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타키나발루의 네 명의 발자국

마지막 날, 현실로 돌아가는 길 위에서

by 신현창

Chapter 6

2025년 9월 18일 금요일.


벌써 이곳에서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갈 줄은 몰랐다. 원래 체크아웃 날이라면 조식을 먹자마자 서둘러 짐을 챙기기 마련인데, 다행히 이 호텔의 체크아웃 시간은 오전 12시. 덕분에 가족 모두 한 번 더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한 번 더 수영하고 가자.”
서로 말하지 않아도 이미 마음은 같았다. 어차피 한두 시간 이상 놀 체력이 아닌 것도 알고 있으니까.

조식을 재빠르게 해결한 뒤, 수영장 필수 용품을 챙겨 다시 바닷가와 맞닿은 수영장으로 향했다. 몇 번의 방문 덕분에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이젠 몸이 먼저 기억하고 있었다. 늘 그렇듯 스노클링으로 시작해서, 작은 풀장에서는 어린 시절 아빠 등에 올라타던 놀이를 이번에는 아빠가 아들 등에 올라타며 되갚아(?) 보기도 했다. 이제는 그렇게 해도 될 만큼 아들들이 자라 있었고, 그 사실이 한편으론 마음을 묘하게 울렸다.


즐겁게 물놀이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니 어느새 11시가 훌쩍 지나 있었다. 네 사람이 각자 짐을 정리하며 분실물이 없는지 꼼꼼히 확인했고, 체크인 당시의 악몽 같은 대기행렬이 아닌, 아무도 없는 카운터에서 조용히 키를 반납했다. 그렇게 우리는 이곳과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고 택시를 타고 다시 시내로 향했다.


호텔에 짐을 임시 보관시키고 근처 현지 카페에 들어가 차를 마셨다. 조용한 실내, 동서양이 적당히 섞인 얼굴들, 확실히 ‘외국’에 나와 있다는 감각이 이번 여행을 더 특별하게 만들었다. 올해 초 방문했던 베트남은 한국인 비율이 많아 이국적인 느낌이 약했는데, 이곳은 균형이 잘 맞아 마음이 훨씬 편안했다.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은 첫날 맛보았던 ‘락사’를 다시 선택했다. 실패할 확률이 적다는 것도 이유였고, 어딘가 계속 아쉬움이 남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역시나 입안 가득 퍼지는 진한 국물이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이후 공항까지 가기엔 시간이 어중간해 대형 쇼핑몰에서 각자 2시간의 자유시간을 갖기로 했다.


하지만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쇼핑보다 수다가 더 즐거운 가족이라 그런지, 자연스레 이야기꽃이 다시 피었다. 그러다 막내가 맥도날드의 300원짜리 옛날 아이스크림과 비슷한 ‘추억의 소프트콘’을 들고 나타났다. 한국에선 사라진 그 맛을 이곳에서 다시 마주한 순간, 초등 시절 생일파티 때마다 빠지지 않던 그 아이스크림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이제 진짜 떠날 시간.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해 면세점을 둘러보았다. 특별히 마음에 드는 물건은 없었지만, 집에 돌아가 누군가를 초대했을 때 내놓을 만한 위스키 하나 정도는 있으면 좋겠다 싶어 JB 스카치 위스키를 선택했다. 유럽 판매 1위, 세계 2위 브랜드라는 설명과 750ml에 2만 원도 되지 않는 가성비가 마음을 움직였다. 직원의 무심한 표정을 뒤로하고 현금과 카드 결제를 섞어 결제를 마쳤다.


그리고 비행기 탑승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는 다시 현실로 돌아간다.

이번 여행이 어쩌면 네 가족이 이렇게 온전히 함께 보낸 마지막 해외여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큰아들은 이미 사회에 발을 들였고, 각자 자신의 삶의 궤도 위를 달리다 보면, 언제 또 이렇게 모든 시간을 맞춰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나 또한 형제들과 함께 여행을 마지막으로 다녀온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세월은 흐르고,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자랐다. 손안의 아이가 아닌,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그래서 더 간절히 바란다. 오늘의 이 여행이 ‘마지막’이 아니라, ‘첫 번째 추억 깊은 가족 여행’으로 기억되길.

4박 6일의 코타키나발루 여행기는 이렇게 끝나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여전히 계속된다.


그리고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한다.
“다음에도, 언젠가 또 다시… 우리 넷이 함께할 수 있기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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