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궂은 인연

It's you.

by 카레

그러니까 그 애를 제대로 알게 된게 고3 때였다. 그전까지는 동창이라서, 이름과 얼굴만 알고 있었다. 한때 친했던 친구의 친구였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 섞어본 적이 없다. 어떤 성격인지, 어떤 친구와 친한지 조차 몰랐다.


마음이 통해 곧잘 만나던 다른 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내게 고백을 했다. "사실, 난 너 안 좋은 애인줄 알고 멀리하려 했어" "잉? 왜?" "XX가 너 진짜 안 좋은 애라고 멀리하라고 하길래 그런 줄 알았지" "뭐라고? 난 걔 아는 애도 아닌데?" "너처럼 좋은 애가 어딨다고♡(실제로 하트범벅하며) 오히려 좋은 사람 잃을뻔 했잖아. 걔 진짜 모습을 점점 알게 되면서 난 걔 멀리하고 있어."


그 이야기를 듣고 꽤나 충격먹었었다. 더군다나 예민하던 시기에. 이름과 얼굴만 아는 애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 아이는 내 무엇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을까. 친구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그 아이는 나에게 직접 원한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게 더. 어이가. 없었다.


"내 친구가 말하는데, 걔가 (..넘나 별것도 아닌 이야기인데 길어서 중간생략..) 이래서 나쁜 애래. 걔랑 사귀지마. 멀리해"라고 했단다. 고작 그 애가 겪지도 않은, 전해들은 말만 듣고 나를 멀리하려했던(난 정작 눈치도 못챘었던) 친구에게 잠깐 실망했지만 그래도 자기랑 같은 반에서 지내는 친구가 하는 말이니 그럴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애는 어떤 정의감이 폭발해서 나랑 싸운 적도 없는데 자기 친구한테 들은 말로 내 주변 친구를 이간질할까. 내 친구 말고도 또 어떤 동창들이 날 오해하고 있을까. 억울해 복장이 터질 것 같다는 말을 고3때 처음 이해했었다.


그랬던 그 친구를 2년 전부터 제법 동네 정류장에서 마주쳤었다. 나도 기분나쁜데 자기가 더 기분나쁜양 똥이라도 밟은양 표정 짓는게 웃겼다. 내가 그 아이 뭘 그렇게 기분 나쁘게 한걸까. 진짜 팔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ㅋㅋ


서울로 향하는, 또는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도 몇번 마주쳤다. 심지어 같은 날 벚꽃보러 여의도를 갔었고, 어제도 기차에서 같이 내렸다. 물론 그때마다 표정은 재수없다는 표정이었다. 졸업하고 몇년이 지났는데도 도대체 무엇이 억울해서 나를 그렇게 볼까.


대학교 동아리에서도 기수 선배인 남자 동생과 같이 공모전을 해, 곧잘 동아리실에 찾아왔었다. 아는 사람의 인스타그램에서도 그 아이는 댓글을 남겼다. 눈팅해보니 나와 친한 선배들이랑 팔로우가 돼있더라. 그 아이와 나는 무슨 인연이길래 이렇게 마주칠까 싶었다.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낸 친구들도 이렇게 자주 마주친 적은 없는 것 같다. 얄궂다.


그 아이가 나를 욕하지만 않았어도, 또는 친구에게서 그 이야기를 듣지만 않았어도. 아는 사람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 내가 친절히 웃으며 말을 걸었을텐데. 반갑다고. 같이 아는 사람과 만나 즐겁게 수다를 떨거나 지인을 통해 그 아이의 안부를 물었수도 있을텐데. 우린 인연이라고.


얄궂은 인연이여. 얄궂은 사람이여. 얄궂은 시간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