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머니의 경제학

경제학, 그 이상으로 바라봐 주기를

by 하리하리


원래 이 글을 진작에 썼어야 했는데, 미룬 것이 이렇게 전화위복이 될 줄 몰랐다. 왜냐하면 2주 전 퀴어축제가 열렸으니까. 그리고 공교롭게 내가 이 글에 언급하려고 했던 기업들의 LGBT에 대한 반응을 다룬 이 주제를 처음에 다른 에디터 분들께 보여 드리니 한국 기업들은 LGBT에 호의적 태도를 보이기 어려울 거라는 피드백이 왔고, 나 역시 동의했다. 하지만 오늘 열린 한국 퀴어축제에 카스가 응답했다. 이런 변화들을 보면서 내가 잡은 이 주제가 시의성이 있다고 확신했다.


그렇다. 오늘 글의 주제는 LGBT다. 단, 이를 사회학적 관점에서 바라볼 생각이 없다. 이 분야의 전문가도 아닐뿐더러 찬반의 여지가 극명한 이 얘기를 꺼냈다가 내 밑천이 드러날 것이 뻔하니까. 하지만, 이를 경제학적으로 풀어낸다고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나는 이래뵈도 500여 시간 동안 기업의 자기소개서를 주제로 방송을 해 온 사람이 아닌가? LGBT 경제학(이것은 내가 가칭으로 붙인 것), 이른바 핑크머니의 위력을 살펴보고, 기업들이 여기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얘기해 보도록 하겠다.


우선, 기업들의 반응을 살피기 전에 핑크머니가 어느 정도로 성장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 먼저라 생각된다.

LGBT와 관련된 시장 가치가 무려 1000조원을 넘는다고 하니 무시할 수 없는 사안임이 분명하다. 중국에서는 2001년까지만 해도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내 LGBT 인구 수는 7000만명이고, 세계 최대 동성커플 데이트 앱도 중국에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기업들도 LGBT에 지지 의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진의야 어떠하든 세계는 이제 LGBT를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있다.


#1. 현대자동차의 GLAAD 공식후원

이 기사를 언급하기 전에 GLAAD 어워드가 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한 해 동안, LGBT 커뮤니티를 발전시키는 데 현저한 공적이 있는 사람을 선정해 시상하는 행사다. 현대자동차가 작년 이 어워드의 공식 후원사가 됐다는 것에 조금 의아했다. 기업 자기소개서를 봐주는 내 입장에서 현대자동차는 보수적이고 남성적 냄새가 물씬 나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에서 현대자동차는 국내 소비자들의 인식과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인다는 점이 더 매력적이다. LGBT 소비자들도 포용하려는 현대자동차의 적극적 움직임을 읽을 수 있다.


#2. 블리자드, 게임 속 세상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최근 다소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일었음에도 불구하고 게이 캐릭터를 내세운 오버워치, 그리고 이 게임을 만든 제작사 블리자드. 비단 게이 캐릭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방사능 피폭 피해자, 레즈비언, 노인, 무성인 등 캐릭터에 등장하는 소외 계층의 스펙트럼도 넓다. 너무 의식적으로 평등한 관점을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지만, 이들의 평등 사회 건설을 위한 노력은 게임 안에서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진실성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여학생들에게 코딩 교육을 실시한다거나 블리자드 주최로 '글로벌 다양성 이니셔티브'란 포럼을 여는 등 그 누구도 소외받지 않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두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한국 기업들도 변화된 성 관념에 대해 응답하고 있다. 이는 시장 원리상으로도 충분히 응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에 움직였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는 그 특수성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화두에 올리기를 꺼려하는 분위기가 있다. 산업적 값어치로 LGBT를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최대한 많은 이들이 어색하거나 불편해 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도 기업들이 힘써 줬으면 한다. 결국 우리 사회는 LGBT도, LGBT가 아닌 이들도 자연스럽게 하나 되어 살아가는 곳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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