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심장! 피렌체 두오모 성당은

TUSCAN RED

by 원성진 화가

2024/12/27/07:00


숙소 거실 창으로 푸른 여명이 스며드는 순간, 임프루네타를 떠나는 첫 버스를 타고 피렌체로 향했다. 새벽의 고요함이 감도는 시간, 아직 잠에서 덜 깬 도시를 지나며 하루를 시작했다. 피렌체로 향하는 이른 아침의 외곽의 풍경은 조용함 속에서도 이국적 광활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구릉 위에 만들어진 임프루네타의 언덕선이 만들어내는 신선한 아름다움이었다. 내려가는 길은 아주 여유만만하게 완만한 경사로를 지그재그로 느리게 이어졌다.


한 번의 환승으로 점점 우리는 도시의 중앙으로 들어갔다. 목적지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었다. 흔히 피렌체 두오모라 불리는 성당. 고딕 양식의 정수이자, 르네상스 건축의 서막을 열었던 상징적인 작품이다. 그 시대에 어떻게 건축물을 순백색으로 만들 수 있었을까? 1296년 아르놀포 디 캄비오의 설계로 시작되어 1436년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의 돔 완성으로 마침내 빛을 본 이 성당은 피렌체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품은 거대한 유산이었다.

피렌체 어디에서나 보이는 돔은 피렌체의 상징이었다. 그것은 크기나 높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안에 담긴 창의성과 기술, 그리고 인간의 불굴의 의지 때문이었다. 광장에 도착했을 때, 브루넬레스키의 동상이 광장 한편에 앉은 채 돔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설계한 돔의 완벽함을 여전히 음미하는 듯 보였다. 광장을 가득 메운 여행객들 사이에서, 나도 잠시 그의 시선을 따라 돔을 바라보았다. 마치 도시 전체가 이 거대한 돔을 심장으로 피가 들어오고 나가는 듯 보였다. 피렌체의 장미 빛 도시는 어쩌면 이 뜨거운 심장의 도시가 아닐까?


피렌체의 아침은 활기로 가득했다. 성당으로 향하는 길 위엔 수많은 언어가 얽히고설키며 흘러갔다. 곳곳에 자리 잡은 화가들의 가판대가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며 거리의 풍경을 더욱 다채롭게 물들였다. 이 활기는 결코 혼란스럽지 않았다. 피렌체의 공기는 묘한 질서와 생기를 품고 있었고, 그 속에서 하루를 향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입장을 기다리는 긴 줄에 이어 서며, 잠시 시간을 내어 근처 작은 카페에서 따뜻한 라떼와 갓 구운 크루아상을 사 왔다. 손바닥 위의 작은 행복이 줄 선 기다림을 한결 부드럽게 만들었다. 고소한 크루아상의 풍미와 달콤한 라떼의 향기가 피렌체 아침의 공기 속으로 사라졌다.

줄을 서며 우연히 대화를 나누게 된 한 여행객은 처음엔 한국인이라 착각해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한국인이 아니라고 한국어로 능숙하게 이야기하며 미소 지었다. 중국에서 온 여행객이었다. 낯선 타국에서 우리말로 나눈 짧은 대화는 놀랍고도 따스한 순간이었다.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이곳 피렌체의 웅장한 성당 앞에서 한 가지 공통된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것은 경외감이었다.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 이 도시가 품은 아름다움 앞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순간을 함께 느끼며, 그 경외감 속에 하나가 되고 있었다. 피렌체의 아침, 그 순간은 시간의 흐름 속 한 조각으로, 내 기억에 남을 장면으로 자리 잡았다.


긴 줄 끝에 드디어 성당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경건함으로 이어졌다. 성당 내부는 웅장하다는 말 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압도적인 감동을 주었다. 천장을 올려다보는 순간, 숨이 멎는 듯한 정적이 나를 휘감았다.

조르조 바사리와 그의 제자 페데리코 주카리가 그린 돔 내부의 프레스코화, "최후의 심판". 천사와 악마, 구원받은 영혼과 심판받는 영혼들이 생생하게 표현된 이 거대한 작품은 신앙과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단순히 그려진 존재들이 아니라, 내면의 질문과 감정을 만들어내는 살아있는 메시지였다.


움직일 수 없는 보물. 그것을 간직해 온 피렌체.

가질 수 없는 부러움. 시대가 만들어 낸 유물.

피렌체의 가문이 만들어낸 역사.


