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존재가 아주 미세하게 방향을 바꾸는 순간처럼, 왜? 새벽은 늘 나보다 먼저 와있는지?
RER 이층 전철 창가에 기대어 앉아 일행들의 상황을 지켜보며 있었다. 유리창에는 밤의 잔여가 얇게 남아 있었고, 일행들에게는 말해지지 않은 피로가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다. 전철은 지상을 달리다 아무 예고도 없이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거대한 도시의 내부, 보이지 않는 층위를 통과하는 기분이었다. 이상하게도 불안하지 않았다. 어쩌면 인간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어떤 흐름 속을 지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길을 잃는 순간조차, 존재는 여전히 앞으로 이동하고 있으므로.
다시 지상으로 떠올랐을 때, 시야 끝에 개선문이 서 있었다.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머물며 나를 기다려온 형상처럼 느껴졌다.
새벽빛에 잠긴 그 구조물은 인간의 시간과는 다른 층위에 놓인 물체 같았다. 사람이 만든 돌이면서도 사람을 넘어선 침묵을 품고 있는 존재. 시간 속에 있으면서 시간의 바깥을 가리키는 표식. 우리는 결국 사라지지만, 어떤 형식들은 사라짐을 통과하며 남는다. 기억이란 그런 방식으로 세계에 머문다.
센 강의 바람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그러나 흔들린 것은 몸보다 마음의 내부였다. 낯섦, 기대, 설명되지 않는 고독이 겹겹이 스며들어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그 고독이 나를 축소시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윤곽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인간이 자신을 가장 또렷하게 인식하는 순간은, 아무도 대신 말해주지 않는 고요 속에서 이기 때문이다.
자유는 거대한 선택의 순간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떠맡는 태도로 조용히 형성된다.
선택하지 않음조차 하나의 선택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존재는 언제나 스스로의 원인이 되어야 하므로.
이유의 존재? 존재의 이유? 있어도 없어도 걸어가야 한다,
아침이 오기 전까지는 계속 걷고 싶었다.
그래서 에펠탑 아래까지 걸어갔다.
멀리 서는 단단한 철의 집합처럼 보였지만, 구글맵을 따라 가까이 다가가자 선들은 예상보다 유연했다. 강철로 이루어진 한 편의 시. 시간의 무게를 견디면서도 형태를 잃지 않는 구조. 영원은 이렇게 오래 지속되는 현재의 밀도 속에서 잠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센 강을 건너며 뒤돌아보지 않았다.
존재하는 것들은 확인하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으며, 사라지는 것들은 붙잡아도 머물지 않는다. 세계는 늘 그런 방식으로 균형을 유지한다.
도시는 천천히 깨어났고, 내 안의 소음은 반대로 잦아들고 있었다. 흔들림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흔들림을 해석할 언어가 조금 생겼을 뿐이다. 이해란 고통이 머물 자리를 만들어 주는 일에 더 가깝다.
흔들린다는 것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는 의미다.
닫히지 않은 존재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완성은 종종 정지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므로.
샹젤리제 거리를 지날 때, 아직 꺼지지 않은 크리스마스 장식이 보였다. 현실 위에 얇게 겹쳐진 빛의 층. 인간은 왜 이렇게 사라질 것들로 세계를 장식하는 걸까. 아마도 덧없음을 알기 때문에, 더 강하게 빛나게 하려는 마음일 것이다. 유한성은 결국 의미의 조건이 된다.
파리는 건축물로 이루어진 도시이면서 동시에 기억으로 이루어진 도시다. 수많은 발걸음과 감정의 잔향이 보이지 않는 결을 만든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누구나 잠시 자신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처럼 느끼게 된다. 인간은 사실을 견디기보다 서사를 통해 살아가니까.
내 삶 역시 거대한 서사라기보다 몇 개의 문장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문장은 짧아도 충분히 진실할 수 있다.
진실은 길이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파리의 시작은 쇼핑이었다. 고급 가죽의 향기 속에서 문득 생각했다. 우리는 왜 물건을 소유하려 할까. 어쩌면 사라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기 때문에, 형태를 가진 것에 마음을 기대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유는 존재의 불안을 잠시 늦추는 방식일 뿐,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 그 순간의 일들이 후회스럽다. 넉넉하지 못한 마음들이.)
오래 걷자 몸이 먼저 침묵했다. 배고픔은 모든 사유를 단순하게 만든다. 오후 세 시가 지나 먹은 햄버거 하나가 놀라울 만큼 분명한 기쁨을 주었다. 결국 인간을 지탱하는 것은 이렇게 구체적인 순간들이다. 철학은 하늘에 머물지 않고, 빵과 숨과 피로 속에서 비로소 현실이 된다.
밤이 되었고, 작은 식당에 들어가 맥주를 주문했다.
혼자 있는 시간은 외로움과 자율성 사이의 좁은 경계 위에 놓여 있다.
그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사람은 비로소 자신과 화해한다.
자기 자신과 같은 편이 되는 일. 그것이 삶에서 가장 늦게 도착하는 평온일지도 모른다.
잔을 비우는 동안 하루가 천천히 정리되었다. 결국 남은 것은 단 하나의 감각이었다. 오늘을 통과했다는 감각. 삶은 이렇게 하루를 통과해 내는 반복 속에서 조금씩 형태를 얻는다.
존재는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수많은 밤의 누적이 조용히 한 사람을 만든다.
우리는 매일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며, 그 변화는 너무 미세해서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공기는 차가웠고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일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흔들리는 존재인지 이해해 가는 시간이다. 세계를 통과하는 동안, 사실은 세계가 우리를 통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날의 파리는 보랏빛에 가까운 침묵을 지니고 있었다.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색.
의미는 언제나 이렇게 말해지기 직전의 상태로 머문다.
내일이 무엇을 데려올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또렷하다.
조금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미세한 변화야말로, 시간이 인간에게 남기는 가장 조용한 흔적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