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식당이 아니라, 독서실이라서요.
독서실이라는 단어만 보면 평온하게 '책 읽는 공간' 일 것 같지만, 현실은 책상 하나가 전부인 0.3평 남짓한 공간에서 칸막이 하나 사이로 경계의 담을 쌓고 오롯이 자기 자신과 치열하게 엉덩이 싸움을 하고 있는 이곳은 그야말로 총 대신 책으로 가득한 전쟁터이다.
특히 성인들의 경우는 일 년에 한 번 있는 시험을 위해서, 일 년 치 공부 계획을 정해두고 하루하루 그 분량을 채워나가는 것이 유일한 일과이다. 특히 시험이 임박하면, 화장실 가는 시간조차도 사치라는 생각으로 시간이라는 우리 안에서 아등바등 생존을 위한 씨름을 이어 나가고 있다.
반대로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회원들의 결제일이 늘 간절할 수밖에 없다. 대게는 회원들이 연장일을 기억하고 결제를 해주고는 하지만 가끔은 잊고 지내시는 분들도 계신다. 그럴 경우에는 미안함 마음이 들지만, 더 이상 미룬 순 없기에 조심스레 휴대폰 번호를 입력한다.
"회원님, 등록일이 벌써 끝나가네요. 혹시 이번 달에 연장하실 계획이실까요?"
뭐, 당연한 요구 사항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재를 요청할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고는 한다. (불편한 건 없는지 등)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회원들은, 생각처럼 속에 있는 말을 잘 못 한다. 이는 한국인들 특유의 정서도 있겠지만, 워낙 말을 할 일이 없는 일과를 보내다 보니 작은 무언가를 요청하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고는 한다.
결재를 진행하는 찰나의 시간. 회원들의 앞날을 위해서라면 한시라도 이곳을 빨리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과, 동시에 빈칸을 채워줘서 오늘도 이곳이 유지되는 감사함. 그리고 이 분들이 언젠가 떠나게 되었을 때, 영업적 공백에 대한 걱정이 동시에 머릿속에 혼재되어 맴돈다..
일 년에 단 한번
취준생들의 필수라 불리는 '토익 점수'는 매달 응시할 수 있다. 하지만 장기간 시험을 준비하는 회원들의 경우 대게는 일 년에 한 번 있는 시험을 위해서 '평일과 주말, 낮과 밤의 구분이 없는 일상'을 살아간다.
적어도 직장인은 퇴근이라는 것이 있고, 주말이라는 것이 있지만 수험생은 그렇지 못하다. 직장인이라면 당연히 누리는 보상 '월급(혹은 금융 치료)'조차도 이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보상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합격만이 유일한 보상책이 될 수 있겠지만, 기약 없는 미래와 매월 정해진 날짜에 따박 따박 들어오는 월급과는 애초에 비교 대상이 아니다.
적어도 토익이라는 것은 점수로 보상을 받을 수 있고, 수능은 등급으로 보상을 받는다. 하지만, 이곳에서 준비하는 시험들은 대게 그렇다.
합격, 아니면 '불(不)'합격
그렇다고 O, X 퀴즈처럼 확률이 50%인 것도 아니다. 경쟁이 치열한 시험의 경우 1차 합격의 기쁨도 잠시. 치열한 예선이 끝나면 본선이라는 2차 시험이 남아 있다. 그리고 여기서 약 10% 남짓이 살아남는다. 게다가 시험이라는 것이 참 잔인한 것이 누군가는 1점 차이로 합격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지만, 누군가는 같은 1점 차이로 지난 일 년간 삼켜 낸 눈물과 사그라진 청춘은 그저 바람 한 번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연기처럼 소멸되어 버린다.
합격자와 불합격 사이에 숫자는 불과! 1점. 그 1점에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잔인한 단두대. 어쩌면, 독서실은 그런 단두대에서 매일 춤을 추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속으로 외친다. 고객님 결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여기 너무 오래 있지는 마세요.'
문득 그 시절 내 진짜 속내는 무엇이 진실이었을까? 글쎄다, 시간이 제법 흘렀지만 여전히 결론이 쉽사리 나오지는 않는다.
단골이 많다는 것은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성공한 것 같다. 실제로 어느 정도 안정적인 수익 구조가 생기고 주변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박수 이면에는 각각의 목적을 가지고 모여든 사람들의 인생이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이곳은 배고픔을 해결하고 가는 식당이 아니니까. 이곳이 다른 곳보다 집중하기 좋아! 그래서 나는 여기로! 가 아니라
꼭, 그래야 하는 곳. 이곳이 결코 그들 인생의 정박지가 되지 않길 바라본다. 잠시 머무르는 것은 허락하지만, 결국은 인생의 다음 페이지를 위해서 잠시 머무는 곳이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