저 역시 팀장님 세 분을 연달아 보내드린 후, 회사와 헤어질 결심을 합니다. 회사는 더 이상 제가 사랑했던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어요.
사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그때 남았어도 괜찮았을 거예요. 시장의 1등이 아니어도 여전히 충분히 좋은 회사이고, 상황에 맞는 주인을 찾아갔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그때 떠나는 걸 선택했고, 그래서 첫 직장은 뭐랄까… 옛 연인 같습니다.
당시엔 헤어지기로 결심한 지긋지긋한 이유가 있었겠죠. 이제는 잘 기억도 안 나고 고마움만 남았어요.
6년이면 어린이가 청소년이 되는 시간이네요.
이베이코리아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게, 저에겐 정말 큰 행운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