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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하지 않는 우리, 인정없는 사회, 인정?

핑계되고 반박하기보다, 수용하고 인정하는 화법 한번 장착해 보자

by 갓기획

즐겨보는 TV 프로그램 중에 [사장님 귀 당나귀] 라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한 조직의 보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이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중심으로 직원들의 다양한 반응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의 초점은 이 시대 보스들이 얼마나 직원들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이며, 독단적으로 행동하는지에 맞춰져 있다. 한마디로 ‘누가 누가 더 꼰대인가?’를 경쟁적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물론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인지라, 출현하는 보스들이 직원들을 보며 느끼는 답답함과 빡침(?)이 십분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저 상황에서 저렇게 할 수밖에 없지’

‘잘하네. 훌륭한 리더네’

‘직원들이 리더 입장을 전혀 이해 못 하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좀 지나치네’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인성이 신발끈이네’


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관련해서 최근 프로그램에 새롭게 합류한 모 중식당 000 셰프의 모습은 지금까지 본 보스 중에 가히 최고봉이라 할 만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비단 그녀가 업무 중에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직원들을 혼내고, 소리 지르고,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모습은 귀엽게 느껴졌다.


좀 더 안타까운 부분은 VCR을 보면서 전현무, 김숙 씨를 비롯한 패널들이 지적한 피드백을 수용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 때문이었다.


“000 셰프님, 저건 너무 한 거 아니에요?”

“셰프님. 꼭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요?”


라고 패널들이 피드백을 하면, 그녀의 반응 대부분은 이런 식이었다.


“그게 아니라...”

“저건 저렇기 때문에..”

“직원들이 잘못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피드백을 수용하고 인정하기보다 대부분 방어하기에 급급하고 자신의 입장만 고수하고 있었다. 물론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녀가 해온 노력이나 실력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업계 상황이나 현실을 잘 모르는 패널들의 피드백이 탐탁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내뱉기 전에 한 번쯤 인정하는 화법을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답답함이 밀려왔다.


“그쵸. 제가 좀 심한 부분이 있었네요. 그런데,

“저 때는 제가 저렇게 하면 안됐는데.. 하지만 때론..”


와 같이 먼저 상대방의 말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말을 뱉었다면 어땠을까?


이 글을 통해 000 셰프님을 비난하려는 의도는 없다. 차라리 나 스스로에 대한 자기반성이자 현대 사회에 대한 건전한 비판(?) 정도로 해두고 싶다. 000 셰프님의 모습을 보면서 평소 사람들의 피드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내 모습이 떠올랐고, 직원들의 피드백을 무시하는 이 시대 리더들의 모습이 스쳐갔으며, 나아가 타인의 피드백을 수용하기보다 거부하고 핑계되기에 급급한 많은 현대인들의 모습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의 부정적인 면을 지적하거나 내 생각에 반론을 제기하는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쿨하게 인정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대부분이 그럴듯한 핑계와 적절한 이유를 대며 빠져나가는 편을 택한다. ‘나는 맞고 그렇게 말하는 네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심리적인 위안을 주기도 한다. 별거 아닌 일이지만, 상배방의 피드백을 수용하고 인정하기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인정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머리 한 켠에 자리하고 있는 ‘나는 맞고, 그렇게 말하는 네가 틀렸다’라는 생각이 인정까지 가는 사고를 차단하고, ‘인정하면 지는 거야’라는 괜한 자존심이 혀를 막고, ‘그동안 이렇게 해온 게 맞았는데’라는 과거의 성공 경험이 다시 한번 입을 막는다.


이럴 땐 그냥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툭하고 습관처럼 내 뱉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치, 그런 면이 있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내가 좀 그랬지?"


글을 마감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 밀려오는 갈증을 해소하고자 시원한 오렌지 주스 한 잔 들이켠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아니나 다를까 와이프가 한 마디 해온다.


“여보. 주스 먹고 양치질 안 하고 그냥 자려고 하지? 이 다 썩는다. 양치하고 자라”


잔소리 폭탄이 떨어진다.

‘주스 먹고까지 양치해야 해?’ ‘지금까지 다 괜찮았는데?’ ‘청결에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입을 막을 찰나. 쿨 하게 한마디 내뱉는 걸로 대신해 본다.


“그치. 주스 먹었으면 양치해야지. 10분만 있다 할게”


왠지 모르게 만족해하는 와이프의 표정에서 ‘인정 별거 아니구나. 관계가 좀 더 나아지고 있구나 하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인정은 소통의 시작이자 관계의 성장이며, 개인적인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상대방의 피드백을 인정하는 순간 상대방 입장에서 더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관계가 깊어진다. 또한, 개인적으로 남의 말 들어서 나쁠 게 어디 있을까? 결국 내 이미지나 평판은 남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남의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할 필요는 없지만, 한 번쯤 인정하고 넘어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인정의 길은 멀고도 험하지만, 그 열매 만큼는 달콤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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