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값, 똥값, 꼴값

프리한가(可)

by 친절한 마녀

나에게 네가 하는 일의 가치는 무엇으로 알 수 있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서슴없이 돈이라 말하겠습니다.


너무 속물적인 대답인가? 물질만능주의에 찌든 한 인간의 절규처럼 들리는가? 그렇다 한들 부정하고 반박할 재간이 없다. 솔직한 심정이 나와 내 일의 가치가 돈으로 제대로 환산되길 바라는 것을 어쩌겠는가. 돈 말고 고귀하고 숭고한 자신만의 가치 척도를 가지라고 감히 말하지는 못하겠다. 프리의 세계에서 내 일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되고, 내 이름값에 비례해 일 값이 정해진다.


프리 에이전트 세계에 뛰어든 지 4년 차. 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만드는 고민이 있다. 실력을 팍팍 보여주면 많은 돈을 벌 줄 알았다. 그러나 알지 않나.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걸.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내가 제공하는 시간, 노력, 가치보다 늘 적은 값에 제안이 들어온다. 심지어 터무니없을 때도 있다. 아직은 덜 배가 고픈 건지 하고 싶은 일이어도 너무하단 생각이 드는 일은 이런저런 핑계로 거절을 한다.


처음에는 아직 어디 가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사람이 아니다 보니 어떤 일은 좋아서 무료로 하고, 또 어떤 일은 첫 거래니까 시장이 그렇대서, 또 고객이 작은 규모고 어렵대서 그냥 주어지는 대로 일을 했다. 내가 왕년에 조직에서 어떤 실력을 발휘하고 어떤 대우를 받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이 프리의 세계에서 나는 한낱 무명일 뿐이었고, 내 이름값은 없는 거나 진배없었다. 이름값이 없으니 대부분 헐값으로 일을 맡기려 했다. 이름 석자가 버젓이 있는데도 무명이요, 하는 일이 똥값 처리를 당하니 이래저래 서러웠다.


한때 유명했던 어느 개그맨의 외침이 쓱 떠오른다.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이게 어디 더러워서 그러겠나, 시장의 논리가 그렇지 하면서도 사실 억울하지 않은 건 아니다. 일이 값을 정하는 게 아니라 하는 이의 이름이 일 값을 정하다니, 볼멘소리로 혼자 속으로 따지기 일쑤다. 내 소심한 성격도 한몫 거든다. 용기를 내어 고객과 잘 협상해 일 값을 높이기라도 할라치면, 이내 심장이 콩닥거리고 고객의 이러쿵저러쿵하는 소리에 일을 놓칠세라 그대로 수용해 버린다.


그렇게 일을 시작하고 나면 일을 하는 중간중간 본전 생각이 나서 힘이 빠진다. 열과 성을 다하면 다음엔 알아주겠지 하지만 그마저도 실망하는 일이 많다. 고객이 알아서 값을 쳐주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이건 이거고 그건 그거다. 인정과 보상은 별개일 때가 경험상 더 많다. 비례하지 않는다. 하는 일에 비해 더 주고 있다고 생각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서비스가 그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더니 실감한다.


얼마 전 한 고객이 내 콘텐츠가 마음에 들어 주변에 물어 물어 연락을 해왔다. 미팅을 하고 업무를 파악하고 견적가를 보냈다. 그 이후 고객은 감감무소식이었다. 고객은 좋은 콘텐츠는 원하지만 좋은 값을 쳐줄 생각은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A4 2매짜리 콘텐츠는 하늘에서 그냥 뚝 떨어지는 게 아닌데, 섭섭한 대목이다. 가끔 싼 값에 일을 맡길 수 있는 온라인 사이트를 고객에게 안내하곤 하는데, 고객은 신뢰하기가 어려워 추천받거나 검증된 사람과 일하고 싶다고 얘기한다.


