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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Mar 13. 2020

제99화: 보이지 않는 힘, 공개 선언의 효과

꼰대라서 할 말은 좀 할게

아직 작가라는 호칭이 어색하기는 하지만, 나는 4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이다. 유명한 작가는 아니지만, 어쨌든 책을 냈다는 사실은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나 기업 담당자들에게 제대로 명함 역할을 해주기도 하며, 나름의 권위도 세워준다. 하지만 주변 지인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철부지 형이고, 생각 없는 동생이며, 개념 없는 남편이기에 아직까지 나를 작가로 인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꼴 같지도(?) 않은 게 책을 냈다며 놀림을 받기도 한다. 물론 내가 평소에 하는 말과 행동이 있으니, 우습게 보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가끔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다.


"야. 너 진짜 책에 쓴 대로 말하고 행동하냐?"


호기심의 발로 이기도하고, 어느 정도는 의심이 포함된 질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답변은 항상 한결같다.


“아니....”


내가 어떤 공자나 예수와 같은 성인(聖人)의 경지에 오른 사람도 아니고, 그저 일개 평면인지라 이런저런 실수도 많이 하고 사고도 많이 친다. 평범한 미생이자, 가장이자, 아빠로서의 삶은 아직까지 서툴고 어렵기만 하다. 때로는 쓸데없는 말을 내뱉어서 이불 킥 백만번은 날리며 후회하기도 한다. 사과의 순간에 괜한 자존심을 앞세우며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삼키기도 하고, 고마운 일에 ‘고맙다’는 말을 아끼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책에 쓴 내용들이 거짓이거나 지어낸 내용은 아니다. 내가 경험했던 일들, 내가 했던 말과 행동들, 옳다고 믿는 가치들을 기반으로 쓴 내용들이다. 나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고,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비록 내가 글로 쓴 데로 100% 실천하지는 못하지만, 나는 내가 쓴 글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쓴대로 말하고 행동하며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글로 쓴 내용이 하나의 목표가 되기도 하고, 그 목표에 책임감을 느끼면서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내가 글을 쓰면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자, 지금까지도 글을 쓰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일종의  ‘공개 선언 효과’와 같은 것이 발동되면서 내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공개적으로 선언한 데로
말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자기 스스로 다짐하고, 나에게 약속하고, 나만의 계획을 세우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떤 목표를 쉽게 포기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그것을 나만 알고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나만 알고 있는 다짐은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위기의 순간, 포기하고 싶은 순간 나약해진 나와 적당히 타협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선언하고, 공표하면 그 힘은 생각보다 강력한 동기가 된다.  알게 모르게 나를 옥죄여 오며, 알 수 없는 힘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하고, 신뢰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나만 아는 사실이 아니라 남들도 아는 사실이기 때문에 나 스스로 지키지 못하면 자존심이 무너질 수 있다. 남들과 한 약속이기에 지키지 못할 경우 내 평판이 무너지고, 신뢰가 깨질 수 있다. 그래서 한번 더 나를 다잡고, 더 치열하게 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공개 선언의 힘으로 유명해진 두 명의 스포츠 스타가 있다. 전설적인 야구 선수 베이비 루스와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로 유명한 복서 무하마드 알리이다. 먼저 홈런왕 베이비루스는 예고 홈런으로 유명했다. 타석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이 홈런 칠 방향을 배트로 가리키며 ‘나 저쪽으로 홈런 칠 거야’라고 말했다. 또한 무하마드 알리도 링에 오르기 전에 ‘나 저 선수를 몇 회에 KO로 이길 거야’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며 경기를 시작하고는 했다.


물론 매번 두 선수 뜻대로 홈런이 나오고, KO가 나오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다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우연의 일치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에서 나오는 힘과 압박감으로 인해 더 치열하게 링에 오르고, 타석에서 더 집중할 수 있는 태도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공개 선언의 힘을 적절하게 이용해서 좀 더 나은 선수가 되고,  결과적으로 전설의 야구 선수, 전설의 복서가 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사실 내가 첫 책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공개 선언의 힘 덕분이었다. 2016년 초,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인사 평가 결과가 좋지 않게 나왔다. 기대치와 차이가 컸기에 실망도 컸고, 의욕도 꺾였다. 회사에서 답을 찾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돌파구를 찾고 싶었고, 월급 외에 다른 수익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우연히 핸드폰 속에 모아 놓은 기획 관련 메모들을 발견하게 된다. 잘만 엮으면 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의 글쓰기이자 첫 책 쓰기가 시작되었다. 물론 3-4개월간은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하루에도 수 없이 좌절을 했다. 글 같지도 않은 글, 의미 없는 글에 실패와 포기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우연히 아는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안부 전화인 줄 알았는데, 은근 자기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얼마를 벌었네 등 듣고 있자니, 슬슬 배알이 꼴리기 시작했다. 이때 내가 결정적인 말실수를 해버린다.


“형. 나는 지금 책 쓰는 중이잖아. 내년에 출간돼서 나와”


의외의 한 방에 선배는 당황했고, 나는 그렇게 책을 쓰는 작가가 되어야 할 운명에 처했다. 사고는 쳤고, 수습해야만 했다. 미친 듯이 글을 써내려 갔다. 주말 새벽, 출근 전후, 지하철 등에서 가리지 않고 글을 썼다. 그렇게 미친 듯이 글을 쓰니 제법 책이 완성되어 갔고, 출판사에 투고할 수 있는 원고가 만들어졌다. 딱 6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은 그런 나에게 ‘글을 쉽게 썼네.’, ‘재주가 있나 보네?’, ‘학원 다녔니?’ 등으로 이유를 물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 중에 나는 공개 선언의 힘이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 그 형에게 했던 말, 그 이후로도 주변 사람들에게 ‘나 책써. 내년에 나와’ 등으로 했던 말이 내 손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외부에 선언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정확하게는 외부에 공표함으로써  스스로를 옥죄고 다잡기 위한 말이었다. 그렇게 나는 공개 선언의 힘을 빌어   기획의 신을 출간했고, 작가로서의 직업을 가질 수도 있었다.


물론 공개적으로 선언한다고 그대로 되는 일은 없다. 그것에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순간, 더 이상 내가 물러날 곳이 없게 되면서 만들어지는 동기는 강력하다고 생각한다. 거기에서부터 알 수 없는 힘이 발휘되고, 더 치열하게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게 될 것이다. 물론 이렇게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이 쉽지 만은 않다. '괜한 말 했다가 망신당하는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가로막는다. '할 수 있을까?' 라는 소심한 마음이 끼어든다. 하지만 이 모든 어려움과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좀 더 노력하게 되고 목표에 가까워질 수 있는 힘이 생길 수 있는 일은 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나는 계속해서 글을 써나갈 것이다. 내 인생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더 나은 나를 만나기 위함이다. 내가 글로 기록하고, 사람들에게 선언한 데로 실천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조금씩 성장해 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꼭 '내가 말한 데로, 선언한 데로 된다' 는 사실에 대해, 나 스스로가 증거가 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하면서 긴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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