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 그리고 축구공
이 연재는 창수와 민재의 성장과 관계를 그린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속 인물과 사건, 시간과 장소는
실제의 기억을 바탕으로 하되
문학적 허구와 각색을 거쳐 재구성되었습니다.
등장인물은 특정 실존 인물이나 사건을 지칭하지 않으며,
유사한 부분이 있다면
감정의 진실을 전하기 위한 서사적 장치일 뿐입니다.
본 이야기는 사실의 재현보다
기억에 남은 감정과 관계의 흐름에 초점을 둡니다.
독자께서는 이를 한 개인의 실화가 아닌,
누구나 지나왔을 유년과 청춘의 풍경으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창수와 민재의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제 1 막
제1장
햇빛이 흙먼지와 섞여 뿌옇게 떠다니던 오후,
우리는 늘 학교 옆 공터에서 친구들과 하루를 보냈다.
공 하나를 가운데 두고, 운동장 바닥에 돌멩이 하나로 경기장의 선을 그렸다.
오늘은 야구, 내일은 축구.
학교만 끝나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 공터로 모였다.
그곳은 우리만이 가진 하나의 우주와도 같았다.
축구는 약속이 없어도 놀이가 된다.
둘만 있어도 공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
처음엔 둘이서 차던 공이 어느새 대여섯 명의 발을 거친다.
어느 날, 형이 아끼던 고무 축구공을 들고
길가에서 친구들을 기다리며 혼자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트럭에 공이 바퀴로 빨려 들어가
형에게 엄청 혼난 적도 있다.
그래도 축구는 야구처럼 공이 남의 집 창문을 깨
엄마에게 혼날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어른들 눈에는 축구가 조금은 ‘안전한 공놀이’였다.
언제든 하고 싶을 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운동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공터의 진짜 주인은 언제나 야구였다.
그 시절 야구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
조금 더 폼나고, 조금 더 ‘땟깔 나는’ 놀이였다.
대신 반드시 필요한것들이 조금 있다.
최소한 글러브 하나쯤은 있어야 했다.
비닐 천에 ‘R’자가 찍힌 글러브도
2000원은 했을 것이다.
당시 초코파이 하나가 50원이었으니
생일선물이나, 운 좋은날 받을수 있는 것 중 하나다.
야구공은 ‘가다마이’ 정식 경기공을 그 당시는 대부분 그렇게 불렀다
하지만 우리는 대신 고무 연식공을 썼다.
두께는 5에서 10밀리쯤.
그래도 손이나 팔, 다리에 얻어맞으면
시퍼런 멍이 들기 일쑤였다.
힘 좋은 아이에게 제대로 걸리면
그 공은 두 동강이 나버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야구가 좋았다
공터는 곳곳이 파여 있었고 돌멩이도 많았지만,
던질 수 있는 거리만 나오면 그걸로 충분했다.
우리 같은 아이들에겐
그저 보기 좋고 멋진 ‘스타디움’ 같았다.
두 팀이 모을 수 있는 장비를 다 합쳐도
글러브 서너개, 배트 한 개, 연식공 한두개가 전부다.
그래도 경기는 기가 막히게 돌아갔다.
글러브는 포수, 1루수, 유격수, 외야에 하나씩,
운이 좋으면 하나 더.
나머지는 손바닥으로 공을 받는다.
한 이닝이 끝나 공수가 바뀌면
글러브는 자연스럽게 상대 팀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열 명이 넘는 아이들이 놀기에도 충분했다.
가끔은 다른 동네로 ‘원정 경기’를 가기도 한다.
“저기… 저 동네에 엄청 빠른 공 던지는 애 있다더라.”
누군가 그렇게 말하면
우리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한 줄로 달려갔다.
그 길 위에는 승부욕보다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재능을 보고 싶다는
그 단순한 호기심...
그저 놀러 가는 길이었다.
내기를 하거나 무엇을 걸고 싸우는 일은 거의 없었다.
누가 더 잘 던지는지,
누가 더 잘 치는지,
누가 더 잘 잡는지를 보여주고
그 동네에서 한참 놀다가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 가운데는
키 170의 국민학생,
"창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