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공정한 접근

모두를 위한 문을 열다

by 원성진 화가

기술은 종종 약속한다.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지식을 얻을 수 있고,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고. 약속은 희망처럼 들리지만, 그것이 지켜지지 않는 순간, 약속은 오히려 가장 잔인한 기만이 된다. 기술의 언어가 진실이 되려면, 그 약속은 실제의 문으로 열려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기술은 늘 불평등하게 분배된다. 어떤 이는 최신 기술의 혜택을 누리지만, 어떤 이는 여전히 연결되지 못한 채 소외된다. 불평등은 단순한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기회의 절벽이며, 존엄의 단절이다. 기술이 소수의 손에만 집중될 때, 그것은 더 이상 진보가 아니라 지배가 된다.


공정한 접근이란, 기술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원칙은 모든 제도의 뼈대이며, 공동체의 약속이다. 공정한 접근은 이상이 아니라 최소한의 정의다. 정보의 불평등은 곧 기회의 불평등이다.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아이는 교육에서 뒤처지고, 최신 디지털 도구에 접근하지 못한 노동자는 새로운 시장에서 배제된다.


정보는 오늘날의 빵과 같다.


빵이 없는 자는 굶주리듯, 정보가 없는 자는 배제된다. 교육과 노동의 불평등은 곧 미래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삶의 방향 전체를 가르는 문제다. 기술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생존의 조건이란 곧 권리의 조건이다. 기술을 소유한 자와 소외된 자 사이의 간극은, 오늘날 새로운 형태의 생존 격차를 만든다.


철학적으로 공정한 접근은 정의(justice)의 문제다. 존 롤스의 ‘정의론’은 사회 제도는 가장 불리한 사람에게도 이익이 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의는 강자를 위한 미덕이 아니라, 약자를 위한 안전망이다. 기술 또한 정의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가장 뒤에 선 자를 돌보지 않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기술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강자의 특권이 아니라, 모두가 나눠 가져야 할 공적 자원이다. 기술은 사유재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공유재다. 그것을 나누지 않는 순간, 기술은 희망이 아니라 억압의 도구로 변질된다.


공정한 접근은 단순히 기계를 나눠주는 것이 아니다. 언어 장벽을 넘어서는 번역 기술, 장애인을 위한 보조 도구, 농촌과 도시를 동일하게 연결하는 인프라가 포함된다. 공정은 단순한 배분이 아니라, 진정한 참여의 가능성이다. 그것은 인간이 동등하게 말하고, 배우고, 꿈꿀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기술은 그 자체로 인간의 평등을 실현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열쇠는 문을 열기 위해 존재한다. 닫힌 문 앞에 서 있는 자에게 열쇠가 없다면, 그 문은 장식일 뿐이다. 기술이 열쇠라면, 반드시 모두의 손에 쥐어져야 한다.

만약 기술이 일부만의 전유물이 된다면,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계급 사회를 만들어낼 것이다. 디지털 귀족과 정보 빈민으로 나뉜 사회는, 과거의 봉건보다 더 깊은 단절을 낳을 것이다. 불평등은 기술의 이름으로 가장 세련된 착취가 된다. 그러나 기술이 모두에게 공정하게 제공될 때, 그것은 민주주의의 가장 강력한 토대가 된다. 민주주의는 투표소에서만 완성되지 않는다. 평등한 접근을 통해, 모두가 동등하게 미래에 참여할 때에야 비로소 민주주의는 숨을 쉰다.


공정한 접근은 단순한 권리가 아니라, 인간 존엄을 보장하는 최소 조건이다. 존엄은 누구에게도 나눠줄 수 없는 특권이 아니라, 모두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토대다. 공정한 접근은 바로 그 존엄의 열쇠다.


우리가 열어야 할 문은 단 하나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기술의 문. 문이 닫힌 채 미래를 말할 수는 없다. 진정한 미래는 열린 문에서 시작된다. 그 문을 통해서만 인류는 진정한 의미의 미래로 들어설 수 있다. 미래는 소수의 것이 아니다.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 공정한 접근은 그 미래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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