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2024/12/26/03:00
새벽 3시.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었다. 샹베리의 낡은 숙소는 밤새 잠 못 들게 했다. 차가운 공기보다 더 서늘한 적막이 방 안을 채웠고,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소음들이 불안감을 자극했다. 결국 도망치듯 짐을 챙겼다. 문을 나서는 순간, 한겨울의 공기가 눈을 스쳤다. 예고 없는 비수처럼 날카롭게 파고드는 한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인간은 언제나 ‘떠남’의 존재다. 알튀세르는 우리를 결정하는 구조 속에서도, 예기치 않은 ‘탈출의 순간’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것은 계획된 변화가 아니라, 불안이 임계점에 다다를 때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도피. 구조를 흔드는 우발적 균열이다. 지금 이 도망은 패배가 아니라, 존재가 스스로를 되찾기 위한 첫 번째 반응이다.
알프스를 넘는 길은 숨 막힐 만큼 고요했다. 모든 것이 얼어서 굳어 있는 듯한 적막 속에서, 새벽의 어둠은 눈 덮인 산맥을 삼키고 있었다. 하늘은 무겁게 가라앉았고, 별빛마저 차가운 공기 속에 얼어붙은 듯 영롱했다. 핸들을 움켜쥐고 천천히 산길을 올랐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설경은 웅장하면서도 날카로운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달빛이 스며든 눈 덮인 봉우리들은 무섭게 빛나며, 끝없는 침묵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고요는 언제나 인간의 사유를 드러내는 거울이다. 구조가 사라지고, 언어가 멈춘 그곳에서 비로소 ‘나’는 자신을 자각한다. 어둠은 결코 결핍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가 스스로를 새로이 감각하는 흑색의 빛이다.
길가에 차를 세웠다. 시동을 끄는 순간, 세상이 한순간에 멎었다. 모든 소리가 사라진 자리엔 완전한 정적만이 내려앉았다. 차 문을 열고 내리는 순간, 찬 공기가 옷깃을 파고들며 피부를 스쳤다. 밤의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고개를 들자, 검은 하늘 위로 북두칠성이 손으로 닿을 듯 낮게 내려와 있었다. 마치 오랜 여정을 끝낸 별들이 이곳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듯했다. 그들은 차가운 공기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빛났고, 그 무심한 반짝임 속엔 우주의 질서와 고요한 위엄이 깃들어 있었다.
하얗게 피어오르다, 순간 흩어지는 날숨을 바라보았다. ‘나’였다. 이 깊고 적막한 새벽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사실이 서서히 실감되었다. 북두칠성이 지켜보는 밤, 고요 속에서 나 자신을 비추어 보았다. 그리고 어쩌면, 이 순간이야말로 내가 가장 온전히 ‘나’로 존재하는 때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주체’는 언제 형성되는가? 알튀세르는 그것이 언제나 ‘호명(interpellation)’의 순간에서 생긴다고 했다. 그러나 이 순간, 나는 그 어떤 외부의 호명도 받지 않는다. 이름도, 역할도, 관계도 사라진 채 오직 한 사람의 ‘존재’로 서 있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비로소 구조로부터 벗어난 존재의 맨살을 만난다.
다시 길을 나섰다. 산맥은 여전히 끝없이 이어졌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그림자는 한층 더 깊고 날카로워졌다. 어둠은 여전했지만, 알프스의 은은한 빛이 나의 길을 비추고 있었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의 공기와 적막, 그리고 광활한 자연의 존재감은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각인될 것 같았다. 모든 ‘여정’은 불확실성을 향한 신뢰의 행위다. 우리는 도착지를 알기 전에 이미 길 자체를 믿는 존재로서 살아간다. 그 믿음은 종교적 확신이 아니라, 생존의 감각에서 비롯된 철학이다.