신뢰, 검증의 가치는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런 사람과 일은 하고 싶다니 아이러니다. 고객이 원하는 값은 딱 그만큼의 가치만 발휘한다. 딱 그만큼만 일과 품질을 유지한다는 얘기다. 그게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그러니 제값 주는 일에 인색하거나 비싼 값을 치르는 듯 말아주시길 고객님들께 당부도 드린다.


주변에선 냉정해져야 한다고, 가치를 인정받고 정당한 대가를 주는 곳과 일에 집중하라 한다. 나도 깊이 동의한다. 그래서 다음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다시 협상이라도 할라치면 신경이 쓰이고 일을 놓칠 때도 많다. 그럼 받은 만큼만 일하라고 한다. 많은 프리가 그렇겠지만, 일을 맡은 이상 남부끄럽지 않게 나름의 최선을 다해야 마음이 편하다.


그동안 글을 쓰고, 몇 권의 책을 번역하며 몇백 원의 단가를 올리고, PR 마케팅 대행이나 자문 일을 하면서 기존 대형 업체 및 중소 난립한 업체들과 경쟁하기 위해 위아래로 가격을 치고, 강의를 하면서 시간당 몇만 원을 고객과 밀당을 하면서 조금씩이나마 가격을 올리는 것도 여간 진땀을 뺀 게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숱하게 내 서비스 수준에 비해 값이 너무 많은지 아니면 너무 적은 지, 혹은 적정한 지 매번 머리를 쥐어뜯었다.


또 어떻게 올린 가격인데 다시 누군가 내릴라 치면, 내 일의 가치를 부정당하는 것 같아 그 일을 안 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낮게라도 하는 게 미래에 좋은가 등 끊임없이 자문을 한다. 이런 자문이 되풀이되다 보니 좋아하는 일도 망설여지고 계속 프리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물론 이 모든 얘기는 내 서비스의 품질이 고객을 만족시킬 때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문득문득 내가 꼴값을 떨고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런 고뇌와 밀당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끌려갈 수는 없다는 자존심 사이에서 나는 늘 갈대 처지다. 하고픈 일이나 자존심을 살리다 보면 보릿고개. 차 떼고 포 떼다 보면 그야말로 반백수.


어째야 할까. 보릿고개를 넘으려면 어떤 일이라도 좋든 싫든 준다는 값에 상관없이 일을 해야 하는데, 잡힐 듯이 잡힐 듯이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몹쓸 코로나19 전염병처럼 내 안의 내적 갈등은 쉽사리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전염병은 반드시 잡아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의 갈등도 마찬가지다.


우선, 내 진가 또한 고객이 인정해 줄 때 비로소 빛을 발하니 일 하나를 하더라도 폼 나고 멋지게 해내야 한다. 이게 전제다. 그리고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으니 내 안의 나부터 정리하자. 유연성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나로 줏대를 세우는 것이다. 시장조사를 하고 경쟁력 있는 값으로 내 일의 가격을 정하고, 시장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며 유연한 협상의 기술을 발휘해야 한다. 때때로 나를 갈아 넣는 곤혹이 아니라면 과감히 타협도 해야 한다.


각자도생. 제 살 길을 찾아야 하고, 또 제 살 길이 다 따로 있다. 그에 맞게 돈을 버는 방법 또한 다 다를 테지만, 자신만의 줏대를 명확히 세우고 그에 따라 살고 일한다면 이름값이 생기지 않겠는가. 내 이름 석자를 걸고 그에 걸맞게 일을 해야 유명세도 생기고 내 일 값의 기준도 설 터. 내 일 값을 똥값에서 금값으로, 꼴값이 아니라 내 이름값을 할 그 뭔가를 찾아보자. 말이 쉽지 어려운 일이다. 작은 것부터 하자.


지금 당장 뭐부터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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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마녀는

원하는 시간과 장소, 원하는 조건, 원하는 사람을 위해 일하며 프리한 삶이 지속 가능한지 실험 중이다. 천국 같은 프리의 세계가 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 본 글은 친절한 마녀가 IT 조선에 기고한 [김정희의 프리한가(可)] 의 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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