모든 것들이 엇갈리듯 스치며 생각은 복잡했다.


인류의 역사에서 건축은 발전된 기술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궁극적 표현이자, 하늘을 향한 열망의 상징이었다. 물론 생존의 수단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이유도 있겠지만, 이웃 도시들과 경쟁이라도 하듯 크고 높게 세워진, 공공의 건물들은 대부분 그러하다는 말이다. 그중에서도 브루넬레스키의 돔은 건축적으로 피렌체 대성당의 지붕이며, 인간이 가진 신성과 기술적 잠재력의 교차점이라 할 수 있다.

브루넬레스키는 당시의 관습과 전통을 뛰어넘어 하늘에 닿으려는 인간의 의지를 돔이라는 물리적 형태로 구현했다. 그의 이중 돔 구조는 신학적 비전과 기술적 상상력의 결합이었다. 돔의 설계는 하늘을 가리면서도 하늘과의 연결을 포기하지 않는 독특한 상징성을 담고 있다. 어쩌면 인간은 창조주를 향한 갈망 속에서, 하늘을 닿으려는 동시에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며 그 위대함을 가리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돔의 경사와 곡선을 따라 올라가며 느껴지는 정밀함과 웅장함은 기술적 기교도 대단했지만, 그것은 창조에 대한 인간의 열망과 신성을 닮고자 했던 노력의 흔적이었다. 브루넬레스키와 그의 동료들이 했던 노동은 건축적 작업과 더불어, 창조주와 인간의 관계를 물리적 세계에 새기는 행위였다. 신의 완전함을 닮기 위해서는 그들 자신도 완전함을 향해 나아가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하늘을 닿으려 하면서도 동시에 가리려 했을까? 아마도 이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긴장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은 인간이 닿을 수 없는 영역이자, 도달하고 싶은 목표다. 인간은 그 신성에 가까이 가고자 돔을 세우면서도, 그 경계 앞에서 스스로의 겸허함을 인정해야 했을 것이다.


브루넬레스키의 돔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신학적 메시지다.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하늘을 향해 오를 수 있지만, 그 끝은 언제나 하늘. 신의 영역이다. 돔 위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인간의 성취를 보여주지만, 그 돔을 통해 바라보는 하늘은 여전히 높고, 초월적이다. 이는 곧 인간이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이룬다 해도, 그 모든 것이 신적 질서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상징적 선언이다.

이 돔은 성경 속 바벨탑의 이야기와 묘하게 대조를 이룬다. 바벨탑은 인간의 교만을 상징한다. 하늘에 닿으려는 인간의 야망은 결국 혼란과 분열을 낳았다. 그러나 두오모의 돔은 다르다. 그것은 교만한 도전이 아닌, 창조주를 향한 겸허한 응답이었다. 돔을 올리는 과정에서 브루넬레스키와 그의 동시대 사람들이 직면한 기술적 한계와 도전은 마치 인간의 유한성을 상기시키는 듯했지만, 그 유한성 속에서도 신이 부여한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노력이 돔을 완성으로 이끌었다.


돔은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면서도, 하늘과 인간 사이의 경계를 존중하는 듯 보인다. 그 꼭대기에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이는 인간이 이룬 모든 업적이 궁극적으로 신을 향해 나아가야 함을 상기시키는 신학적 메시지다. 돔 자체가 하늘에 닿으려는 인간의 열망을 담고 있지만, 그 끝에 놓인 십자가는 우리가 결코 창조주를 대체할 수 없음을, 오직 그분의 은총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음을 상징한다. 돔의 곡선은 또한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높은 산맥의 봉우리처럼, 우리나라 당산나무의 가장 높은 가지처럼, 하늘과 땅 사이의 경계를 아우르는 신성한 조화를 드러낸다. 브루넬레스키의 돔은 단순히 인간의 기술적 진보를 넘어, 인간과 창조주 사이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구조물이다.

결국, 피렌체 두오모의 돔은 인간이 스스로를 초월하려는 여정에서 남긴 가장 빛나는 흔적이다. 그것은 인간의 도전이 얼마나 신앙 안에서 겸허하고도 위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되, 그 끝자락에서 창조주 앞에 머리를 숙이는 모습은 우리의 존재가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돔 아래에 서서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는 순간, 우리는 인간이 지닌 창조의 가능성을 확인하면서도, 그 모든 가능성을 부여하신 창조주 앞에서 겸허해진다. 이는 단순한 건축물 이상의 의미를 품은, 신앙과 예술이 만난 위대한 작품이다.