그렇게 새벽의 어둠 속을 달리던 중, 알프스를 넘어가는 길목에서 거대한 터널이 여러 가지 위험신호등처럼 번쩍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프레쥐스 로드 터널(Fréjus Road Tunnel). 전날에는 도버 해협을 가로지르는 유로터널을 통과했었고, 이제는 알프스 산맥 아래를 관통하는 이 긴 터널을 지나게 되었다. 인간의 기술과 자연의 위대함이 교차하는 길이었다. 터널은 근대의 은유다. 인간이 자연의 심장을 뚫고 지나가며, 보이지 않는 경계를 재정의하는 구조적 행위. 그러나 그 안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한계를 다시 마주한다. 터널 속에서 느끼는 공포는 기술이 아니라, 존재의 밀폐감이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이 만든 구조 속에 갇히며, 동시에 그것을 통해 밖으로 나가려 한다. 프레주 터널은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잇는 중요한 통로로, 길이만 해도 약 13km 달한다. 터널 입구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 어둠 속에 뚫린 길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수많은 도전과 노력을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그 경이로움도 잠시, 이 터널을 통과하는 비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터널 유지 관리와 안전 시스템을 위한 비용이라지만, 높은 통행료는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이 길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알프스의 거대한 바위산을 뚫고 지나가는 이 터널은 단순한 기술적 성취가 아니라, 인간의 집념과 의지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터널 속으로 들어서자, 바깥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놓인 조명이 노란빛을 발하며 길을 밝혔지만, 그 빛은 온기라고 보다는 차가운 기계적 질서를 상징하는 듯했다. 터널 벽은 끝없이 이어졌고, 그 단조로움 속에서 시간의 감각마저 희미해졌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던 장엄한 설경과 달리, 이곳에는 자연의 흔적도, 생명의 기운도 없었다. 오직 인간이 만든 좁고 긴 공간만이 존재했다.
터널은 흥미로운 공간이다. 바깥세상과의 단절 속에서 같은 조명이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될 때, 시간의 흐름은 초점을 흐리게 했다. 속도와 고요함의 대비 속에서 의식은 점점 고립에 대한 의식이 불안까지는 아니지만 살짝 걱정스러웠다. 차량 속도는 제한되어 있었고, 곳곳에 설치된 감시 시스템이 우리의 이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알프스 산맥 아래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순간적으로 숨이 가빠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이 터널은 수십 년의 기술과 경험으로 구축된 결과물이었다. 그 믿음이 불안을 눌러주었다. 터널을 빠져나가면 새로운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가속 페달을 살짝 밟았다.
마침내,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다른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출구였다. 알프스의 품을 잠시 빌려 지나온 시간은 터널의 끝과 함께 막을 내렸다. 어둠이 걷히고 새로운 아침이 다가오고 있었다.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알프스의 또 다른 얼굴이 펼쳐졌다. 차갑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마주한 풍경은 마치 이 세계와 저 세계의 경계를 넘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웅장한 산맥의 품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이 길고도 깊은 통로는 단순한 길이 아니라, 자연과 공존하려는 인간의 의지와 도전의 산물처럼 보였다. 도버 해협을 가로지르던 유로터널에서 시작된 여정은 프레주 터널을 지나며 또 한 번 깊은 인상을 남겼다.
터널을 지나며 이 여정은,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며 과거와 현재, 자연과 인간의 흔적을 더듬어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프스의 장벽을 넘어선 이 길 위에서, 나는 자연의 위대함과 그것을 뚫고 나아가는 인간의 경이로운 기술력을 동시에 느꼈다. 터널은 산을 관통하며, 서로 다른 세계를 이어주는 블랙홀 같았다. 인간은 구조 속에서 태어나지만, 구조의 외부를 꿈꾼다. 탈출은 언제나 ‘목적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닫힌 세계의 법칙을 시험하기 위한 몸의 반응이다. 그 시험은 언제나 고독하다. 그러나 그 고독이야말로 주체가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감각하는 순간이다.
도로 양옆으로 검은 숲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침묵 속에 서 있었다. 이따금씩 나타나는 이정표마저 희미하게 보였다. 길이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착각 속에서, 차의 엔진 소리만이 고요한 어둠 속에서 리듬처럼 맥박을 두드렸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산비탈 아래에는 끝없는 어둠이 내려앉았고, 얼어붙은 나무들은 별빛 아래 길고도 차가운 실루엣으로 서 있었다. 창문을 살짝 내리자, 매서운 바람이 차가운 현실로 나를 불러들였다. 폐 깊숙이 파고드는 찬 공기는 머리를 맑게 만들었고, 숨을 내쉴 때마다 흰 입김이 퍼져 나가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하늘에는 별빛이 가득했으나, 그 빛조차 얼어붙은 듯 차갑게 반짝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차가운 별빛은 나를 위로하는 듯했다. 마치 긴 여행길 위에서도 자연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핸들을 단단히 잡았다. 차 안의 정적은 깊었고, 그 고요함은 어둠과 맞닿아 묘한 긴장을 자아냈다. 차가운 밤공기와 적막이 만들어내는 무게는 내가 달리는 이 길을 더욱 실감 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길 끝에는 아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동이 트는 순간, 알프스의 어둠은 지중해의 황금빛으로 대체될 터였다.
