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9.14~9.19(4박6일)
Chapter 1.
� “무계획이 선물이다” — 코타키나발루에서 우리 가족의 시간
2025년 어느 늦여름 저녁, 남해 여행을 다녀온 뒤 네 식구가 모처럼 한자리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누가 먼저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누군가가 불쑥 한마디를 꺼냈다.
“남해도 좋은데, 우리도 해외여행 한번 갑시다…”
처음엔 웃어넘겼다. 하지만 다음 날엔 진지해졌고, 그다음 주엔 항공권을 검색하고 있었다.
그렇게 ‘즉흥’과 ‘계획 없음’을 무기로, 우리 가족의 첫 해외여행이 시작되었다.
목적지는 말레이시아의 휴양 도시, 코타키나발루였다.
어쩌다 이곳으로 정해졌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마 우리 아내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던 걸로 기억난다.
✈️ 준비는 가볍게, 설렘은 크게
출발까지는 약 한 달.
우선 항공권을 예약하고 숙소를 정했는데, 그 역시 이런 일에 능숙한 우리 아내, ‘이 상무’… 가끔 기분이 아주 좋을 땐 ‘이 전무’로도 불린다.
보통은 그냥 이 상무라고 부른다.
항공권과 숙소 모두 이 상무가 척척 예약하고, 나에게는 오직 통보만 있었다.
이번엔 또 하나의 든든한 무기, 바로 아들 찬스도 있었다.
두 아들 모두 일상적인 영어 소통에는 큰 무리가 없기 때문에, 현지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은 걱정 없었다.
나는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가장 편한’ 여행자였다. 물론 경비는 내가 전담하는 ‘자금 담당’이었다.
우리 가족이 모두 함께 해외로 나간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해외여행은 10여 년 전, 태국으로 간 패키지여행이었는데…
그땐 아이들도 어렸고, ‘먹방’이라는 개념도 희미했던 시절이라 그런지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다.
게다가 패키지였으니, 뭐 오죽했겠는가.
이번엔 달랐다.
비행기 표를 출력하고 짐을 싸는 그 모든 순간들이 낯설면서도 설레었다.
�️ 첫날, 남국의 공기에 스며들다
9월 14일 저녁, 드디어 코타키나발루 공항에 도착했다.
따뜻한 공기, 푸석한 바람, 낮게 깔린 하늘.
이국적인 풍경이 어색하면서도 묘하게 익숙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이미 밤 1시.
출출해서 아들과 함께 우산을 쓰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빗길을 뚫고 맥주와 간단한 요기를 사서 돌아와 허기를 달랬다.
다음 날 아침, 짐을 풀고는 현지 음식점 **‘이평 락사(Lee Fung Laksa)’**에서 첫 식사를 했다.
매콤하고 깊은 국물 맛이 인상적이었다.
여행의 첫 식사는 언제나 오래 기억에 남는다.
� 둘째 날, 천천히 흐르는 시간
리조트 조식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늦은 아침, 흐리다가 잠시 개는 날씨 덕에 수영장에서 가족 모두 맘껏 물놀이를 즐겼다.
평소 맥주병인 아내의 비장의 무기인 ‘암튜브’ 를 첫 선을 보이던 날이기도 했다
마치 어릴 적으로 돌아간 것처럼 웃고 떠들며 보낸 그 시간이, 여행 중 가장 따뜻한 장면 중 하나로 남았다.
아무 일정도 없는 하루.
그냥 걷고, 먹고, 쉬었다.
그 단순한 여유가 오히려 값지게 느껴졌다.
� 셋째 날, 패러세일링과 석양의 하루
9월 17일 수요일, 드디어 액티비티 데이.
패러세일링과 바나나보트를 즐겼다.
가족 모두가 함께 웃고, 물에 젖고, 소리를 지르며 한껏 에너지를 쏟아냈다.
그리고 저녁, 리조트에서 마주한 석양은 그 모든 활동을 고요하게 마무리해 주었다.
수평선 끝에서 서서히 내려앉는 태양.
황금빛 하늘 아래, 서로 말없이 바라만 보던 sunset
그 순간만큼은 누구도 휴대폰을 꺼내지 않았다.
그저 가슴에 새겨두기만 했다.
� 음식은 그곳의 언어
저녁 식사는 현지 해산물 식당에서.
새우, 조개찜, 생선찜, 그리고 볶음 모닝글로리까지.
각자 좋아하는 걸 골라 먹었지만, 주류를 판매하지 않아 분위기를 즐기기엔 살짝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현지의 맛은 낯설면서도 강렬했고, 그 자체로 이곳의 ‘언어’였다.
그 음식들을 통해 그들의 리듬과 풍경을 느낄 수 있었던 듯하다.
� 마지막 날, 작별의 여운
9월 18일 아침, 리조트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수영장에 들렀다.
남은 시간은 한 시간 반.
아이들과 물에 들어가 놀았고, 나는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
서로 말은 없었지만,
모두가 이번 여행이 각자에게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알고 있었다.
� 여행이 끝나고 남은 것
여행이 끝나고 돌아왔지만, 마음속엔 오히려 **'시작'**이라는 감정이 남아 있었다.
꼭 완벽한 계획이 아니어도 좋고, 많은 준비가 없어도 괜찮다.
함께 떠나고, 함께 머물고, 함께 돌아오는 그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여행이었다.
우리의 두번째 가족 해외여행.
그 여운은 아직도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 잔잔히 스며들어 있다.
다음 편에는 이러한 일정을 하루하루 나누어, 기억나는 이야기들을 하나씩 들려드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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