이 성당은 피렌체의 중심에서, 인간의 상상력과 의지, 그리고 신에 대한 경외심이 하나로 어우러진 상징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과거의 거대한 발자취를 느꼈고, 동시에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이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은 보는 것을 넘어, 느끼고 생각하게 하는 장소였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내가 여행하는 이유를 다시금 찾게 되었다.


성당 밖으로 나와 광장에 서서 우피치 미술관을 방향으로 바라본, 피렌체는 점점 깨어나고 있었다. 두오모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도시의 풍경은 내가 여행자가 아닌, 이 위대한 역사의 순간 속 한 부분임을 느끼게 해 주었다. 심장으로부터 이어진 굵은 핏줄들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피렌체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가진 도시였다. 두오모 성당은 시간을 초월해 인간의 위대함과 신앙의 깊이를 이야기하며, 특별한 순간을 선물했다.


우피치 미술관을 방문하려던 계획은 예약 문제로 무산되었다. 현장에서 티켓을 구매하려고 했지만, 엄청난 여행객들로 포기했다. 아쉬움은 컸지만, 여행이란 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법. 대신 발길 닿는 대로 시내를 걸으며 피렌체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나기로 했다. 계획 없이 길을 걷는 것도 이 도시에서는 하나의 예술처럼 느껴졌다.


아르노 강변으로 발길을 옮기니 햇살이 강물 위로 쏟아졌다. 물결이 부서지며 만들어내는 윤슬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강가를 따라 걷는 동안 시간의 흐름이 느리게 지나가는 듯했다. 피렌체라는 도시가 가진 여유로움이 이 강물 위에도 담겨 있는 듯했다. 강을 건너는 베키오 다리는 중세의 보석이었다. 상점들이 빼곡히 붙어 있는 다리를 건너며, 한때는 피렌체를 대표하는 보석상들이 다리 위에 자리 잡았다고 했다. 다리를 걷는 동안, 그 시대의 상인들이 이곳에서 나누었을 대화를 상상해 보았다. 다리는 관광객들로 가득했지만, 오래된 목조 구조물과 다리 아래로 흐르는 강물은 여전히 그 시절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베키오 다리를 건넜을 때, 한쪽에 자리한 가죽 장갑 전문 매장이 눈에 들어왔다. 유리 진열장 안에는 가지런히 놓인 장갑들도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피렌체는 오래전부터 가죽 공예로 유명한 도시였다. 매장 안으로 들어가 진열된 장갑들을 하나씩 만져 보았다. 부드럽고도 정교한 감촉이 손끝에 전해졌다. 이곳의 장인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공예에 정성을 쏟아왔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여러 개의 장갑을 골라 들었다. 여행지에서의 기념품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도시의 한 조각을 손안에 담는 일이었다.


허기가 느껴졌다. 정해진 점심시간 없이 떠도는 발걸음은, 별점 높은 식당을 찾아 그 앞에 멈춰 섰다. 겉으로 보기엔 오래된 건물처럼 보였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분위기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고, 눈길을 사로잡는 독특한 인테리어가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마치 빨래를 널어놓은 듯한 옷가지들이 식당 구석구석 걸려 있었는데, 그것이 실제 옷이 아닌 인테리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작은 디테일까지 신경 쓴 공간은 이미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펼쳤다. 신선한 랍스터 파스타와 피자를 주문했다. 기대 반 설렘 반으로 기다리던 음식이 곧 내 앞에 놓였다. 그 맛은 기대 이상이었다. 랍스터 파스타는 붉은 피렌체를 닮은 듯했다. 신선한 랍스터의 쫄깃한 식감과 바질 향이 어우러져 입안에서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피자는 바삭한 도우 위에 신선한 바질과 부드럽게 녹아든 모짜렐라가 조화를 이루었다.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고소함이 입안을 가득 채우며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여행 중의 식사는 그 도시의 문화를 맛보고, 낯선 곳에서 느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식사를 마친 후, 다시 피렌체의 골목으로 들어섰다. 이곳의 거리는 그 자체로 박물관이었다. 돌길 위를 걷다 보면 작은 성당과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불쑥 나타났다. 성당 안에 들어가 잠시 앉아 있으면, 이곳에 스며든 역사의 무게가 어깨 위로 내려앉는 듯했다. 골목 한쪽에서 연리지 조각상을 발견했다. 두 나무가 하나로 엮인 형상의 조각은 인간의 관계와 사랑의 결속을 상징하는 듯 보였다. 작품이 가진 섬세함과 메시지는 오래도록 그 자리에 머물게 했다.

