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한가(可)
잠시 견딤의 시간을 슬기롭게 보내고 나면 모두 제자리로 돌아올 줄 알았건만, 이제 우리는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기 힘들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사방팔방에서 들려온다. 많은 것이 변했고 더 변할 것이라는 예측들이 넘친다. 비대면 환경이 대표적이다. 얼핏 들으면, 노트북과 스마트폰 달랑 두 개로 집에서든 카페 서든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나 같은 프리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만도 않다. 일의 한 부분만을 맡는 경우에는 걱정이 덜하지만, 일거리를 기획하고 제안해서 따내는 일까지 도맡아 해야 하는 프리에게는 비대면 환경에서 고객을 설득하고 유치해야 하는 일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로 일을 하는지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독립 사업자 형태로 일하는 프리라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묘수를 짜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이런 상황은 프리에게만 닥친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 활동을 하는 기업과 개인 모두에게 닥친 도전이자 현실이다. 고객을 직접 만나도 쉽지 않은 게 영업인데, 만나지 않고도 고객을 파악하고 설득해서 믿을만한 거래를 성사시켜야 하는 것이다. 코로나19는 고객의 비즈니스를 정체시키고 나의 주요 일거리도 모두 멈춰 세웠다. 대부분의 일이 그럴 테지만 유독 내가 하는 일이 고객 비즈니스 환경에 민감하고 특정 고객 의존도가 높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올 초만 해도 이런 고민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직면한 현실이니 부정하거나 회피할 수가 없다.
왜?
내가 길을 찾고 이겨내지 못하면 내 밥줄이 끊기기 때문이다.
특정 고객 의존도를 낮추고 변화에 덜 민감한 일을 찾아 변하는 환경에 맞게 해내야 하는 막중한 책무가 생겼다. 하는 일과 수행 형태를 디지털 환경에 맞춰 다각화하여 포트폴리오를 정비하고 위험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본격적으로 잠재 고객을 찾아 나서고 실제 고객으로 가능한 많이 전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디지털 비대면 영업 환경에 적응해야 할 적신호가 켜진 셈이다. 앞으로 내 프리 생활의 운명이 여기에 달렸다. 일거리의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아울러야 하는 프리라면 직접 마케팅과 영업을 해서 일거리를 만들거나 따내야 한다. 그동안 알음알음 이어온 지인 네트워크는 금세 한계에 다다를 것이다.
조금씩 일이 다시 활성화되고 있지만 코로나 19와 같은 위기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고 그럴 때마다 내 프리한 삶은 휘청거릴 수 있다. 미리 대비가 필요한 이유고 코로나19 위기의 학습 효과다. 뭐부터 하는 게 좋을까. 어차피 고객을 직접 대면하기 힘든 상황이니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서비스 소개서를 업데이트하고 건실한 기업 목록을 작성해 관련 업무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전화를 해서 잘 설명하면 되겠지 싶어 곧장 실행에 착수했다. 하지만 어디 일이 다 내 뜻대로만 되랴.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내가 영업할 목표 고객인 건실한 기업의 기준은 무엇으로 정할 것인가?
애매한 상태로 코스닥 상장 기업들을 찾아 홈페이지를 열어 홍보나 마케팅을 하고 있는지, 교육은 진행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판단이 서면 담당자 이메일을 홈페이지에서 뒤졌다. 대부분 회사 대표 전화번호만 표기되어 있어 담당자 이메일은 고사하고 대표 이메일도 알기가 어려웠다. 할 수 없이 대표 번호로 전화를 거니 심장이 얼마나 콩닥대던지, 연결 신호음이 5번이 울리는 동안 마음 속으로 전화를 ‘받지 마라, 받지 마라’하며 안 받기를 내심 바랐다. 그러곤 받지 않으면 전화를 얼른 끊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래서야 원, 어디 먹고살 수 있겠나.
혹시라도 “바쁜데요.” “뭐라고요? 그런 거 필요 없어요.”라고 쌀쌀맞은 목소리가 전화기 넘어 들려올까 겁이 났다. 그럴 때 나는 얼굴 빨개지지 않고 대범하게 “아 그러시군요. 네, 그럼 다음에 필요할 때 연락 주세요. 저도 다음에 다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하고 웃으며 전화를 끊을 수 있을지 영 자신이 없었다. 분명 나를 거절하는 게 아니라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당장에 필요 없다는 거절일 터인데, 이성적으로는 너무 잘 알면서도 감정적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인사가 바로 딱 나인 셈이다. 예전 회사 다닐 때 줄창 고객에 살고 고객에 죽던 영업 직원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니 일일이 찾아가 존경의 마음을 표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직장인이 회사에 나올 때 집 문 앞에 자기 자신을 두고 나온다고 하더니, 영업 직원은 아예 옷장 서랍에 고이 접어 놓고 나와야 할 성싶었다. 전화 한 통에도 쩔쩔매는 모습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내 자신이 참 웃기는 짬뽕 같았다. 가장 기본적인 비대면 영업조차 버거워하니 내 프리한 삶의 앞날이 캄캄했다. 어쩌겠는가, 평소 소신대로 이 없으면 잇몸이지. 내 방식대로 영업을 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디지털 환경을 적극 활용해 우선 개인 브랜딩에 힘을 쏟기로 했다. 목표 고객이 있는 소셜 네트워크에 계정을 개설하고, 고객이 필요로 하는 글을 쓰고, 콘텐츠를 만들어 고객의 반응을 살피고 있다.
종종 고객들이 그동안 축적한 내 콘텐츠를 검색해 본 후, 강의나 홍보마케팅 서비스를 문의해 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 참에 본격적으로 개인 브랜딩을 강화하고 인바운드 영업으로 이어지도록 할 계획이다. 고객이 신뢰를 하고 먼저 찾게끔 하는 게 관건이다. 쉽지 않은 일이고, 고생 길도 훤하다. 고객이 먼저 찾았다고 일이 무조건 성사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길고 지리한 커뮤니케이션 과정과 의사결정을 거쳐도 결국엔 성사가 안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더 강력한 개인 브랜드가 필요하다. 고객이 마음의 결정을 미리 하고 나를 찾을 수 있도록 말이다.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의 뉴스 채널이나 소셜 네트워크 이용 행태는 더 확대되고 다양해졌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그에 맞춰 나의 생존 전략도 바꿔야 한다. 여기서 프리한 삶에 안녕을 고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소셜 네트워크 활용은 시작에 불과하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확신을 주고, 함께 일하고 싶다는 의사 결정을 고객이 쉽게 할 수 있도록 비대면 환경에서도 고객과 잘 커뮤니케이션할 방법을 계속 찾아 나가야 한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란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우아한? 영업의 세계에서 물음표를 떼어 내고 정말 우아한 프리의 삶을 계속 살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의 끈을 놓지 말자.

친절한 마녀는
원하는 시간과 장소, 원하는 조건, 원하는 사람을 위해 일하며 프리한 삶이 지속 가능한지 실험 중이다. 천국 같은 프리의 세계가 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 픽사베이
※ 본 글은 친절한 마녀가 IT 조선에 기고한 [김정희의 프리한가(可)] 의 원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