토리노를 지나 제노바에 도착했을 때, 알프스의 차가운 그림자는 어느새 지중해의 강렬한 햇살로 바뀌어 있었다. 눈부신 빛이 거리마다 부딪혀 춤을 추고, 바다 위에서 반짝이며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햇살이 드리운 도시의 윤곽은 부드럽게 빛났고, 하늘은 짙은 푸른색으로 펼쳐졌다. 제노바의 바다는 지중해의 푸른 숨결을 품고, 잔잔한 파도 위로 윤슬을 흩뿌리고 있었다. 구조의 바깥에는 언제나 유동이 있다. 고정된 질서에서 벗어나면, 인간은 방향을 잃지만 동시에 가능성을 얻는다. 제노바의 바다는 바로 그 ‘유동의 은유’다. 파도는 질서 없이 밀려오지만, 그 혼란 속에서 존재는 스스로의 궤도를 만든다.
차창을 열자, 깨끗하고 짭짤한 바다 내음이 코끝을 스쳤다. 바람은 머리칼을 스치며 지나갔고, 태양 아래 반짝이는 파도는 마치 유리 조각처럼 빛났다. 파도가 해안에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낮은 속삭임 같은 소리, 그리고 햇살이 물결에 부서지며 빚어내는 빛의 조각들. 이 모든 것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나를 매료시켰다. 인간의 역사는 언제나 ‘정지와 흐름’의 교차 속에서 만들어진다. 산은 정지의 상징, 바다는 흐름의 상징이다. 우리는 산을 떠나야만 자신이 물로 이루어져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바다 앞에서 비로소 ‘움직이는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해안을 따라 만들어진 고가도로 위를 달리며, 아래로 보이는 오래된 해적선의 흔적을 스치듯 지나쳤다. 그러나 아직은, 피렌체가 아니다.
지중해를 따라 달리는 동안, 언덕 위로는 올리브 나무와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햇살은 부드럽게 풍경을 감싸 안으며, 푸른 바다와 대조를 이루는 은빛 올리브 잎들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반짝였다. 이곳의 풍경은 하나의 예술이었다. 사람들은 왜 이곳을 ‘지중해의 진주’라고 부르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찰나의 순간도 머물러 있지 못한 채 흘러가고 있었고, 나는 다시 길을 나섰다. 다음 목적지는 피사.
피사에 도착하자마자 사탑이 멀리서도 단번에 눈에 띄었다. 사탑의 흰 대리석은 따뜻한 햇빛 아래에서 부드럽게 빛났고, 그 주위에는 피사의 두오모 성당과 세례당이 마치 오랜 친구처럼 조화를 이루며 서 있었다. 12세기 로마네스크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이 건축물들은 각각의 아치와 기둥에 섬세하게 새겨진 조각들이 여전히 우아함을 간직한 채 시간의 흐름을 견디고 있었다. 피사의 탑은 인간의 구조적 욕망이 빚어낸 기이한 상징이다. 완벽한 수직을 꿈꾸던 세계가 스스로의 무게로 비틀렸을 때, 그 불균형은 실패가 아니라 ‘진실의 개입’이 된다. 알튀세르는 말했다. 모든 구조는 우발적 결함 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낸다고. 피사의 탑은 바로 그 결함의 아름다움이다.
사탑 앞에 도착하니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관광객들은 모두 하나의 무언의 규칙에 따라 움직이며, 저마다 사탑을 ‘지탱하는’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도 그 흐름에 동참했다. 두 손을 들어 사탑을 받치는 듯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내 사진이 특별할 것은 없었지만, 그 순간의 경험은 내 기억 속에서 작품이 되었다. 모르는 관광객들끼리 서로 웃으며 사진을 찍어주고, 말을 섞지 않아도 어떻게 찍어 달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 피사는 그런 특별한 공감을 만들어내는 공간이었다. 공기는 맑고, 고요함 속에서도 활기가 있었다.
800년 이상의 역사를 품은 이곳은 존재 자체가 역사였다. 사탑이 기울어진 이유를 설명하는 건축학적 이야기들, 연약한 지반과 초기 설계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세월을 버텨낸 복원 작업들이 모든 것이 시간의 무게를 간직한 채 그대로 서 있었다. 그 시간의 흔적 속에서, 나는 여행자가 아닌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 서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피사의 경험을 마친 후,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골목길을 따라 작은 레스토랑을 찾았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담백한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접시에 담겨 나온 음식들은 처음엔 기대를 불러일으켰지만, 한입 먹었을 때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식어버린 파스타는 넘길 수가 없었고, 스테이크도 나오자마자 굳어가기 시작했고, 특별할 것 없는 맛이었다. 떠내기 손님만을 상대해서 그런지 이탈리아 이름에 전혀 맞지 않은 그런 식당이었다. 그러나 그 실망조차도 이날의 여정을 망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음식이 주는 실망은 내 마음을 다음 여정으로 이끌었다. 이곳에서 맛본 요리가 아닌, 앞으로 펼쳐질 여행의 새로운 장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새로운 도시, 새로운 풍경, 그리고 또 다른 감동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피사는 지나가는 곳이었지만, 그곳에서의 순간들은 내 안에 남을 것이다.
