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지만 탁월한 기획 사례
작년에 일본에 갔을 때의 일이다. 길을 건너려고 횡단보도에 서있는 데, 횡단보도 신호등을 보고 다소 놀란 적이 있다. 그동안 한국에서 보던 신호등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보통의 신호등은 파란불이 되고 나서 얼마 있다가 빨간불로 바뀌기 까지의 남은 시간을 알려준다. 하지만 일본의 신호등은 조금 달랐다. 빨간불에서 파란불로 바뀌기까지의 대기 시간을 알려주는 시스템이었다.
두 신호등 중에 어떤 것이 좋다는 것에는 의미를 두고 싶지 않다.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고, 필요에 따라 그 쓰임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두 신호등의 기획에 담긴 문제 의식이 서로 달랐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우리 나라의 신호등은 길을 건너는 사람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길을 건너는 사람이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도록, 남은 시간을 알려주기 위해 기획 되었다. 반면, 일본의 신호등은 길을 건너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 세상에 나왔다. 길을 건너려고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져서, ‘그냥 무단횡단해?’ 라고 생각하는 안일한 마음에 일침을 가하며, '너 딱 기다리고 있어. 내가 대기 시간 알려줄께' 라고 말하고 있는 샘이다.
이처럼 기획은 그 안에 어떤 문제의식을 담느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진다. 기획 의도나 관점을 달리하면 기획의 방향이 바뀌고, 해결책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이번 글의 주제, 스웨덴의 스톡홀름에 설치되어 있는 과속방지복권 '스피드 로또'이다. 역발상이 빚어낸 독특한 기획이자, 창의력의 정수라고 할 만한 기획이다. 자세한 설명을 하기 전에, 우선 아래 질문에 답해보길 바란다.
‘어느 지역에서 과속으로 인한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당신에게 과속을 줄여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졌다. 과속 방지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아마 열에 아홉은 과속방지 카메라, 과속 방지턱 등을 떠올렸을 것이다. 일반적인 사실이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일상에 당연하게 자리하고 있는 사실이기에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일종의 고정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획은 당연한 것에 ‘왜’라고 묻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른바 ‘딴지’를 거는 것에서 기획이 시작된다. ‘꼭 저래야만 해?’, ‘저게 다야?’,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라고 문제 제기를 하는 순간, 새로운 기획이 시작된다. 스웨덴의 스피드 로또 역시 이런 사고의 일환으로 세상에 나온 기획이었다.
스피드 로또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접근을 한 과속방지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규정속도가 30km/h 인 곳에서, 차량이 30km/h 이하로 지나가면 파란색 손가락이 올라가면서 기분 좋은 칭찬을 해준다. 또한 이 차량의 번호는 자동으로 복권에 응모가 되고, 한 달에 한번 추첨을 통해 상금을 받을 수 있는 기회까지 주어진다. 규정속도를 지키는 것만으로 칭찬도 받고, 운이 좋을 경우 상금까지 획득할 수 있다.
보통의 경우, 과속 방지를 위한 해결책으로 부적강화 방식을 적용한다. 사람들의 부정적인 행동에 대해서 처벌이나 벌금과 같은 부정적인 경험을 제공하여 그 행동을 못하게 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스피드 로또의 경우, 기존 방식과는 반대로 정적강화 방식을 적용했다. 긍정적인 행동에 대해서 보상이나 칭찬과 같은 긍정적인 경험을 제공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그 행동을 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기존의 방식이 잘못된 행동(과속)을 줄이려는 접근을 한 기획이었다면, 스웨덴의 경우는 잘하는 행동(정속)을 늘리려는 기획을 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방식을 정확하게 반대로 뒤집었다는 것에 이 기획의 창의력이 돋보인다.
기존의 방식 : 과속주행을 하는 사람들의 수를 줄이려는 방식
새로운 방식 : 정속주행을 하는 사람들의 수를 늘리려는 방식
이 아이디어가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것은 폭스바겐에서 실시한 아이디어 공모전(The Fun Theory Award)이었다. 미국 출신의 케빈 리처드슨 이라는 사람이 공모전에 이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그 후 스웨덴 도로안전처에서 이 아이디어를 채택해 스톡홀름에 설치했다. 처음에 이 표지판이 생겼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고 한다. 아마 처음보는 장치에 의아해 했거나, 그냥 무시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좋은 기획의 가치는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어 있다. 얼마 후부터 스톡홀름 시민들은 이 시스템의 가치를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이 표지판을 보면서 속도를 줄였다고 한다. 실제 복권에 당첨된 운전자들도 여러 명 있었다고 한다. 스톡홀롬의 시민들은 ‘법도 지키고 돈까지 벌 수 있으니, 이 어찌 완벽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라며 엄지척을 치켜 세우며, 스피드 로또 기획을 지지했다고 한다. 스피드 로또는 시민들의 만족을 이끌어 냈을 뿐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효과로도 이어졌다. 스웨덴 도로안전처에 따르면 속도를 위반하는 사람이 감소하고 도로 교통이 원활해졌을 뿐만 아니라, 스톡홀름 내 차량 평균 속도가 이전과 비교해 22% 감소했다고 한다.
물론 이 시스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일부 시각에서는 사행심을 조장하는 장치라는 비판적인 시각을 제기하기도 했고, 시민들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에 대해서 너무 가볍게 접근했다는 의견도 있다. 이 시스템이 전적으로 좋다고 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이런 우려에도 불고하고 기획의 관점에서 볼 때, 기존의 방식에 ‘왜’ 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과속이라는 문제를 재해석한 점에서 충분히 가치있는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과속으로 인한 사고나 위험은 넘쳐난다. 이에 따른 각 나라의 대응방식은 각기 다를 수 있다. 각 나라의 상황이나 문화에 맞는 교통정책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스웨덴의 스피드 로또가 우리 나라의 과속방지 카메라보다 좋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점, 기존에 사람들이 문제를 보는 바라보는 시각과는 차별화된 시각을 제시한 것에 있어서는 좀 더 창의적인 기획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이 당연시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를 재해석하는 것에서 새로운 대안은 나온다. 그리고 이런 대안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움을 발견하고 제안을 하는 사람에게는 분명 기회의 문이 열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획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며, 기획은 기회를 그리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스웨덴 기획자의 기획을 세 줄로 정리하면서 마무리 한다.
첫줄 (현재상태) : 정속 주행을 하는 사람의 숫자가 적다.
두줄 (기대상태) : 정속 주행을 하는 사람의 숫자가 많았으면 좋겠다.
세줄 (해결책) : 정속 주행을 하는 사람에게 보상을 하자, 아주 특별한 복권 '스피드 로또'
참고자료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18563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