걷고 또 걷다 보니 어느새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 도착했다. 이 성당은 피렌체의 또 다른 걸작으로,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성당 앞 광장은 저녁 햇빛을 받아 따스한 빛으로 물들었다. 광장을 가로질러 걸으며 피렌체에서의 하루를 돌아보았다. 계획과는 달랐지만, 계획보다 더 많은 것을 발견하고 느낄 수 있었다는 만족감이 밀려왔다. 피렌체는 걷는 발길마다 예술이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마다 역사가 숨 쉬는 곳이었다. 이곳에서의 하루는 긴 역사로 말 많은 도시와 나 자신을 동시에 발견하는 여정이었다.


저녁이 깊어질 무렵,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피렌체의 풍경은 노을빛에 물들어 있었다. 광장에 도착하면 도시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또 하나의 하루가 피렌체에서 깊어 가고 있었다.

광장에 도착하자 피렌체의 야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도시 전체가 황금빛 조명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테라코타 기와로 가득 찬 도시의 풍경은 마치 고전 회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붉은 지붕들이 만들어내는 따스한 색감과 도시를 둘러싼 토스카나의 언덕은 경이로웠다. 과거 르네상스의 중심지였던 이 도시에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두오모 성당의 돔과 베키오 다리, 그리고 아르노 강이 어우러진 풍경은 숨을 멎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그곳에서 도시의 낭만과 역사를 동시에 품은 풍경에 매료되었다. 신의 질서 아래 정연한 도시, 그리고 그 질서 안에서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인간.

신과 인간, 영원과 순간, 질서와 창조 사이에서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광장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낸 후,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임프루네타로 향하는 길, 별빛 아래의 언덕은 마치 우리를 위한 마지막 선물처럼 고요하고도 아름다웠다. 그날의 모든 순간들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나는 여행이 생경한 장소를 넘어 사람들과 풍경, 그리고 예상치 못한 감동으로 채워지는 것임을 다시금 느꼈다.

아침에 임프루네타를 출발하는 버스를 같이 타며, 중간 갈아타는 장소에서 바뀌는 버스 정류장을 친절하게 설명해 준 분이 저기 앞자리에 앉은 채 등만 보였다. 이 분도 피렌체에서 일을 마치고, 같은 시간 집으로 오는 모양이다. 우연히 버스를 두 번이나 같이 타게 되어 서로 반가웠지만, 내리면서 가볍게 반가운 눈인사를 했다.


삶도 여행과 같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진 않지만, 그 예기치 않은 순간들이 진짜 소중한 기억이 되고, 때로는 길을 잃어야 새로운 풍경을 발견할 수 있는 법이다. 사람들 과의 우연한 만남, 강변의 빛나는 물결, 장인의 손길이 담긴 작은 기념품 하나까지 모두가 내게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우리 인생도 피렌체의 골목길처럼 어디로 이어질지 알 수 없지만, 그 길 위에 작은 기적들이 숨어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도시의 심장, 피렌체의 돔


바벨탑의 교만을 넘어

순종과 창조의 경계를 지나

빛과 어둠의 돔 아래 선다

어찌하여 인간은 하늘을 향하나


신과 인간의 거리

거대한 아치 위에 새겨진 신념

창공을 향한 인간의 열망

하늘을 닿으려는 손길과 그 경계를 품은 겸허함


고딕의 뼈대 위에 피어난 르네상스

조각된 신앙, 벽돌 속에 숨 쉬는 혼

그 곡선의 흐름을 따라

욕망은 미끄러지고


도시를 감싸는 피 빛 노을

신의 품에서 하나가 된다

높이 솟은 십자가 아래

시간은 흐르고 역사는 머문다



피렌체의 저녁


물결 위로 쏟아진 태양은

아르노 강의 빛을 마신다

한때의 황금시대


베키오 다리는 느끼지 않는 맥박처럼

쉼 없이 이어지고

여행객의 잃어버린 대화를 붙잡는다.


땅과 강의 향이 녹아든 저녁,

붉은 노을에 젖어드는 골목,

성당의 돌 벽이 피렌체를 말한다.


미켈란젤로의 시선이 닿던 곳,

그곳에서 피렌체를 바라본다.

황금빛 돔 아래, 붉은 기와의 물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