피사를 뒤로 하고 피렌체를 향하여, 르네상스의 심장으로 달렸다. 차창 밖으로 해가 서서히 기울며 붉은빛으로 물들인 하늘은 넓은 들판을 가득 덮었다. 피렌체는 그 이름만으로도 나를 흥분시켰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거닐었던 거리.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심장이자 천재들의 전쟁터였다. 도시로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점점 더 두근거렸다. 그곳에서 어떤 풍경과 마주하게 될지, 어떤 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순간이 내게 있어 또 다른 특별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제노바, 피사, 그리고 피렌체로 이어지는 여정은 바다의 숨결, 역사의 흔적, 그리고 사람들의 웃음.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나의 기억 속에 선명히 새겨졌다.
피렌체에서 약간 떨어진 언덕 위의 임프루네타라는 작은 마을에 숙소를 잡았다. 언덕을 따라 정돈된 집들과 올리브 나무와 키가 큰 사이프러스 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은 유럽 여행의 기본 선물 같았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자, 마을은 가로등이 켜지며, 조용한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이곳의 평화로움과 깔끔한 숙소와 넓은 욕조와 샤워기에서 나오는 뜨거운 물은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악몽 같았던 지난밤을 깔끔하게 잊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샤워를 한 뒤, 밀린 빨래를 해결하기 위해 코인 세탁방을 찾았다. 기다리는 동안 그날의 여정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어렵게 물어서 세탁기를 돌려놓고, 우리는 근처 식당을 찾는 중, 작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늦은 저녁을 먹기로 했다.
식당에 도착했을 때, 뜻밖의 풍경이 펼쳐졌다. 루마니아에서 온 대가족이 레스토랑 전체를 빌려 파티를 열고 있었다. 아이들은 뛰어다니고, 어른들은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노래 부르고 있었다. 마치 예전에 우리 동네 사람들이 마을회관을 빌려서 노는 분위기와 흡사했다. 문을 들어서자, 다행히 주인이 한쪽 자리를 내어주었고, 그들의 흥겨운 음악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 후, 그들은 나에게 춤을 추자고 손짓했다. 음악이 흐르고, 나는 언어도, 국적도 다르지만 같은 리듬 속에서 하나가 되었다. 웃음과 박수가 넘쳐나는 그 순간, 나는 여행이 낯선 장소와 시간을 넘어 사람들 과의 연결임을 알았다.
그날 밤, 임프루네타의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별빛으로 가득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마을은 고요하고도 따뜻했다. 나는 그날의 모든 순간들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잠이 들었다. 여행은 이렇게, 예상치 못한 순간들과 사람들로 가득 채워지는 것임을 다시금 느끼며. 이 여정은 경험과 지각의 본질을 탐구하고, 의식 세계를 확장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일상의 사소한 순간 속에도 이러한 본질적 경험이 숨겨져 있다. 모든 것을 새롭게 경험하는 태도가, 이 글을 쓰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됐다.
적막은 벽 너머에서 웅크렸고,
차가운 공기는 날 선 칼날처럼
나를 밀어냈다.
머물 수 없는 밤이었다.
빛의 언어로 소통하는,
별들은 얼어붙은 채 바닥까지 내려왔다.
눈 덮인 봉우리들은
예리한 선으로 나를 그었다.
바퀴 아래 길은 끝없이 이어지고,
산맥은 묵묵히 존재하며
절벽을 품었다.
나는 어둠을 그으며 나아갔다.
인간은 작고,
자연은 거대하지만
그 길 위에서
존재했다.
인간이 뚫은 길, 어둠 속으로 들어섰다.
산맥의 심장을 관통하는 긴 숨결.
차가운 조명은 질서의 법칙으로 박동했고,
시간은 벽을 따라 희미하게 스쳤다.
인간의 의지는 바위를 뚫고
신의 영역에 길을 새겼다.
인간이 만든 통로 속에서
신의 허락을 구했다.
저 멀리,
빛이 어둠을 밀어냈다.
길은 끝나지 않았으나
새로운 아침은 여전하다.
알프스의 차가운 그림자는
지중해의 강렬한 햇살로
춤추는 빛은
바다를 어지럽히고,
푸른 바다 은빛들이
참치 떼로 비상하면
지중해는 찰나를
지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