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소홀히 다루었던 나의 반성문
스펙을 다룬 첫 화에 대한 내용을 충분히 이해한 당신이라면 스펙 그 중에서도 정성적 스펙이 갖고 있는 중요성에 대해서 공감하실 거라 믿는다. 정성적 스펙, 소위 말해 경험은 매력적 자기소개서를 씀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요인이다. 하지만 많은 취업 준비생들이 경험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개탄스럽기 그지없는 노릇이다. 오늘은 그 경험에 대해서 재점검해 보고자 한다. 결론을 미리 말하면 누구나 대학 재학 시절 내내 모자람 없는 경험을 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자기 소개서를 쓸 수 있다.
내 생각에 경험이란 대학 재학 시절에 취업 준비생들이 겪었던 모든 에피소드들을 일컫는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경험을 단순히 대외 활동, 즉 학교 수업 외에 했던 일로만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아니다. 내 생각엔 경험의 소재로 학교에서 그대들이 배웠던 수업 내용도 포함될 수 있다. 아마 일반적인 사람들이 얘기하는 경험 혹은 자소서 소재와는 다르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난 확신한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기업이 뽑는 공채 문구에 그 정답이 숨어 있다. 기업들이 상/하반기 공채를 진행할 때, 항상 대졸 신입사원 채용공고라는 문구를 붙인다. 대학교 졸업자 혹은 졸업이 예정되어 있고, 다음 반기에 입사가 가능한 예비 신입사원을 뽑는 공고란 뜻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수업을 포함해 몇 학점 이상을 이수해야 한다. 즉, 대졸자의 기준은 수업이다. 대외활동이나 인턴, 아르바이트는 엄밀히 말해서 부수적인 것이지 회사가 사람을 뽑는 데 있어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 아니란 말이다.
실제로 2017년 하반기에 엘지전자 한국 영업 본부를 지원했던 친구의 지원 동기 일부를 가져와 수업만으로도 충분히 지원동기를 뽑아낼 수 있단 것을 보여주도록 하겠다.
1.본인이 지원한 직무관련 지원동기와 역량에 대하여 - 해당 직무의 지원동기를 포함하여, 직무관련 본인이 보유한 강점과 보완점을 사례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기술해주시기 바랍니다. (1000자)
[실용적 영업전문가]
저는 엘지전자가 펼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학부 시절 들었던 수많은 수업들 중 가장 인상깊었던 서양철학인 실용주의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엘지전자는 자신들이 최적의 성과를 낼 수 있는 강점에 집중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전략 스마트폰인 G6의 영업을 전세계가 아닌 당사 스마트폰 점유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국내와 북미 지역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서양 지성사 수업에서 제게 큰 영향을 끼쳤던 실용주의는 강점에 집중하는 영업을 펼쳐야 하는 엘지전자에서도 빛을 발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세계의 경찰관’이라 불리는 미국의 지적 성장의 배경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아인슈타인 등 유대인의 이주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영국민들의 이주로 세워진 미국이니만큼 타 문화에 대한 관대함이라는 그들의 강점을 십분 발휘해 미국 고유의 철학을 완성한 알고리즘을 엘지전자 영업에서도 적용해 효율적 영업이 무엇인지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친구는 사학과 심화 전공자였다. 그가 배운 실용주의 철학을 활용해 엘지전자의 당시 실용주의적 영업 전략이랑 묶었다. 이 글을 보고 느낄 수 있겠지만, 절대로 수업이 아닌 다른 경험만 있어야 회사를 지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둘째, 우리가 아는 것처럼 경험이 대외활동이나 아르바이트, 인턴에만 국한된다면 공대 계열 친구들은 기업에 지원조차 할 수 없다. 공대는 잦은 퀴즈나 시험, 실험, 논문, 보고서 등으로 인해 교내 연구실을 벗어나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그런 그들이 우리가 흔히 아는 다양한 경험을 할 시간적 여력이 될까? 불가하다. 결국 이들 역시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을 바탕으로 자기소개서를 써야 한다. 그리고 충분히 잘 쓸 수 있다.
이렇게 두 가지 이유로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당신들이 아는 경험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 외에도 수업도 경험의 한 부류가 될 수 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수업을 소홀히 들으면서 교내 경험을 의미 있게 쌓는 것에 실패한 나의 반성문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