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실에 온 군인 아저씨

철조망 옆 독서실 풍경

by 타이완짹슨

북한과 인접한 지역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이곳 파주는 당연하게도 군부대와 군인들을 주둔해 있다. 대표적으로 육군 최초의 보병 부대인 육군 1사단이 파주 문산에 있으며, 대한민국의 마지막 도로라고 할 수 있는 자유로를 달리다 보면 군사 경계 지역, DMZ 등 교과서에나 볼 수 있던 낯선 풍경들이 이곳에서는 일상처럼 펼쳐져 있다.


여담이지만 20년 넘게 나고 자란 고향이 부산(그것도 낙동강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서부산 지역)인 나에게 최북단 파주의 거리와 일상은 같은 대한민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풍경적으로 낯설었던 곳이었다.


군부대가 있다는 말은 곧 군인들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게는 이곳으로 자대 배치를 받은 사병들이지만, 그들을 통솔하는 부사관, 장교 등 직업 군인들도 포함된다. 그래서 독서실을 등록한 학생들 중에는 아버지가 직업 군인인 경우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현직 군인이 공부를 목적으로 등록하러 오는 것은 이곳이 파주였기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드물게는 사병 신분의 현역 군인이 주말에 외출을 나와서 일일권을 등록한 적도 있었고, 간혹 장교들의 경우, 진급 시험 혹은 반대로 전역 후 사회생활을 대비하여 영어 시험 준비 등을 이유로 독서실의 한 자리를 채워주곤 하였다.


특히 20대 초반의 장교 신분이었던 분이 기억이 남는데, 특이하게도 3주 단위로 등록을 하고, 한동안 안 보이다가 다시 오셔서 다시 3주를 등록하는 식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근무 특성상 경계 지역으로 한번 들어가면 3주간 아예 나올 수가 없는 것이 이유였다. (아차, 아무리 직업 군인이라고 한 들, 고립된 삶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라를 지켜주는 분들이니까'라는 이유로 3주 등록을 하실 때마다 항상 할인을 해 드렸다.

동시에 같이 근무하는 군인들에게도 좋은 인상이 남겨져서 더 많은 고객 유치를 위함은 물론이다.

<독서실 근처 카페. 주말이면 특히 군인들로 붐비는 곳>

외에도 10년 넘는 군생활의 마침표를 찍고, 법무사 시험을 준비하시는 분도 계셨다. 버스도 잘 안 다니는 지역에서 직접 운전을 해서 오셨는데, 처음에는 분위기(어린 학생들이 많은 것에 걱정)하였지만, 어느새 등록 기간은 6개월을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현직 부사관으로 군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분은 1년 치를 한 번에 결재하셔서 '장기 + 군인 혜택'으로 빵빵하게 할인을 해 드린 기억이 있다. 보통 1년을 한 번에 결재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그만큼 표정에서 비장함이 느껴졌었다.


마지막으로 30년 가까운 군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시는 중년의 어르신도 계셨는데, 언제부턴가 나와 거의 매일 티타임을 가졌었다. 주 대화는 항상 아저씨의 아들 이야기와 재테크? 였지만, 누군가의 대화 상대가 되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많은 사장님들이 진상 손님 때문에 스트레스라고 하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는 그런 일은 없었기에 유일한 고민은 안정적인 매출을 유지하면서 이곳을 오래 이끌어 가고 싶은 것뿐이었다.


이렇듯. 대한민국 최북단 파주에서 독서실을 운영하다 보니 일반적인 학생들 외에도 다양한 직군. 특히 군과 관련된 분들 그 안에서도 다양한 사연을 가진 분들을 독서실이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 만날 기회가 생겼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내 인생에서 여러 선택의 순간들 사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북한과 가장 가까운 독서실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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