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바다 위의 길을 오르다
Chapter 3.
아침에 곧장 통영으로 향하려 했으나, 거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있었다. 바로 바람의 언덕. 학동몽돌해변에서 멀지 않아 가볍게 들를 수 있었다. 언덕에 오르자 거대한 풍차가 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30도를 훌쩍 넘는 무더위에도 시원한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오는 풍경이었다. 마치 누군가 대형 선풍기를 틀어둔 듯, 바람은 얼굴을 스치며 바다 끝자락의 경치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나는 다시 애마 G카에 시동을 걸고 통영으로 향했다.
통영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통영 케이블카. 거제 하면 외도와 해금강이 떠오르듯, 통영이라 하면 케이블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여 분간 케이블카를 타고 내리니 스카이워크와 함께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눈앞에 펼쳐졌다. 푸른 바다와 점점이 떠 있는 섬들, 그리고 붉게 달아오른 하늘빛. 카메라 셔터는 쉴 새 없이 눌렸고, 파노라마 사진과 동영상 촬영에 모두가 작가가 된 듯 저마다 인생샷을 남기느라 분주했다.
여기서 미륵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았으나, 30도를 넘는 무더위에 300m라는 거리가 짧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번 아내와 풍도에서 섬 일주를 하며 3시간 남짓 해안길과 산악을 걸었던 경험 덕분인지, ‘고작 300m, 아니 0.3km’라고 생각하니 훨씬 마음이 가벼워졌다.
길 위에는 ‘아재 개그’가 빼곡히 적힌 푯말들이 있어, 오르는 내내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반성문을 영어로 하면 글로벌.”, “방금 화장실에서 나온 사람은 일본 사람.” 다소 썰렁했지만 묘하게 힘을 빼주는 농담들 덕분에 발걸음은 가벼워졌다. 그렇게 웃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정상의 비석 앞에 서 있었고, 아내 역시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했다.
산을 내려오니 허기가 밀려왔다. 우리는 곧장 중앙전통시장으로 향했다. 점심 메뉴는 물회와 멍게비빔밥. 신선한 바다의 향이 그대로 입안에 퍼졌다. 한입마다 남해의 바다가 밀려오는 듯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이번에는 삼도수군통제영을 찾았다. 이순신 장군의 숨결이 남아 있는 세병관을 직접 보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입장 마감 시간에 불과 5분 늦어 문 앞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감동은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대신 발걸음을 옮긴 곳은 동피랑 벽화마을. 늦은 시각이었지만 덕분에 방문객은 드물었다. 고요한 골목길 벽화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기며 우리는 통영의 저녁을 천천히 거닐었다. 언덕 너머로 해가 저물고, 노을은 항구의 물빛과 뒤섞였다. 이어 찾은 디피랑 빛의 정원에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함께 미륵산에서의 감동을 다시 곱씹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이었던 **다찌(다찌집)**를 찾았다. 원래는 남해 어부들의 손맛에서 시작된 선술집 문화였지만, 지금은 통영을 대표하는 음식 문화로 자리 잡았다. 서민 음식이라고 하기엔 다소 비싼 1인 4만 5천 원. 하지만 이번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폭풍 검색 끝에 어렵게 자리를 잡은 우리는 코스요리처럼 이어지는 해산물의 향연을 만났다.
10분 간격으로 끊임없이 차려지는 음식들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전복, 멍게, 회, 튀김, 전골…. 30년 전 전라도에서 맛보았던 20첩 반상 이후 처음 느껴보는 푸짐함이었다. 모든 음식을 맛보고는 이제 그만 일어나야겠다 싶었는데, 아주머니가 마지막으로 재첩국을 내오셨다. 이 또한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국물 한 모금을 들이켰고, 하루의 피로가 눈꽃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통영항을 한 바퀴 거닐며 바람을 맞았다. 취기는 바닷바람에 씻겨 사라졌고, 항구의 불빛은 바다 위에 흩어졌다. 다만 아쉬움은 남았다. 사전에 알지 못했던 ‘디피랑 남망산 공원’. 몽환적인 빛의 테마파크라 했으니, 그것은 다음 기회로 남기기로 했다.
그렇게 통영의 밤은 깊어 갔고, 내일 아침 우리는 다시 삼도수군통제영, 세병관으로 향할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기운을 온전히 받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