今, 남해 여행은 국토 순례

마이산, 잃어버린 기억과 다시 만난 길

by 신현창

Chapter 4.


이제 마지막 날이다. 원래는 남해로 향하려 했으나 뚜렷한 포인트를 찾지 못했다. 대신 아내의 작은 버킷리스트를 따라 귀경길에 진안 마이산을 가기로 했다.

그전에, 어제저녁 늦은 시각에 문전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던 통영 삼도수군통제영 세병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었다.


삼도수군통제영 세병관

아침은 50년 전통의 충무김밥집에서 간단히 해결하고 세병관으로 향했다. 거대한 기와지붕 앞에 서자, 한참 동안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그 아래에서 호령하던 이순신 장군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듯했다. 뜨거운 햇빛도 잊을 만큼 장엄한 기운이 온몸에 전해졌다. 그리고 장군님의 고귀한 뜻을 품고 이제 마지막 여정인

진안으로 향했다. 마이산으로 가는 길은 운전하기에 무척 편안했다. 졸음이 올 수 없을 만큼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은 시골길을 연상케 했다. 대략 164km, 한 시간 반 남짓 달려 도착할 수 있었다.

마이산은 이름만 들어왔지 처음 가보는 산이었다. 아내가 설명해 주길, 이곳은 약 8천만 년 전 형성된 자갈돌이 굳어진 암석, ‘역암’으로 이루어진 특이한 산이라 했다. 도착 1km 전쯤, 두 개의 역암 봉우리가 보였다. 마치 어릴 적 영화 속 킹콩이 튀어나올 법한 기이한 형상이었다.

마이산 전경


곧 돌탑 사찰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순간, 머리를 퉁 치는 듯한 기시감이 밀려왔다. “어, 여기는 분명 내가 와본 곳이다.” 그러나 언제였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입구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스쳤다. 사찰 전체를 둘러보는 순간 비로소 기억이 되살아났다. 10년 전 직원 야유회. 처음 카메라를 장만하고 전문가가 되겠다며 의욕적으로 셔터를 눌러대던 날. 그때 동료들의 사진을 찍고 또 찍었던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요즘 가끔 냉장고 앞에서 “내가 뭘 가지러 왔지?” 하며 멍하니 서 있을 때면 마음이 씁쓸해지곤 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잊고 있던 추억이 불쑥 되살아났지만, 한편으로는 ‘잃어버린 10년’ 같아 기분이 묘했다.

이번에는 10년 전 가지 못했던 **은수사(銀水寺, Eunsusa)**까지 다녀왔다. 길목에서 앞서 가던 노부부가 막 따온 오이를 드시고 계셨는데, 향이 어찌나 좋던지 발걸음이 절로 멈춰 섰다. 내려와서는 시원한 수박주스 한 잔으로 갈증을 달랬다. 휴대폰으로 예전 밴드 게시물을 찾아보니, 그때 찍었던 단체사진이 남아 있었다.

이제 옛 추억을 품고 다시 대부도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50km 전쯤, 구불구불 이어지는 시골길로 접어들자 길은 한결 부드러워졌다. 약 3시간 남짓 달려 집에 도착했고, 대구를 포함한 3박 4일의 여정이 마무리되었다.

돌아와 아내와 함께 지난 여행을 하나하나 복기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약속을 덧붙였다. “내년에 꼭 다시 오자.” 지키지 못할 수도 있는 약속일지라도, 여행은 늘 그렇게 다음 길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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