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강과 외도_Oedo Botania
Chapter 2.
여행의 첫 기수는 어쩌다 몇 번을 오갔던 부산을 뒤로하고 거제로 향하는 길이었다. 바다와 섬으로 이어진 남해의 여정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은 외도행 유람선이었다. 흔히들 관광객이 한 번쯤 타보는 뻔한 코스라 생각했지만, 막상 배에 오르자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 찼다.
유람선은 거제 앞바다를 가르며 외도로 향했고, 그 길목에서 해금강을 만났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해금강’을 하나의 강(江) 이름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오늘에서야 그 뜻을 알게 되었다. 海金剛, 바다 위의 금강산. 이름처럼 웅장하고 수려한 경관이 눈앞에 펼쳐졌다.
특히 십자동굴 앞에 다다랐을 때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 선장님은 이곳이 일 년에 단 서른 날 정도만 맑은 날씨와 잔잔한 파도가 허락할 때에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말했다. 오늘이 바로 그 특별한 날이었다. 동굴 안으로 스며드는 햇빛이 십자가 모양을 만들며 바다 위에 떨어졌다. 신비로운 빛의 무늬는 바다와 하늘이 합쳐 놓은 성당 같았다. 바다 바람을 맞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이것이야말로 남해가 나에게 준 첫 선물이다.”
외도(Oedo Botania)에 도착하니 2시간의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섬은 섬세하게 가꿔진 정원처럼 아름다웠다. 화려한 꽃과 푸른 숲, 바다와 맞닿은 절벽이 어우러져 마치 유럽의 지중해 어딘가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주었다. 한낮의 햇볕은 뜨겁게 내리쬐어 30도를 훌쩍 넘었지만, 풍경에 취한 우리는 더위를 잊고 섬을 한 바퀴 돌았다. 정상에 오르니 카페 하나가 있었고, 조금 서둘러 오른 덕에 전망이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발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 그 위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을 바라보며 시원한 팥빙수를 한 숟갈 떠는 순간, 세상 그 어떤 호사도 부럽지 않았다.
다음 목적지는 학동 몽돌해변이었다. 여기에 숙소를 잡고 보니 창밖으로 바로 바다가 보였다. 검은 몽돌이 깔린 해변은 은은하게 파도 소리를 내며 우리를 맞았다. 바로 바다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아침 이후로 제대로 먹은 것이 없어 저녁을 먼저 해결하기로 했다. 검색해 보니 이곳의 대표 음식은 생선구이와 회덮밥. 고민할 것도 없이 평이 좋은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주인아주머니는 정겨웠다. 원래는 2인분에 세 마리 생선이 기본인데, 그날은 비수기라 손님이 적다며 인심을 쓴다고 한 마리를 더 얹어 주었다. 뜨겁게 구워진 생선 살을 발라내어 밥 위에 올리니, 그 맛은 단순하지만 깊었고 역시 등푸른 생선 고등어가 제일이고 여기에 소주 한 잔을 곁들이니, 바닷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이 입안 가득 사르럭 퍼진다
배를 채우고 숙소로 돌아온 뒤에는 몽돌해변을 산책했다. 발밑에서 자갈들이 부딪히는 소리는 작은 종소리처럼 은근히 귓가를 간질였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자 하늘은 붉게 물들었고, 바다는 잔잔히 그 색을 받아 안았다. 잠시 모래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바람은 시원했고,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왔다. 그 순간, 여행의 피로는 바다에 씻겨 내려가고 마음만 남았다. 그러나 바닷가의 밤은 그냥 흘려보낼 수 없는 법. 어찌 고양이가 생선을 그냥 지날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숙소 앞 포차에서 버터오징어구이 안주에 맥주 한 잔을 들이키며 아내와 마주 앉았다. 파도 소리를 배경 삼아 웃음이 오가고, 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파도와 섞여 흘러갔다. 그렇게 남해의 첫날밤은 바다의 품에 안겨 깊고 느긋하게 저물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