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마니산에서

1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강화도

by 신현창


2026년 2월 21일, 강화 마니산에서


어제는 조금 특별한 산행이었다.


나의 마지막 근무지에서 인연이 닿은 한 분이 계신다. 퇴직 후에도 사회에서 계속 뵙고 싶었던 분이다. 지난 12월 다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분이 산악회대장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매월 한 번, 전국을 돌며 정기 산행을 이어가는 모임이라고 했다.




그분에게서는 묘한 품격이 느껴졌다. 말하는 태도와 풍기는 분위기에서 인생의 여유가 배어 나왔다. 고생 없이 평탄하게만 살아온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세상의 풍파에 거칠게 닳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단정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어딘가 닮고 싶은 모습이었다.




그분이 쓰신 글도 인상적이었다. 인문학적 사유를 담은 글, 그리고 책까지 발간하셨다. 표현은 다소 보수적이고 한자어가 많아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인 문장들. 그런 표현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내공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이미 기성세대이시고, 나보다 열 살쯤 이상은 많으신 올해 예순다섯, 예순여섯쯤 되셨을 것이다. 그 품격에 매료되어 이번 산행 초대에 망설임 없이 응했다.


약 3주를 기다린 끝에 어제 그 산행에 참석했다.





처음 인사드리는 자리였다. 연배도 대부분 나보다 대략 띠동갑은 위일 듯싶어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고 싶었다. 명함을 건네는 것보다 조금 더 따뜻한 방식이 없을까 고민했다.




처음에는 김밥 도시락에 짧은 인사말을 적어 넣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날이 시산제이고 하산 후 식사가 예정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계획을 바꾸었다. 양갱과 초콜릿(자유시간)을 함께 포장해 한 줄 소개와 이름(별명_신작가), 전화번호를 적어 넣었다. 모두 여덟 개를 준비했다.


전해 드리자 반응은 예상보다 따뜻했다.
“요즘 이렇게 오는 사람은 없는데…”
옛 신입행원이 첫 출근 날 동료끼리 떡을 돌리는 모습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말씀드리니, 다들 웃으며 반겨 주셨다. 나 역시 신입회원이었으니 말이다.





강화도에 있는 마니산. 높이 약 450미터라기에 동네 뒷산 정도로 생각했다. 집에 있던 운동화를 신고, 2월이니 겨울이라 여겨 두툼한 파카와 워머, 장갑까지 챙겼다.


그러나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달았다. 오늘의 드레스 코드는 실패였다.


날씨가 생각보다 포근했고, 무엇보다 산이 만만치 않았다. 시작부터 가파른 오르막. 바위와 돌이 이어진 돌산이었다. 발 디딜 틈이 좁고 경사는 끝까지 이어졌다. 관악산 깔딱 고개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된다고 생각하면 비슷할까.




바위 구간에서는 거의 네 발로 기어오르다시피 했다. 능선에 오르자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올 한 해 맞을 바람을 어제 다 맞은 느낌이었다. 시원함을 넘어선, 약간의 고통을 동반한 바람. 하산 무렵에는 앞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사나워졌다.


중간 헬기장 근처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다음에는 그곳에서 김밥을 꺼내 먹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상에 가까워지자 오늘의 목적지인 천제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로부터 신기가 서린 곳이라 하여 강화도에서 유명한 장소라 한다.


이곳에서 시산제를 준비했다. 자리를 찾느라 잠시 헤매다, 다소 송구하지만 양해를 구하며 자리를 폈다. 그리고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우리 산악회는 ‘진심’이었다.


떡 한 말, 정종 한 병, 대추 한 봉지, 북어 한 마리, 배 세 개, 사과 세 개, 땅콩 한 접시. 정식 제사상이 차려졌다. 산 위에서 이렇게 정성스럽게 제를 올리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제사를 마치자 주변 등산객들이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떡 한 말이 과연 다 나갈까 속으로 걱정했는데, 걱정은 기우였다. 순식간에 모두 나누어지고, 사람들은 “감사합니다” 인사를 남기고 내려갔다.


무거웠던 가방이 한결 가벼워진 채, 우리도 무사히 하산했다.





하산 후 찾은 산채비빔밥집.
12,000원에 푸짐한 반찬과 비빔밥. 가성비가 놀라웠다. 거기에 인삼막걸리 한 잔. 쌉싸름한 맛 사이로 밤인지 대추인지 씹히는 식감이 재미를 더했다. 적당한 취기가 오르고, 하루의 긴장이 서서히 풀렸다.





다음 코스는 사우나였다. 산행과 식사, 휴식까지 모두 계획된 일정이었다.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그니 온몸의 피로가 사르르 녹아내렸다.


강화에서 올림픽공원까지 토요일 오후임에도 1시간 35분 만에 도착했다. 도로도 많이 개선된 듯했다. 강화도는 귀촌 후보지로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움은 있었다. 우리는 ‘산을 타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주변을 충분히 둘러볼 여유가 부족했다. 다음에는 시간을 넉넉히 잡아 산과 주변을 함께 음미해 보고 싶다. 대장님께 한 번 건의해 볼 생각이다.(참고:어느 산악전문가가 “산은 타는 것이 아니고 산은 오르는 것이라”라고 우리가 이 거대한 자연을 탄다는 것은 그 자연에게 실례되는 뜻이라고 한다나..(? )




어제의 산행으로 몸에는 근육통을 남아있지만, 나는 이 약간의 근육통이 올 때가 참 좋다 왜냐하면 어제의 일이 참되었다고 만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마음에는 새로운 인연과 설렘을 남겼다.
기분 좋은 통증이 오래 남기를 바란다




2026.2.22


栗石. 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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